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이 동창회 끝나면 데리러 와달라길래 알겠다고 했음. 나 31살, 여친도 동갑이고 사귄 지 4년 됨. 근데 식당 안에는 들어오지 말고 건너편에서 기다리래. 친구들한테 인사라도 하겠다니까 그날은 좀 곤란하다는 거야.
알고 보니 나 대신 데려갈 남친을 따로 구했음. 바람도 아니고 남친 대행ㅋㅋ 나는 작은 식당 하는데 동창들한테는 남친이 의사라고 해놨더라.
기막힌 건 끝나고 그 남자도 역까지 태워다 달라는 거임. 차 두 대 부르면 돈 아깝다면서. 내가 데려온 여친을 남친 행세한 놈이랑 같이 모셔오라는 소리잖아.
우리 내년에 결혼 얘기하고 있었거든. 그럼 결혼식에는 뭐라고 할 거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생각해놨대. 근데 그 방법이라는 게…
의사 남친이랑 헤어지고 힘들어할 때 내가 옆에서 잘해줘서 결혼하게 됐다고 하면 된다는 거였음. 처음엔 내가 잘못 들었나 했어. 우리 4년 만났는데, 그 사람들은 내가 차인 여자 달래주다가 결혼하는 놈으로 알면 된다는 거잖아.
여친 말로는 처음부터 크게 거짓말한 건 아니래. 사귄 초반에 친구가 남친 무슨 일 하냐고 물었을 때 그냥 병원 쪽이라고 했대. 왜 그런 말을 했냐니까 그때 친구들이 다 남친 직업 얘기하고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그랬다는 거야. 그 뒤로 과는 뭐냐, 근무는 어디서 하냐 물으니까 하나씩 붙었고.
나한테는 그동안 친구들이 다 멀리 살아서 모이기 힘들다고 했음. 그래서 단체로 소개받은 적이 없었어. 사진도 잘 안 올리는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친구들한테 내 얼굴이 알려지면 곤란했던 거더라. 나랑 같이 찍은 사진은 가까운 친구 몇 명만 보게 해뒀다는 것도 그날 알았음.
이번엔 친구 하나가 결혼한다고 다 모이는 자리라 피할 수가 없었대. 혼자 가서 헤어졌다고 하면 되지 않냐니까 청첩장 주는 자리에서 자기 이별 얘기로 분위기 망치기 싫다더라. 그 걱정은 하는 사람이 나한테 이 소리 하면 분위기 어떻게 될지는 생각 안 했나 봄.
대행 남자 프로필도 보여줬어. 나보다 키가 좀 크고 정장 입은 사진이었음. 나를 보고 맞추는 게 아니라 애들한테 설명해둔 남자랑 비슷한 사람으로 골랐대. 그 말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해서 폰을 다시 밀어줬음. 내가 그 사람 외모까지 평가해줘야 하나 싶었어.
나는 가게 차릴 때부터 여친 만났음. 처음 장사 안될 때 여친이 와서 같이 밥 먹고, 배달 밀리면 포장도 해주고 그랬거든. 힘들어도 자기 일 하는 게 멋있다고 해서 그 말 오래 기억했어. 근데 동창들 앞에서는 남친이 하면 안 되는 일이었던 거지.
여친은 내가 왜 자기 마음을 이렇게까지 몰라주냐고 했어. 딱 하루만 넘어가면 앞으로 거짓말 안 해도 된다면서. 내가 결혼하면 친구들한테 식당 한다고 당당하게 얘기할 거냐니까 그때는 이미 결혼했으니 상관없지 않겠녜. 결혼 전의 나만 지워놓으면 괜찮다는 소리처럼 들리더라.
못 데리러 간다고 했더니 대행 예약도 취소해야 되냐고 묻더라. 그걸 왜 나한테 묻냐고 했어. 잠깐 말이 없더니 예약금은 못 돌려받는다고 함. 그 순간까지 돈 아깝다는 얘기가 나오니까 더 할 말이 없어졌음.
며칠째 연락은 오는데 결혼 얘기는 일단 멈췄어. 아직 동창회는 안 했고 대행을 취소했는지도 안 물어봤음. 오늘 가게 정리하다가 여친이 전에 사다 준 앞치마 봤는데, 그거 입은 나랑 같이 찍자던 사진은 누구한테 보여줬나 그 생각부터 나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