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27, 남친 29살. 남친이 바에서 일하는 건 알고 있었음. 어제 춥다고 옷 좀 가져다 달래서 갔는데, 손님 한 명이 남친 옆에 앉아 있더라. 내가 들어가니까 남친이 갑자기 동생 왔다고 함.
손님 앞에서만 그러는 건가 싶어서 일단 가만히 있었어. 근데 그 여자가 날 처음 보는 것 같지가 않은 거야. 사진보다 예쁘다면서 학교는 잘 다니냐고 물음.
남친이 옷만 놓고 가라는데 그 여자가 잠깐 앉으래. 오빠한테 얘기 많이 들었다고, 실습 나가는 건 안 힘드냐고 하더라. 나 지금 회사 다니는데 무슨 실습.
그러더니 “등록금 때문에 오빠가 많이 힘들어하던데, 내가 보낸 돈으로 해결했지?” 하는 거임. 나 대학 졸업한 지 4년 됐어. 남친 얼굴 봤더니 나한테 대답하지 말라고 눈짓하고 있었음.
남친이 손님도 들어왔으니까 나가서 얘기하자고 내 옷가방을 들었어. 나는 그 자리에서 무슨 등록금이냐고 물었음. 그 여자가 간호학과 다니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 내가 졸업한 과가 간호학과인 건 맞아. 남친이 내가 예전에 보내준 실습복 사진을 보여줬던 거임. 그걸 지금 찍은 사진처럼 설명한 거고.
나 학생 아니고 여기 직원 여자친구라고 말했어. 그 여자가 웃다가 표정이 딱 굳더라. 남친도 여동생인 척한 건 손님한테 여친 있다고 말하기가 애매해서 그랬다고 둘러댔음. 그런데 그분은 연애 여부보다 돈부터 물었어. 지난번 등록금이랑 이번 실습 때문에 방 얻는 돈은 누구한테 갔냐고.
난 등록금 받은 적 없고 이사도 안 했다고 했어. 그분이 휴대폰을 꺼내서 남친과 나눈 대화를 보여줬는데 내 사진이 여러 장 있었음. 졸업식 때 엄마랑 찍은 사진은 엄마를 잘라서 보냈더라. 내가 주말에 편의점 알바하던 오래전 사진도 있었고. 내가 힘들었던 시절을 남친한테 얘기했던 것들이 전부 현재 자기 사정으로 바뀌어 있었음.
그분은 동생을 혼자 챙긴다고 해서 안쓰럽기도 했고, 나중에 여유 생기면 갚겠다는 말을 믿고 돈을 보냈대. 남친은 곧 직원에서 매장 운영을 맡을 수도 있다고 했다는데 그것도 처음 듣는 얘기였음. 그분이 날 위아래로 보더니 그 가방은 남친이 사준 거냐고 물었어. 내 어깨에 메고 있던 생일 선물 말하는 거였음.
맞다고 했더니 그분이 남친한테 자기가 보낸 돈으로 이걸 샀냐고 따졌어. 남친은 자기 월급도 있으니까 어느 돈으로 샀는지는 그렇게 따질 수 없대. 그러더니 나한테도 선물 받을 때는 좋아하지 않았냐고 함. 나는 그때 야근 많이 해서 샀다는 말을 들었지, 내 등록금 핑계로 다른 사람한테 돈을 받았다는 얘기는 못 들었음.
그분도 처음에는 나까지 알고 있었던 거 아니냐고 의심했어. 내가 남친한테 보냈던 원래 사진과 날짜를 내 폰에서 보여줬음. 지금 다니는 회사 얘기를 주고받은 대화도 같이 보여줬고. 남친은 우리 둘이 자기 빼고 휴대폰을 보고 있으니까 이런 데서까지 사람 망신 줄 필요 있냐고 하더라. 손님이 더 들어오니 밖으로 나가자는 말만 반복했어.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남친한테 돌려줬음. 이걸 그분 돈 대신 갚은 걸로 치자는 뜻은 아니고, 출처를 알면서 계속 메고 다니기는 싫었어. 돈은 받은 사람이 그분과 직접 얘기하라고 했음. 그분은 내 연락처를 받아갔고, 나는 남친에게 내 사진을 더 쓰지 말라고 그분 앞에서 분명히 말했어. 둘이 언제 얼마를 갚기로 했는지는 내가 대신 정할 일이 아니었음.
집에 오니까 남친이 전화해서 그래도 나한테 쓴 돈도 있는데 자기 혼자 나쁜 사람이 됐다고 하더라. 너 잘해주려고 한 것도 있다고. 내가 돈 달라고 했냐고 묻는데, 그날 가져다준 옷가방이 아직 내 손에 있었음. 자기 옷 가져오라고 부르면서도 내가 그 손님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한마디도 안 해준 사람이잖아. 들켜도 내가 대충 맞춰줄 줄 알았나 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