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팀에 나보다 두 살 많은 유부녀 동료가 있어. 일 잘하고 말도 잘 통해서 야근하면 자주 같이 밥 먹었어. 솔직히 호감은 있었지. 그래도 결혼한 사람이니까 먼저 개인적인 연락은 안 했어. 그날도 열한 시 넘어서 퇴근하다가 각자 집에 갈 참이었어.
그런데 그 사람이 주차장 입구에서 한참 서 있더니 오늘만 우리 집 소파에서 자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 남편이랑 크게 싸워서 집에 들어가기 싫대. 내 집이 회사 근처인 건 팀 사람들이 다 알았어. 나는 잠깐 놀랐지만 바로 된다고 했어. 다른 데 갈 생각은 해봤냐는 말도 안 나왔고.
집에 와서 새 수건이랑 편한 티셔츠를 꺼내줬어. 그러다 냉장고에 있던 맥주도 두 캔 꺼냈지. 그 사람이 힘들어 보여서 그랬다고 하면 반만 맞아. 회사 밖에서 둘이 밤늦게 있는 게 처음이라 나 혼자 분위기를 의식했거든. 평소 안 치우던 식탁 위 영수증까지 급하게 치웠어.
그 사람은 맥주를 안 마셨어. 의자에 앉자마자 반지를 빼서 식탁에 놓더니 남편한테 우리 집 주소를 보냈다고 하더라. 내가 놀라니까 찾아오지는 않을 거라고 했어. 그러고는 부탁 하나만 하겠대. “남편이 물어보면 내가 여기 왔다고 꼭 말해줘요. 숨겨주지 말고.”
왜 굳이 내 집 주소를 보내냐고 했어. 그랬더니 남편이 며칠 전 여자 동료 집에서 자고 왔다는 거야. 술이 취해서 소파만 빌렸고 아무 일도 없었으니 떳떳하다고 했대. 자기가 속상하다고 하니까 오히려 사람을 뭘로 보냐며 화를 냈고. 그 말을 듣는데 내가 꺼낸 맥주 두 캔이 갑자기 민망해졌어.
내가 뭔가 말하려니까 그 사람이 먼저 미안하다고 했어. 하지만 오늘만 부탁한대. 나는 이미 들인 사람을 나가라고 할 수도 없어서 침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어. 한참 뒤 물 마시러 나왔는데 소파에 누운 채 눈을 뜨고 있더라. 서로 아무 말도 안 했어.
다음 날 아침 여덟 시쯤 초인종이 울렸어. 남편이었어. 문 열자마자 안쪽을 보려고 하길래 내가 현관에 서서 막았지. 동료분은 소파에서 주무셨고 다른 일은 없었다고 했어. 그러니까 그 남자가 헛웃음을 치더라. “아무 일 없었다고요? 이 사람이 왜 하필 여기 왔는지는 알아요?”
뒤에서 나온 동료가 내 팔을 잡았어. “그 얘기까지 하면 내가 어젯밤에 무슨 생각으로 왔는지……” 남편은 말을 끊고 나를 봤어. “이 사람이 지난번에 그랬어요. 회사에 자기 좋아하는 남자 있다고. 이름까지 얘기했어요.” 동료가 내 팔을 더 세게 잡았어. 나는 그 손부터 천천히 뗐어.
내 마음을 모르고 온 게 아니었던 거야. 남편이 제일 불편해할 집을 골라온 거였어. 나는 현관문을 조금 더 열고 말했어. “두 분 얘기는 밖에서 하세요. 어젯밤에 아무 일 없었던 건 맞습니다.” 동료가 나를 쳐다봤지만 덧붙여주고 싶지 않았어. 그렇다고 없던 일을 있었다고 만들 생각도 없었고.
둘이 나간 다음 소파 이불을 접는데 식탁 위에 반지가 남아 있었어. 전화해서 내려오면 가져다주겠다고 했지. 동료가 어젯밤 일은 언제 한번 밥 먹으면서 설명하고 싶대. 나는 반지만 건네고 올라왔어. 현관에 돌아오니 따지도 않은 맥주가 그대로 있더라. 냉장고에 넣으려다가, 내가 어젯밤 그걸 왜 두 캔이나 꺼냈는지 한참 생각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