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랑 술집에서 남인 척해봤음.
결혼 12년 차인데, 처음 보는 사이처럼 따로 앉아서 내가 번호를 따는 거였음.
나는 두 자리 건너 앉아서 무슨 말을 걸까 고민 중이었는데, 어떤 남자가 먼저 와이프 옆으로 가더라.
와이프가 나를 보고 웃길래 나도 웃었음. 어디 한번 해보라고.
근데 그 남자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웃음이 싹 없어짐.
나랑 매일 점심 먹는 놈이었음..
우리 팀 후배였음. 들어온 지 2년 됐고, 두 달 뒤에 결혼한다고 회사에 모바일 청첩장까지 돌린 상태였음.
와이프는 그 친구 얼굴을 몰랐음. 회사 얘기를 할 때 이름은 몇 번 들었겠지만 직원들이랑 가족 동반으로 만난 적은 없었거든.
나는 뒤늦게 물잔으로 얼굴을 가림. 내가 왜 숨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음. 그냥 너무 당황해서 몸이 먼저 그렇게 움직였음.
후배가 와이프한테 혼자 왔냐고 물음. 와이프는 장난 계속하는 줄 알고 그렇다고 함. 나를 한번 보면서 웃는데, 후배는 자기한테 웃어주는 줄 알았겠지.
둘이 몇 마디 하다가 와이프가 물었음.
“여자친구는요?”
그 친구가 없다더라. 요즘 일만 하다 보니 만날 기회가 없다고. 지난주에는 예식장 잔금 때문에 정신없다고 나한테 하소연하던 놈이.
그때 내가 일어나서 옆으로 갔음.
“너 예식장 계약 취소했어?”
후배가 나를 보더니 진짜 그대로 굳음. 와이프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몰라서 우리 얼굴만 번갈아 보고 있었고.
내가 와이프라고 소개했더니, 아까까지만 해도 술 한 잔 더 하자던 사람이 갑자기 두 손으로 자기 잔을 잡더라. 그러고는 근처에서 친구 기다리다가 잠깐 말 건 거라고 함.
와이프가 “여자친구 없으시다면서요?” 하니까 대답을 안 함. 친구한테 전화 온 척 밖으로 나가더니 그대로 안 들어왔음.
우리도 분위기 깨져서 그냥 집에 갔음. 가는 길에 와이프가 아까 왜 잔으로 얼굴 가렸냐고 물어서, 그제야 둘이 좀 웃었음.
근데 집에 오니까 후배한테 문자가 와 있었음. 술이 좀 들어가서 경솔했다, 형수님께 죄송하다고 전해달라, 부탁인데 회사에는 말씀 안 하셨으면 좋겠다고.
다음 날 점심에 그 친구가 먼저 내려가서 내 자리까지 잡아놨음. 평소엔 맨날 메뉴 골라달라던 애가 내가 좋아하는 집으로 가자고 하고.
나는 밥 먹으면서 딱 하나 물었음.
“어제 내가 안 일어났으면 어디까지 할 생각이었냐?”
괜히 오해하시는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음. 그 말을 듣고 나니 더 얘기할 게 없더라.
퇴근하고 와이프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와이프는 자기 번호 따는 장난은 나 혼자 먼저 망설이다가 끝난 거니까 다음번에는 좀 빨리 오라고 하더라.
우리끼리는 웃고 넘겼는데, 후배 청첩장이 단톡방 위에 떠 있을 때마다 손이 멈춤. 결혼식에 가서 축하한다고 웃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