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자른 팀장이 자기 결혼식 사회를 봐달랍니다

저를 자른 팀장이 자기 결혼식 사회를 봐달랍니다. 나 33살이고 두 달 전 계약 끝났음. 예전에 회사 행사 몇 번 진행했다고 연락했더라. 거절하려는데 자기가 아는 회사에 추천해놨대. 진짜 면접 연락도 왔음.

아직 일 못 구한 상태라 일단 식순만 받아봤어. 근데 내 소개 멘트에 “직장까지 잃었던 저를 끝까지 믿어주신 분”이라고 적혀 있더라. 본인이 계약 끝났다고 통보한 사람인데ㅋㅋ

이런 말은 못 읽겠다고 했더니 면접 볼 회사 대표가 자기 예비 장인이래. 내가 왜 잘렸는지도 설명해놨으니 딴 얘기 하지 말고 적힌 대로만 하라는 거임.

쿠팡이츠 링크 배너

뭘 설명했냐고 물으니까 내가 술 먹고 거래처에서 난동을 부렸는데 자기가 좋게 내보내 준 걸로 얘기했대. 근데 그날 술 먹고 난동 부린 건 내가 아니라…

팀장 본인이었음. 거래처랑 회식하다가 상대가 계약 조건 얘기를 꺼내니까 자기 무시하냐고 목소리를 높였어. 내가 말리려고 하니까 막내가 끼어들 일이 아니라고 했고. 나는 그날 운전해야 해서 술도 안 마셨음. 결국 팀장 택시에 태워 보내고 남아서 대신 사과했어.

다음 날 팀장이 거래처 담당자한테 사과 문자를 보냈다고 나한테 캡처를 줬었어. 자기가 취해서 실례했다고,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하겠다고 쓴 문자였음. 내가 담당자랑 실무 연락을 하니까 분위기 좀 봐달라고 보낸 거였고. 그 대화가 아직 남아 있었어.

그 일 있고 거래는 줄었고 두 달 뒤 내 계약도 끝났음. 그때는 팀 개편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어. 내가 회식 사건 때문에 잘리는 거냐고 물었을 때도 그거랑 상관없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제는 나한테 술 문제가 있었고, 팀장이 봐줘서 조용히 나간 사람이 돼 있는 거임.

팀장은 장인어른한테 그런 얘기를 자세히 할 필요는 없다고 했어. 내가 지금은 성실하게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고 좋게 말해놨으니, 굳이 누가 그랬는지 따져서 기회를 날리지 말래. 없는 잘못을 인정해야 생기는 기회인데 그걸 기회라고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더라.

식순에 있던 감사 멘트도 다시 보였음. 그냥 결혼식에서 자기 좋은 사람이라고 해달라는 게 아니었어. 자기가 장인한테 해놓은 설명을 내가 마이크 잡고 확인해주는 자리였던 거지. 취업 도와준 사람이 아니라, 사고 치고 나온 후배까지 챙기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거야.

쿠팡이츠 링크 배너

사회는 못 보겠다고 했어. 면접 보는 회사에도 내가 사고 쳤다는 말은 정정해달라고 했고. 팀장은 그걸 정정하면 자기가 뭐가 되냐더라. 나는 뭐가 되는데. 그랬더니 네가 말 안 하면 아는 사람 없고 회사 들어가서 잘하면 될 일이라고 했어. 그 회사 대표가 이미 안다고 믿고 있는데.

면접은 예정대로 갔음. 안 가면 거기서는 그냥 술 문제 있는 사람이 면접까지 펑크 낸 걸로 남을 것 같았어. 실제로 대표가 먼저 요즘은 술 안 마시냐고 묻더라. 실력 얘기하기도 전에 그 질문부터 받으니까 얼굴이 뜨거워졌음. 잘 보이려고 준비한 답은 하나도 못 했어.

그 회식에서 술 마신 사람은 제가 아니었다고 했어. 말만 하면 서로 떠넘기는 걸로 보일까 봐, 팀장이 내게 보냈던 사과 문자 캡처와 앞뒤 대화도 보여줬음. 날짜를 확인하더니 대표가 한참 읽었어. 그러고는 결혼식 사회도 고마워서 먼저 해주겠다고 한 게 아니냐고 묻더라. 그것도 부탁받은 거라고 답했음.

대표는 먼저 들은 얘기와 다르니 확인하겠다고 했어. 나도 결혼식을 망쳐달라고 간 게 아니라 그 잘못이 내 이름으로 남는 게 싫어서 간 거였어. 면접은 경력 질문 몇 개 더 하고 끝났고.

나오고 한 시간쯤 뒤 팀장한테 전화 왔어. 장인어른한테 대체 뭘 보여줬냐고, 결혼 앞둔 사람한테 이러는 게 맞냐고 하더라. 없는 얘기 붙인 건 없고 팀장이 직접 쓴 사과문 보여줬다고 했어. 그랬더니 그거 아직도 갖고 있었냐고 함. 미안하다는 말은 끝까지 안 했어.

결혼식 사회는 다른 사람이 했고 나는 안 갔음. 면접 결과는 아직 안 나왔는데, 채용 담당자한테는 술 문제로 퇴사한 게 아니라는 설명 확인했다고 연락 받았어. 팀장은 나한테 청첩장 보냈던 걸 지웠더라. 부탁할 땐 그렇게 전화하더니, 이제는 내 번호 뜨는 게 더 싫을 것 같아.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