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른이야. 돌싱 누나가 이사한다길래 도와주러 갔어. 누나가 불러서 간 자리야. 전남편이랑 헤어진 지 일 년이야. 이삿짐 센터는 점심 뒤에 온대. 나는 오전에 박스 테이프만 붙이러 갔어.
안방 매트리스를 세우는데 밑에서 남자 넥타이가 떨어졌어. 전남편은 점 무늬만 찼어. 이건 남색 무지야. 내가 본 적 있는 매듭이야. 누나가 그걸 집더니 방문을 닫았어. 사실 이 사람이 오늘 오후에.
말이 거기까지야. 현관에서 이삿짐 아저씨가 벨을 눌렀어. 누나가 넥타이를 이불 밑에 넣고 나갔어. 나는 방 안에 남았어. 넥타이 안쪽에 이니셜이 수놓아져 있었어. 전남편 이니셜이 아니야. 내 친구 이니셜이랑 같았어.
누나가 아저씨 안내하고 다시 들어와 문을 닫았어. 네 친구 거 맞아. 전남편 거 아니라고 했잖아. 누나가 상자 테이프를 끊으며 말했어. 오늘 오후에 박스 하나 더 가져오겠대. 네가 저녁에 그 애랑 술 마시기로 한 그 시간 전에.
나는 누나를 추궁하려고 상자 위에 앉지 않았어. 따라가지도 않았어. 누나가 내 이름을 낮게 불렀어. 소개해 준 건 네가 아니야. 다만 이 사람이 너한테 오늘 술 마시자고 한 이유, 네가 아직 몰라.
이삿짐 아저씨가 냉장고를 밀며 지나갔어. 누나가 넥타이를 내 손에 다시 쥐여 줬어. 안에 메모가 접혀 있었어. 오늘 오후 세 시. 동생 오기 전에. 글씨가 남자 거야. 내 친구 필체야. 카톡에서 보던 그 기울기.
누나가 내 어깨를 밀며 말했어. 사실 이 사람이 오늘 오후에 또 와. 이삿짐 도우러가 아니야. 나 보러. 네가 저녁에 만나기로 한 그 애가 어젯밤에 여기 있었어. 메모 다음 줄에 새 주소가 아니라 오늘 밤 술집 이름이 적혀 있었어. 내가 잡기로 한 그 집이야.
나는 메모를 접어 넥타이에 다시 넣었어. 누나가 문을 열며 마지막으로 덧붙였어. 사실 이 사람이 오늘 오후에 너보다 먼저 여기 온대. 네 친구. 이사 간 줄 모르고. 네 앞에 서서 누나 어디 있냐고…
나는 그 술집 이름을 지웠어. 저녁 약속은 취소하지 않았어. 누나가 박스 테이프를 다시 붙이며 말했어. 네가 먼저 묻지 마. 그 애가 네 앞에서 누나 어디 있냐고 하는 그 순간을, 네가 보게 될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