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에서 만난 여자가 호텔까지 따라온 하루

제주 한 달 살기 열흘째였다. 1월이라 세상이 잿빛이었고,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렸다. 열흘은 차로 돌아다녔고, 그날은 걷고 싶어졌다. 익숙해진 외로움이 등을 밀었다.

방수 재킷을 입고 올레길로 나갔다. 바다에서 오는 바람이 얼굴을 적시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한참을 걷다 앞에 우산 쓴 여자가 보였다. 천천히, 근데 분명하게 걷고 있었다. 검은 긴 머리가 젖은 어깨를 타고 흘렀다.

“비 많이 오는데, 혼자 걷기 힘드시죠?”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서른중후반쯤. 조용한데 눈은 또렷했다.

“혼자여서 더 좋더라고요. 그런데… 같이 걸어도 될까요?”

이름은 가영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혼자 내려왔고, 미혼이고, 바쁘게 살다가 문득 전부 놓고 싶어졌다고 했다. 빗소리랑 파도 소리 사이로 이야기가 끊기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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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안 하고 사는 자유, 그 옆에 붙는 외로움. 처음 만난 사람 같지 않았다.

구엄포구 근처 작은 집에 들어갔다. 창밖으로 비 오는 바다가 보였다. 은갈치구이에 소주를 시켰다. 잔을 부딪치는데 가영이 볼이 살짝 빨개졌다. 그 얼굴에 자꾸 눈이 갔다.

“오늘 이렇게 누군가랑 걷고 술 마시는 게 오랜만이에요.” 속삭이듯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서 다시 걸었다. 우산을 조금씩 기울여 더 붙었다. 포구 술집에서 막걸리를 시켰다. 달고 따뜻했다. 어느 순간 손이 스쳤고, 그 손을 놓지 않았다.

내가 호텔에 가자고 했다. 거의 말없이 걸었다. 침묵이 무겁진 않았다.

방 문을 닫는 순간 그 여자가 먼저 내 옷깃을 잡았다. 비에 젖은 머리에서 바다 냄새가 났다. 쌓여 있던 외로움이 한꺼번에 터졌다. 우리는 천천히, 근데 간절하게 그 밤을 보냈다. 창밖에서 제주 비가 밤새 내렸다.

다음 날 아침, 가영은 조용히 짐을 챙겼다. 공항까지는 원하지 않았다. 로비 앞에서 나를 보고 웃었다.

“어제 정말 고마웠어요. 제주가 더 예뻐졌네요.”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여자를 끌어안았다. 체온이 한참을 남아 있었다.

떠난 뒤 나는 어제 같이 걸었던 올레길을 다시 걸었다. 비는 그쳤고 하늘이 살짝 열렸다. 다시 만날 수 있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그 하루, 그 비 오는 길에서 사랑에 가까운 걸 만난 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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