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가 조금 넘었을 때 방문을 두드린 건 아내의 대학 친구 혜진이었어. 잠옷 위에 얇은 카디건만 걸친 채였고, 손에는 자기 방 카드키가 들려 있었어. 문을 반쯤 열자 혜진은 복도부터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췄어. “오늘만 방을 바꿔 자는 건 어때?”
나는 마흔둘이고 아내는 마흔이야. 혜진 부부도 둘 다 마흔이 넘었고, 네 사람 모두 결혼한 지 10년쯤 된 사이였어. 아내와 혜진이 대학 때부터 절친이라 해마다 한두 번은 같이 여행을 갔지만, 이번처럼 외딴 펜션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건 처음이었어.
저녁까지는 평범했어.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며 아이들 이야기와 회사 욕을 했지. 그런데 혜진 남편이 갑자기 “결혼 오래 하면 설렘이 진짜 없어지냐”고 물었어. 아내가 웃으며 대충 넘기자 혜진은 내 쪽을 보면서 “사람을 바꾸면 다시 생길 수도 있지”라고 했어. 다들 취해서 하는 농담인 줄 알았어.
밤 열두 시쯤 각자 방으로 들어갔고, 아내는 피곤하다며 금방 잠들었어. 나는 휴대폰을 보다가 늦게 잠이 들었는데 두 번, 세 번 작게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깼어. 혜진은 내가 농담하지 말라고 하자 오히려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어.
“우리 둘만 정한 얘기 아니야. 네 아내도 알고 있어.”
그러더니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어. 네 사람 이름이 들어간 단체 대화방 캡처였고, 아내 이름 옆에는 ‘남편이 싫지만 않으면 나도 괜찮아’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어. 심장이 철렁했어. 혜진은 내가 화면을 보고도 말이 없자 더 가까이 와서 속삭였어.
“우리 남편도 지금 네 아내 방에 있어.”
나는 그대로 문을 닫고 아내를 깨웠어. 아내는 캡처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자기 휴대폰을 확인했어. 그런 대화방도, 보낸 메시지도 없었어. 그때 맞은편 방문이 열렸고 혜진 남편이 옷을 다 입은 채 나왔어.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다 성인인데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잖아”라고 했어.
알고 보니 저녁에 내가 장을 보러 간 사이 혜진 부부가 아내에게 먼저 방을 바꿔 보자고 제안했대. 아내는 황당해서 거절했고, ‘술 더 마시면서 얘기나 듣자’고 한 말을 혜진 남편이 동의로 바꿔 전달한 거였어. 캡처도 그가 따로 만든 가짜였고, 혜진에게는 우리 부부가 먼저 원했다고 말해 둔 상태였어.
나는 그에게 “싫다고 말할 기회를 속여서 없앤 순간부터 그건 합의가 아니야”라고 했어. 아내와 나는 새벽에 짐을 싸서 바로 나왔어. 혜진은 복도에 서서 자기 남편에게 왜 거짓말했냐고 따졌고, 남자는 끝까지 분위기를 망친 건 우리라고 했어.
다음 날 혜진에게 장문의 사과가 왔지만 그 부부와는 연락을 끊었어. 아내도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바로 말하지 못한 걸 미안해했고, 우리는 서로의 휴대폰 화면보다 먼저 상대의 말을 믿기로 했어. 며칠 뒤 내 외투 주머니에서 그 펜션 카드키가 나왔어. 평범한 플라스틱 한 장인데도, 그날 복도에서 들은 한마디가 다시 떠올라 바로 버렸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