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예비신부가 지난주까지 내 집에서 자던 여자였음.
서로 연애는 안 하고 가끔 만나던 사이였는데, 며칠 전부터 연락이 뜸하긴 했음.
친구가 결혼할 사람 생겼다고 밥 먹자길래 나갔더니 걔가 앉아 있더라.
내 얼굴 보자마자 물컵부터 잡는데 손이 떨렸음.
친구가 화장실 간 사이 내 폰에 문자가 옴.
“나 먼저 얘기할 게 있어. 지금은 모르는 척해줘.”
나는 서른이고 여자는 스물아홉이었음. 앱에서 처음 만났고, 처음부터 진지하게 사귈 생각은 없다고 서로 얘기했음. 애인이 없다는 말도 들었고. 그 뒤로 두 달 정도 만났음.
친구랑은 고등학교 때부터 알았는데 사는 지역이 달라서 자주 보지는 못했음. 최근에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건 알았지만 사진을 보내달라고 할 만큼 서로 연애 얘기를 하는 사이도 아니었고.
친구가 돌아와서 이것저것 시키는데 메뉴판 글씨가 안 들어오더라. 여자는 나랑 눈을 안 마주쳤음. 아까는 손이 떨리더니, 친구 앞에서는 평소보다 훨씬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음.
얼마나 만났냐고 물었음. 친구는 이제 8개월쯤 됐다고 했음.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이었음.
이번에는 여자 쪽에서 내 폰으로 긴 문자가 왔음. 둘이 한동안 헤어져 있었고, 그때 나를 만났다는 내용이었음. 친구가 많이 힘들어했으니 괜히 과거 얘기로 상처 주지 말아달라고.
그런데 지난주 토요일에도 우리 집에 있었음. 내가 출근해야 해서 일요일 아침 일찍 나갔고, 그날 오후에 내 충전기 가져갔다고 사진까지 보내왔음. 그게 불과 며칠 전이었음.
나는 친구한테 둘이 중간에 헤어진 적도 있냐고 물었음. 친구가 왜 그러냐고 웃더니, 싸우긴 해도 헤어진 적은 없다고 하더라.
여자가 갑자기 이제 밥이나 먹자고 함. 배고프다고. 그때부터는 내가 계속 모르는 척하고 앉아 있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음.
일단 밥은 먹었음. 친구가 계산하러 나간 사이 여자한테 오늘 안으로 직접 얘기하라고 했음. 내가 이 자리에서 처음 본 사람처럼 축하해줄 수는 없다고.
여자는 우리가 사귄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했음. 그 말이 맞긴 함. 우리는 사귄 적 없음. 근데 그건 나랑 여자 사이 얘기고, 친구는 자기 여자친구가 따로 누구를 만나는지 모르고 있었잖아.
집에 와서 친구에게 전화했음. 아까 같이 온 사람과 내가 최근까지 만나던 사이였다고 말했음. 처음에는 친구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더라. 장난하지 말라고 두 번이나 함.
친구가 마지막으로 본 날을 물었음. 토요일이라고 하니까 한참 말이 없었음. 그날 여자는 친구들끼리 놀러 간다고 했대. 다음 날 피곤하다고 해서 친구가 죽까지 사다줬다고 함.
친구가 통화를 끊기 전에, 걔가 너한테 내가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냐고 물었음. 없다고 했더니 알겠다고 하더라.
그날 밤 여자한테 전화가 계속 왔는데 받지 않았음. 가져간 충전기는 버리라고 문자만 보냈음.
친구한테는 다음 날 짧게 연락이 왔음. 결혼 얘기는 멈췄고, 당분간 혼자 있고 싶다고. 나도 먼저 연락하지 않겠다고 했음. 같이 술 마시고 욕이라도 해주면 될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내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