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이 자기 친구랑 잤다고 거짓말 좀 해달래.
나 32살, 여친 30살임.
그 친구는 같이 밥 먹은 게 딱 두 번인데
갑자기 나랑 예전에 잠깐 만난 사이로 하자는 거야.
누가 물으면 맞다고만 해주면 된대.
내가 왜 그래야 되냐니까
그 친구가 만나려는 남자 사진을 보여줌.
근데 나도 아는 사람이었음..
여친이랑 사귄 지는 일 년 조금 넘었음. 여자들끼리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평소에 잘 안 묻는 편이고, 그 친구도 여친 생일이랑 연말에 같이 밥 먹은 게 전부였어. 둘이 따로 연락한 적도 없음.
사진에 있던 남자는 여친 전남친이었음. 예전에 여친이 같이 찍은 사진을 정리하다 보여준 적이 있어서 얼굴을 알아봤지. 여친 말로는 헤어진 뒤에도 그 친구가 둘 사이 얘기를 다 알고 있었대.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 남자랑 연락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거임.
그러면 친구한테 싫다고 말을 하든가, 연락을 끊든가 하면 되잖아. 왜 거기에 나랑 잤다는 얘기가 들어가야 하냐고 물었음. 그랬더니 전남친이 아는 사람끼리 엮이는 걸 엄청 싫어한대. 나랑 잠깐 만났고 지금은 내 여친의 친구니까 복잡해서라도 알아서 떨어져 나갈 거라는 거야.
듣는데 나도 좀 웃음이 나오더라. 자기 전남친이 친구 만나는 건 싫고, 현재 남친이 자기 친구랑 잤다는 소문이 나는 건 괜찮다는 거잖아. 그렇게 말했더니 진짜로 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고 함. 어차피 그 남자한테만 말하고 끝낼 거래.
솔직히 처음에는 그렇게 싫으면 도와줄까 잠깐 생각했음. 내가 그 친구를 계속 볼 것도 아니고, 여친은 자기 사정 뻔히 아는 애가 어떻게 그러냐면서 울기까지 했거든. 근데 언제 만난 걸로 할 거냐고 물으니까 작년 봄쯤이면 되지 않겠냐는 거야. 나 그때도 지금 여친이랑 사귀고 있었음.
그럼 나는 네 친구랑 바람피운 놈이 되는 거 아니냐니까, 몇 달 전으로 당기면 되지 뭘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냐더라. 여기서 좀 정떨어졌음. 내 얘기인데 날짜도 대충이고, 그 친구는 자기가 누구랑 잤다는 소문이 도는지도 모르잖아.
싫다고 했더니 한동안 말이 없었음. 그러다가 폰을 내밀면서 이것만 보내주면 안 되냐고 함. 나보고 새로 거짓말을 시작하라는 게 아니었어. 이미 전남친한테 나랑 그 친구가 예전에 만났다고 보냈더라. 남자가 못 믿겠다고 하니까 당사자가 직접 확인해주면 되잖아, 거기까지 말을 해놓은 상태였음.
그 밑에는 나한테 보내 달라는 문장도 써뒀더라. 짧게 만난 건 맞지만 지금은 각자 잘 지내니까 굳이 얘기 꺼내지 말자는 내용이었음. 말투까지 내가 평소에 쓰는 식으로 써놨던데, 그걸 보니까 이상하게 더 기분이 나빴어. 나는 옆에서 처음 얘기 듣고 있었는데 내 입으로 할 말은 이미 다 정해져 있었던 거임.
내 이름 빼라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할 거라고 했음. 그랬더니 지금 와서 그러면 자기가 이상한 사람이 된대. 전남친한테 전화해서 잘못 말했다고 하면 되지 않냐니까 그건 또 싫대. 결국 그날 저녁 먹기로 한 것도 취소하고 집에 왔음.
이틀 뒤에 그 친구한테 처음으로 개인 연락이 왔어. 혹시 나랑 만났다고 말한 적 있냐고. 없다고 답했더니 알겠다고만 하더라. 전남친이 바로 그 친구한테 물어본 거지. 여친한테도 내가 아니라고 답했다고 말했음. 숨기고 있다가 또 무슨 말을 붙일까 봐.
지금 여친은 내가 자기 편을 안 들어줬다고 연락을 안 함. 나도 먼저 안 하고 있고. 근데 내가 제일 묻고 싶은 건 아직 못 물어봤음. 걔네 둘 못 만나게 하겠다고 지금 만나는 나까지 끌어들일 정도면, 그 전남친은 대체 언제 정리된 거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