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물셋이었다. 대학 근처 낡은 원룸촌에 살았고, 바로 옆방이 여자애였다. 나이는 나랑 비슷해 보였고, 평일엔 남친이랑 사실상 동거했다. 주말만 되면 남친은 본가로 사라지고, 그 애만 혼자 남았다.
겨울엔 창문을 꽉 닫아서 조용했다. 여름이 오자 창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매일 밤 신음 소리가 복도까지 새어 나왔다. 부끄러울 정도로 컸다. 위층에 살던 형이 참다못해 경찰을 부른 적도 한 번 있었다.
그래도 토요일 저녁마다 그 애 엄마는 반찬 봉투를 들고 왔다. 된장찌개, 김치, 멸치볶음. 문을 두드리고 “밥은 잘 챙겨 먹냐”고 잔소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딸이 혼자 사는 줄 아는 눈치였다.
어느 토요일, 옆방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딸은 슈퍼에 간 모양이었고, 엄마만 봉투를 든 채 서 있었다. 복도에서 눈이 마주쳤다.
나는 속으로 ‘쌤통이다’ 하면서 웃으며 말했다. “사위분은 주말인데 출근하셨나봐요?ㅎㅎ”
엄마는 멍하니 날 봤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얼굴이었다.
나는 덧붙였다. “아 그때 님이랑 같이 사시는분 사위 아니셨어요? 매일 같이 방에서 나오고 길래 결혼하신줄 알았는데 아니였…”
말이 끝나기 전에 엄마의 표정이 굳었다. 봉투를 내려놓고 신발을 벗더니,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이게 뭐야?” 하는 소리가 났다. 남자 슬리퍼, 남자 티셔츠, 책상 위 면도기.
그때 딸이 편의점 봉투를 들고 돌아왔다. “엄마? 왜 문 열어놓고—” 말이 끊겼다. 엄마가 슬리퍼를 들고 서 있었다.
복도 끝에서 남친이 나타났다. 주말에 본가 간다고 해놓고 슬쩍 올라온 모양이었다. 셋이 동시에 서로를 봤다. 나는 슬쩍 고개를 숙이고 내 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 엄마 목소리가 터졌다. “이게 뭐야! 누구야 이 사람!” 딸이 울먹이며 뭐라고 변명했고, 남친은 “아줌마, 진정하세요”를 반복했다.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고성이 벽에 울렸다.
그다음 주부터 옆방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토요일 반찬 봉투도 안 왔다. 이주 뒤, 이삿짐 박스가 복도에 쌓였다. 그 애는 나를 흘겨보면서도 말은 안 했다. 엄마는 짐을 옮기다가 나를 보더니, 짧게 한숨을 쉬고 고개를 돌렸다.
나는 모른 척 이어폰을 꽂았다. 쌤통이긴 했는데, 생각보다 뒷맛이 개운하진 않았다. 그래도 그해 여름, 옆방에서 들리던 야간 방송은 완전히 끝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