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른여섯이야. 평일 저녁이었어. 형이 출장 가면서 강아지 저녁 산책만 도와달라고 했어. 형수가 혼자 하면 힘드니 네가 십 분만 같이 내려가 달라는 부탁이었어. 나는 퇴근 후 일정을 그쪽으로 잡았어. 따라간 자리 아니야. 형이 부탁했고, 내가 가겠다고 한 동선이야. 편의점에서 강아지 간식을 하나 사서 들고 올라갔어.
형수는 형의 아내야. 명절 때 밥 먹던 사이야. 초인종을 누르니 형수가 목줄을 든 채 문을 열었어. 강아지가 내 신발에 코를 박았어. 아는 척할 것도 없었어. 불러서 온 자리니까. 현관에 형의 출장 캐리어가 세워져 있는 게 보였어. 태그도 그대로 붙어 있었고, 신발장 위에는 형의 회사 출입증이 엎어져 있었어.
현관에서 바로 엘리베이터를 불렀어. 문이 닫히자 형수가 목줄을 나한테 넘기더니 내 손목을 잡으며 낮게 말했어. 형한테는 오늘.
말이 거기까지야. 중간에 문이 열리며 이웃이 타려다 우리를 보고 다음 엘리베이터를 골랐어. 손이 잠깐 느슨해졌어. 형수가 태연히 1층을 다시 눌렀어. 나는 형수 폰 화면이 한 번 켜진 걸 봤어. 형 문자야. 동생 오면 엘리베이터에서 그 말 해. 내가 일부러 비울게. 보낸 시간은 내가 초인종 누른 직후야. 캐리어는 현관에 그대로 서 있었어.
나는 형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어. 1층에 내려 산책을 시작하지도 않았어. 형수가 다시 손목을 잡으며 말했어. 형한테는 오늘 이 말 하지 마. 출장이 진짜가 아니야. 일부러 집을 비운 거야. 나한테 시키면서.
형수가 목줄 끝을 함께 잡으며 말을 이었어. 오늘만 여기서 내가 끝까지 말할게. 형이 왜 출장 가방만 두고 사라졌는지. 네가 왜 이 시간에 와야 했는지. 간식 봉지를 든 네 손이 아니라 내 말을 먼저 들으라는 뜻이었어.
나는 엘리베이터 문을 여는 버튼을 누르지 않았어. 그대로 서 있었어. 강아지가 발끝에서 낑낑거렸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어. 형수가 입을 열어 덧붙였어. 오늘만은 형 말고 내가 먼저 말할게. 사실 형이 나한테 동생 오늘 오게 하라고 한 다음이…
나는 그 다음 말을 들으려고 한 발도 안 움직였어. 형수가 내 손목을 한 번 더 조이며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