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른다섯이고, 아내도 동갑이야. 결혼한 지 사 년 됐어. 금요일에 아내가 고등학교 동창회 간다고 했어. 나는 물어볼 생각도 안 했어. 마침 대학 친구들이 한잔 하자고 해서 나갔거든. 식당은 친구가 잡았어. 자기 단골이래.
룸에 앉아서 안주를 집는데, 옆 룸이 열려 있었어. 단체 손님이 많아서 가벽을 접어 둔 상태였지. 눈이 갔는데, 아내가 앉아 있는 거야. 나는 친구들한테는 말 안 했어. 동창회면 민망하니까. 일부러 아는 척도 안 했어.
아내 옆에 남자 하나가 붙어 앉았어. 처음엔 고등학교 동창인 줄 알았어. 웃는 각도가 집에서는 본 적 없는 각도였어. 나는 소주잔만 만졌어.
안주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둘의 손이 테이블 밑에서 만났어. 나는 잔을 내려놓았어. 친구 하나가 뭐 봤냐고 해서 그냥 웃었어.
화장실을 핑계로 복도로 나갔어. 아내가 비상구 쪽에서 통화하고 있었어. 등은 이쪽을 보고, 나는 안 보는 각도였어. 목소리가 낮았어. 오늘만 남편인 척 해줘. 애들은 내가 아직 미혼인 줄 알아. 단톡에서 맨날 솔로라고 해 왔대. 명찰에 당신 성 쓰면 돼. 남자 목소리가 받았어. 알겠어요. 반지 끼면 되죠.
나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와서, 내 룸으로 돌아갔어. 아는 척 안 했어. 옆 룸 명찰이 잠깐 보였어. 고등학교 때 이름이 아니었어. 처음 보는 성이었어.
친구가 내 얼굴을 보더니 담배를 권했어. 밖에서 한 대 피우자고. 복도에서 그 친구가 낮게 말했어. 야, 저 남자 작년에 네 와이프 회사 신입 환영회에서 봤어. 전남친 아닌데.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룸으로 다시 들어갔어.
옆 룸에서 축배가 울렸어. 사회자가 신혼처럼 붙어 앉은 둘을 웃으며 소개했어. 오늘의 미혼 커플. 아내가 그 남자 팔을 잡고 일어났고, 나는 잔을 든 채 가만히 있었어.
친구가 내 귀에 한마디를 더했어. 식당은 내가 골랐어. 단골이라서가 아니야. 네 와이프가 나한테 먼저 연락했어. 오늘 그 남자 자리만 잡아 달라고. 나는 그 자리에서 할 말을 잃었어. 같은 식당이 겹친 줄 알았는데, 내가 앉은 자리가 이미 그 판의 옆자리였던 거야.
아내가 복도로 나오길래 나는 일어서지 않았어. 아는 척 안 하기로 한 거, 끝까지 지켰어. 대신 친구 휴대폰이 울렸어. 아내 이름. 친구가 화면을 나한테만 보여 줬어. ‘옆 룸 내 남편 아니지? 오늘 말 꺼내지 마. 사실 저 남자한테 부탁한 건 남편 역할만이 아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