고구려가 삼국을 통일을 시키지 못한 이유

이 시기 고구려의 상황이 얼마나 암울했냐면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 성왕은 “이대로 계속 공격해서 아예 고구려를 숫제 멸망 시켜 버리자.” 고 신라에게 제안하지만,

진흥왕은 직접적으로 “내가 고구려 멸망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며 거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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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고구려와 연락하는 모습을 보여줌.

아마도 진흥왕 입장에선 이대로 계속 북으로 진군하면 고구려에 당연히 엄청난 피해는 줄 수 있겠지만

전선이 길어지고 고구려 중심부로 갈수록 전쟁도 힘들어질테고 피해도 커질테고

그렇게까지 무리하며 고구려에 큰 타격을 준다고 해도,

‘고구려가 눈치보고 백제는 구애하고 가야는 전전긍긍’ 하는 이 상황에서

오히려 백제가 더 강성해지는 사태도 생각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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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신라와 백제가 분쟁이 나고 554년 ‘관산성 전투’ 가 펼쳐짐.

이 당시 신라군은 강력하긴 했어도 영역이 커진만큼 병력이 분산되어 있었고,

반대로 백제군은 백제-가야-왜 3개 세력 연합군이 뭉쳐서 진격하는 상황이라 상당히 유리했는데,

초반의 싸움에서 신라군은 연거푸 패배하며 위기에 빠졌지만,

북방지역 영토를 수비하던 김무력의 부대가 갑자기 남하하며 전세가 뒤바뀜.

갑자기 생각하지도 못한 부대가 북방에서 남하하면서, 이 부대가 백제 성왕을 사로잡아 목을 베면서

관산성 전투는 백제의 처절한 패배로 끝남.

북방 군대는 고구려를 막기 위한 병력인데 갑작스레 남하 했던것을 보고

저 훗날 황초령비 등에서 고구려가 땅을 빼앗아간 신라를 오히려 축하해주는 모습 등에서 감안해서

“이때 신라가 고구려와 밀약을 맺었다.” 는 추정을 하는 경우도 있음.

신라는 더 이상 고구려에 공세를 취하질 않을테니 현재 차지한 영토에 대해 토를 달질 말아라,

고구려는 신라에게 뺴앗긴 지역을 당장 되찾으려고 하질 않을테니 더 이상의 공세는 그만해라는 식으로

양국의 입장이 절충되었다는것.

551년 신라가 북진한뒤 568년 시점인 황초령비-마운령비 건설 시점까지도 고구려가 신라에 적대감을 보이질 않았으니,

20년 가까운 평화협정이었다고 하면 의미가 없지 않음.

아무튼 고구려 쪽에 대한 걱정이 덜해지자 신라는 그냥 무쌍모드로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왜-가야 군을 물리친것은 물론이고,

이후 가야 지역 병합전에서 백제 위덕왕이 필사적으로 또다시 백제-왜-가야 연합군을 구성해서 막으려고 할때도

이사부의 지휘아래 3개 세력의 군대를 모두 초토화 시키는 모습을 보이면서 전성기를 누림.

한편 554년 7월(삼국사기) 혹은 554년 12월(일본서기)에 백제가 관산성 전투에서 대패한 뒤

바로 그해 겨울, 백제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고구려가 공세를 취함.

그러나 이 싸움에서조차 고구려군은 이기지를 못했음.

이때 백제는 성왕이 죽고, 위덕왕은 태자 시절 대신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추진한 전쟁이 대패로 끝나면서 입지가 쪼그라들고

훗날 가야멸망전쟁에서도 신라에게 패배하는등 여건이 최악이었는데,

당시 고구려군은 그런 상태의 백제군도 이기지를 못한것.

양원왕 시기 고구려의 상태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보여주는 일화로 거칠부와 혜랑법사의 일화가 있는데,

신라인 거칠부는 젊었을때 멘탈이 별로라 그냥 머리 자르고 아무데나 쏘다니면서 지냈는데,

그 과정에서 고구려에도 간적이 있고,

이때 혜랑법사를 모시다가 정체를 알아본 혜랑법사가

“그대 보통 사람은 아닌것 같은데, 누가 신라인이라고 알아볼까 걱정되니 돌아가라.

만일 전란이 나서 날 보면 해치지는 말아다오.”

부탁하고, 거칠부는 돌아가서 신라의 장군이 되서 551년 전쟁때 활약함.

이때 혜랑법사를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혜랑법사가

“우리나라가 정치꼴이 이대로면 나라 멸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 나 좀 신라로 데려가다오.” 요청해서

고구려의 명망 깊던 고승이 혼란을 피해서 신라로 건너간 일화가 나옴.

고승이 혼란 피해서 도망칠 정도고,

이런 기록이 한두개에서 나오면 모를까 삼국사기에도 이런 기록 나오고,

일본서기에서도 즉위할 무렵 혼란스러운 모습 같은게 묘사되니 정말로 난장판 그 자체였던 모양.

평원왕 시기 (559년~590년)

양원왕 시기 나라가 개판 꼴이 되었는데,

이를 수습한게 바로 평원왕의 30년 동안의 치세기간이었음.

이때 백제는 자기들도 타격이 큰지라 고구려를 건드릴 형편이 안되었고,

위세가 절정에 달한 진흥왕 시기 신라에 대해서는, 위에 언급한 황초령비 축하가 평원왕 대인데

신라를 한수 아래로 내려다보던 고구려인들 입장에선 다소 굴욕적이더라도

어느정도 굽혀주고 최대한 전쟁을 피하는데 집중함.

그렇게 내정을 다독이는 한편,

중국에 드디어 초거대 통일 제국 ‘수’ 가 탄생하자 이쪽에 대한 대비도 충실히 하면서

기병으로 수나라 국경을 슬쩍슬쩍 찔러보면서 정보를 모으고,

수나라에서 쇠뇌 기술자들을 돈주고 뺴오는등 다방면에 걸친 활동을 함.

영양왕

평원왕 때 저렇게 망가진 나라를 재정비하고 추스린 덕분에

이후 영양왕이 즉위했을때는 고구려는 중국에 통일 제국이 생긴 대외여건과 별개로 자체만 놓고보면

장수왕~문자명왕대 근처의 고구려 전성기 시절 판도를 다시 구축하게 됨.

신라는 진흥왕이 죽고 진평왕 중기 이후부터 슬슬 힘이 빠지면서

오히려 영토가 넒어지고 전선이 커지니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이고

(진평왕 말기부터 심해지다가 선덕여왕때는 나가리 판으로 전락)

고구려는 한강 유역 근처까지 거의 다시 영향력이 생기기 시작하고

거란이나 말갈 등에 대한 영향력도 커짐.

해석에 따라 다르지만 고구려 영토 제일 넒었던 시기가 장수왕 – 문자명왕 시기가 아니라 영양왕 때라는 해석도 있음.

이후 수, 당 거대제국과의 싸움이 발생하는데 고구려가 나중에 망하긴 해도 그래도 잘 싸운것이

나라가 어느정도 재정비가 되었기 때문.

만약 양원왕때 시절이었으면 앗싸리 나가리판이었음.

어쨌든 저때는 나라 총력을 기울여서 중국 통일제국과 싸워야 했던 시기니까, ‘멸망’ 을 노리는 전쟁은 힘든 상황.

요약 하면

광개토대왕 시기는 신라는 후진국이었고 백제는 군사적으로 완전히 눌러서 군사적으로는 양국을 제압할만 했으나

후방 중국 전선이 혼란스러워 병합할 시간도, 여유도 나질 않았고

장수왕 시기는 중국 전선이 안정화 되고 신라는 꽤 오랜 기간 고구려에 통제 하에 있어 가히 최적의 기회였으나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즉위 후 거의 60년 가량은 특별히 공세를 취하질 않다가

장수왕이 곧 죽을 늙은이 나이 다 되서야 갑자기 파상공세로 전환

신라와 백제 수도를 직접적으로 노림

이때 백제왕을 죽이고 도성을 박살내고

신라 역시 갑자기 고구려군이 도성앞에 쳐들어올 것 같은 공포에

왕이 멀쩡한 궁궐 내버려 두고 산성에 들어갈 살 만큼 백제, 가야, 신라를 모두 두렵게 한 극심한 위기상태였으나

장수왕이 젊었을 무렵 신라가 아직 약했을때 손을 대지 않은 결과

신라가 어느정도 급을 맞출만큼 국력이 올라오고 나제동맹이 유지되며 공세를 힘겹게 막아냄

문자명왕 때는 노골적으로 남진정책의 의도를 가지고 파상공세를 계속 펼쳤으나

이미 여건이 어느정도 마련된 나제동맹이 수차례 고구려를 막아내고

문자명왕 시기 막판에 이르면 신라나 백제 단독으로 고구려군 원정군을 막아낼 지경이 됨.

처음에는 둘이 손잡고 힘겹게 막아내던게

나중에 가면 하나 먹기도 부담스러운 일이 됨.

이후 고구려 내부에 분란이 끊이질 않으면서 나라가 사실상 개판이 되어버리고

둘 모두 상대하는게 너무 버거워져서 백제에만 집중하고 사실상 관심을 꺼버린 신라가

50년 동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기모으다가 터뜨리는거 감당이 안되는 상태가 되어버림.

그래서 어느정도 숙여주는 모습까지 감수하며 최대한 전쟁을 피하는데 집중함.

신라와 밀약까지 맺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전쟁을 최대한 피하고

영양왕 시기 다시 예전의 전성기 시절 위용은 되찾긴 했으나,

그때와 다르게 이젠 중국에 거대 통일제국이 탄생하면서 여기에 모든걸 전념해야 하는지라

당연히 통일할 여건이 못됨.

대외적인 상황 및 맞상대의 수준을 보면

중국전선이 조용하고 신라도 허약하고 백제도 고구려에 단독으론 상대가 전혀 안되던

장수왕 시절 초기 ~ 중기까지 말고는 좋은 기회가 없어보이는데,

정작 이때는 신기할 정도로 아무것도 안했고, 아예 아무 생각도 없었다기엔 또 장수왕 말년에는 열심히 공격하니

아마 장수왕 시절에 내정에서 뭔가 혼란이 있어서 그랬던게 아닐까 싶은 ‘추측’ 밖에는..

IF 시나리오 말고 실제 벌어진 과정 중에서는 가장 가까웠던건 장수왕 말년이고,

이때 백제나 신라가 힘겹긴 했지만 막아냈고

그 뒤로는 고구려가 나름대로 기를 쓰고 쳐보지만 두 나라를 한꺼번에 쓸어버리는건,

당장 고구려 상태를 떠나서 두 나라도 제법 틀이 잡힌지라 거의 불가능해 가까워짐.

양국을 쓸어버리는건 고사하고 하나 상대하기도 쉽지 않아짐.

안장왕처럼 어느정도 중간에 외정이 성공적이었던 경우도 있으나

이때도 백제와 일진일퇴에 가까웠지 장수왕때처럼 한꺼번에 먹어버릴 기세는 아니었음.

그냥 한마디로 고구려가 백제, 신라를 양쪽으로 모두 상대해서 삼킬 만한 체급까진 아니었던것.

(물론 수당과의 싸움에서 엄청난 동원력을 보여주긴 하지만,

비상상태에서 수성하며 자기네 땅에서 총력전 하는것과

여러 정치논리 속에서 원정군 파견해서 수성하는 부대와 싸우는건 아예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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