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는 나랑 동갑이다. 어릴 때부터 옆집에서 자란 친구였다. 밥 먹고 영화 보고, 그 정도였다.

대학 축제에 같이 갔다. 사람들이 여친이냐고 물었다. 그 말 듣고부터 이상해졌다. 차 안에서 그 여자가 먼저 말했다. 남자들 때문에 지친다고. 나랑 있을 때만 편하다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허벅지에 손이 올라왔다. 그러더니 그 여자가 낮게 물었다. 오늘 밤은 집에 안 들어가도 되냐고.

나는 시동을 다시 걸었다. 호텔 앞에서 잠깐 서로를 봤다. 그래도 같이 들어갔다.
문을 닫고 나서 우리는 선을 넘겼다. 서로를 원해서 한 일이었다. 끝나고 나서야 이게 아닌 것 같았다.

그 여자는 욕실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나도 내가 엄청난 일을 저질렀구나, 그때 느꼈다.
새벽이 지나 호텔에서 나와 빈 도로를 달렸다. 그 여자는 말도 없이 창밖만 봤다. 남한산성 서문에 올라 서울 야경을 보다가 내가 먼저 꺼냈다. 아침이 오는 게 무섭다고.
기숙사 앞에 내려준 뒤로 그 여자는 잘 안 만났다. 학기가 끝나자 그 여자만 학교를 정리하고 호주로 떠났다.
지금은 둘 다 남과 살았다. 나는 이혼했고, 그 여자는 호주에서 결혼했다. 지난해 고향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 여자는 여전히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