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산후조리원에 들어가고 처음 면회하러 간 날이었어. 나는 서른넷, 아내는 서른둘이었어. 결혼한 지 삼 년 됐고, 서로 힘든 일 있으면 숨기지 않고 말하는 사이라고 믿었어.
출산 때는 곁에 있었는데, 조리원으로 옮기는 날부터 회사 일이 꼬였어. 아내도 전화로 밥 잘 나오고 편하게 쉬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 나는 그 말을 믿고 사흘 만에 오전 반차를 냈어.
도착한 건 오전 열한 시쯤이었어. 아내가 먹고 싶다던 빵을 들고 방으로 안내받았어. 그런데 문 앞 슬리퍼장에 남자 슬리퍼가 한 켤레 있었어. 크기가 꽤 작았어. 내 발은 뒤꿈치가 한참 남을 것 같았어.
아내한테 물었더니 조리원에서 비치한 물건 같다고 했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빵 봉투를 내려놨어.
손을 씻으러 세면대 쪽으로 갔다가 포장이 벗겨진 일회용 면도기를 봤어. 옆에는 작은 면도 거품 통도 있었어. 나는 전기면도기만 썼고, 그 방에 들어온 것도 처음이었어.
그때 마흔쯤 돼 보이는 간호사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어. 간호사는 나를 보더니 아내에게 웃으면서 말했어.
“남편분 아침에도 오셨죠? 오늘은 오래 계실 수 있나 봐요.”
나는 물을 잠그다 말고 간호사에게 물었어.
“저 오늘 처음 왔는데요. 다른 방하고 헷갈리신 거 아니에요?”
간호사는 아내 얼굴을 한번 보더니 방 번호를 다시 확인했어. 그리고 확인해 보겠다면서 나갔어.
문이 닫히니까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어. 아내는 빵 봉투 손잡이만 만지고 있었어.
나는 면도기를 가리키면서 아내에게 물었어.
“누가 왔었어?”
아내는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이라고 했어. 나도 결혼식에서 인사한 적 있는 서른여섯 살 남자였어. 가까운 곳에 볼일이 있어서 필요한 물건만 가져다줬다고 했어.
나는 슬리퍼를 다시 봤어. 물건만 두고 간 사람이 신발을 갈아 신고, 면도까지 했다는 게 이해가 안 됐어.
아내에게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어.
“그 사람이 여기서 왜 면도를 해? 그리고 왜 남편이라고 해?”
아내는 그 사람이 밤새 근무하고 바로 와서 잠깐 씻었다고 했어. 남편이라는 말에는 대답을 안 했어.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어. 아내가 들어오라는 말도 하기 전에 문이 조금 열렸어. 그 남자였어.
그는 나를 보고 멈췄다가 세면대 쪽을 가리켰어.
“면도 용품을 놓고 가서요. 잠깐 챙기겠습니다.”
나는 문 앞에서 비켜주지 않았어. 대신 그 사람에게 물었어.
“여기서 제 아내 남편이라고 하셨어요?”
그 사람은 아내를 한번 보더니 직원이 먼저 그렇게 불렀다고 했어. 나는 다시 물었어.
“그래서 아니라고 하셨어요?”
그 사람이 입을 다물었어. 그러자 아내가 내 팔을 잡고 말했어.
“내가 그냥 맞다고 했어.”
그 말에 아내 손부터 내려다봤어. 며칠 전까지 힘들면 꽉 잡으라고 내줬던 팔이었는데, 그 순간에는 손을 떼고 싶었어. 나는 천천히 팔을 뺐어.
남자가 먼저 나서서 내게 말했어.
“혼자 있는 게 안쓰러워서 도와준 겁니다. 오해하실 일은 없었어요.”
그 사람이 아내 사정을 나보다 잘 안다는 듯이 말하는데, 준비해 온 말이 전부 없어졌어. 따져야 하는데 입을 열면 울 것 같았어.
나는 세면대에 있던 물건을 봉투에 담아서 그 사람에게 건넸어.
“오늘 있었던 일은 아내하고 얘기할게요. 이제 가 주세요.”
그 사람이 나간 뒤에야 의자에 앉았어. 아내는 침대 끝에 앉아서 울었어. 나는 한동안 바닥만 보다가 아내에게 물었어.
“나한테는 괜찮다며. 그 사람한테는 와 달라고 했어?”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어. 혼자 있으니까 서러웠는데, 내가 바쁘다는 말을 먼저 꺼내서 더 얘기하기 싫었다고 했어. 그 사람은 필요한 걸 묻고 바로 와줬다고 했어.
그 말은 아팠어. 전화할 때마다 회사 사정부터 늘어놓은 건 맞았거든. 아내가 괜찮다고 하면 자세히 묻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어.
그런데 그걸 인정하고 나니까 오히려 더 묻고 싶었어.
“내가 못 챙긴 건 미안해. 그런데 그 사람이 남편이냐고 물었을 때, 왜 맞다고 했어?”
아내는 눈물을 닦다가 말했어.
“다들 남편이 챙겨주는데 나만 혼자 있는 것 같았어. 그때는 그냥 나도 그런 사람인 척하고 싶었어.”
나는 가져온 빵 봉투를 봤어. 오는 길에는 저걸 먹으면서 아내가 웃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아내는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다른 사람을 남편이라고 소개했어. 그 장면을 직접 보지도 않았는데 자꾸 머릿속에 그려졌어.
아내에게 말했어.
“당신 외로웠다는 얘기는 들을게. 그런데 오늘 일을 내가 바빠서 생긴 일로 끝내지는 마.”
아내는 한참 뒤에 알겠다고 했어. 그리고 직접 간호사를 불러 아침에 온 사람은 남편이 아니었고, 자신이 잘못 말했다고 설명했어. 나는 옆에서 그 말을 끝까지 들었어.
그날 바로 용서하겠다는 말은 못 했어. 아내가 몸을 회복하는 동안 필요한 건 내가 챙기되, 집에 돌아간 뒤에는 상담을 받으면서 이 일을 제대로 얘기하기로 했어. 아내도 그 사람에게 더는 개인적으로 연락하거나 찾아오지 말라고 하겠다고 했어.
면회 시간이 끝나서 일어나는데 아내가 내게 물었어.
“내일도 올 거야?”
나는 내일 오후에 오겠다고 했어. 몇 시에 올지도 정확히 말했어.
방을 나와서 주차장까지는 멀쩡하게 걸었어. 차에 앉아 아내에게 도착 시간을 보내려고 휴대전화를 켰는데, 아침에 보낸 메시지가 그대로 있었어.
“빵 사서 갈게. 조금만 기다려.”
그걸 보고 나서야 울었어. 나는 그날 아내를 보러 간다고만 생각했어. 내가 남편이라는 걸 설명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