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변 때문에 대장내시경을 받았어. 마취는 안 하기로 했어. 문제는 처음에 의사 선생님이 내시경을 직장이 아닌 쪽으로 넣는 느낌이 났다는 거야.
당황해서 앗 잠깐을 외치려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내 손을 꼭 잡으며 괜찮아여, 원래 불편해여, 하더라. 옆에 간호사만 세 명이 있었고 표정이 전부 평온했어. 너무 평온해서 순간 내가 착각한 줄 알고 가만히 있었어. 의사가 낮게 속삭였어. 오늘은 보호자분이 밖에 안 계시니까, 검사 조금만 길게 갈게요. 손이 다시 움직였어.
검사가 끝난 뒤 탈의실에서 옷을 입는데, 간호사가 문을 반만 열고 명함을 밀어 넣었어. 보호자 없이 오시면 야간 검사만 가능하다며, 오늘처럼.. 이라고 적혀 있었어. 뒷면에는 카카오톡 아이디가 있었고, 오늘 검사 영상 일부라는 파일이 이미 전송돼 있었어.
나는 병원에 항의하러 원무과로 갔다가 발길을 멈췄어. 대기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나를 보더니 고개만 끄덕였거든. 그 남자는 내 전 여자친구의 새 남자였어. 간호사가 뒤에서 다가와 작게 말했어. 보호자 칸에 그분이 예약자 보호자로 등록돼 있어요. 당신이 마취 거절한 사실까지 미리 알고 오신 분이에요.
의사가 복도 끝에서 장갑을 벗으며 말했어. 오늘 건은 진료 기록에 환자 협조 불가로 남을 수도 있고, 조용히 야간으로 정리될 수도 있어. 선택은 당신 몫이야. 간호사가 내 손에 남은 젤을 닦아주며 덧붙였어. 전여친분이 보낸 의뢰서에는, 당신이 예전에 몰래 찍었던 영상에 대한 대가라 적혀 있었어요.
나는 원무과 대신 주차장으로 나갔다. 전여친의 새 남자가 차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 말을 걸었다. 오늘 검사는 의료가 아니라 합의 절차였다고. 예전 영상 원본을 지우면, 야간 차트도 같이 사라진다고. 간호사가 문자로 카운트다운을 보냈다. 3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