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영어학원 상담을 받으러 갔다. 대기실 유리 너머로 아내가 보였다. 상담실 소파에서 다른 아이 아빠 무릎에 반쯤 걸쳐 앉아 있었다. 손이 아내 허리에 들어가 있었다.
문을 열려는데 원장이 나를 붙잡았다. 오늘은 학부모 특별 상담이라 출입 제한이래요. 유리 너머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우리 회사 인사팀장이었다. 웃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원장이 태블릿을 보여 줬다. 특별 상담 신청서에 내 서명이 있었다. 필체는 아내 것이었다. 목적란에 ‘남편 인사평가 사전 조율’이라고 적혀 있었다. 팀장이 말했다. 승진 시즌이라 사모님과 분기마다 이런 자리를 갖는다고. 당신이 몰랐던 이자야.
내가 소리를 지르려는데 팀장이 문을 열고 나왔다. 이어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말했다. 본부에서 오늘 영상을 요청했어요. 상담실 카메라는 인사팀 클라우드로만 저장됩니다. 항의하면 평가가 꼬이고, 침묵하면 다음 분기 스케줄만 조율된대.
아내가 유리 너머에서 고개를 숙였다. 당신이 야근한다며 아이 학원비를 미룬 달부터 시작됐어. 몸을 판 게 아니라 평가를 산 거라고. 원장이 서류를 내밀었다. ‘학부모 특별케어 동의서’. 서명란에 다음 상담 날짜와 내 사번이 미리 찍혀 있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인사팀 메일로 ‘면담 후속’이 도착했다. 첨부 파일 이름은 아이 이름이었고, 내용은 내 근태 기록과 오늘 상담실 스틸컷이었다. 아내가 조수석에서 담담히 물었다. 다음 달도 캘린더에 넣을까.
다음 날 회사 인트라넷에 ‘인사 면담 사전 자료’가 올라왔다. 첨부 썸네일이 상담실 스틸컷이었다. 열람 권한자가 나와 팀장뿐이었다. 팀장이 메신저로 보냈다. 이번 분기도 학원에서 보자. 아이가 중간에 교실에서 나와 내 손을 잡으며 물었다. 엄마가 다른 아저씨랑 상담하는 거, 아빠도 아는 거지? 나는 대답 대신 학원 앱의 다음 상담 예약을 취소했다. 취소 버튼이 비활성으로 바뀌며 ‘인사팀 승인 필요’라는 문구가 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