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하고부터 맨날 쪼들렸다. 대출 이자는 내가 막고, 생활비 백만 원은 꼬박꼬박 그 년 통장으로 넣었다. 야근하고 들어와도 불은 꺼져 있었고, 나는 그게 검소해서인 줄 알았다.
아내는 맨날 아껴 입는 척했다. 외식도 잘 안 하자고 했고, 여행은 내년으로 미루자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고 대출을 더 끌어 이자를 막았다.
근데 어느 날 밤, 아내가 또 늦게 들어왔다. 차려입은 옷에서 술 냄새가 났다. 나는 피곤해서 그냥 넘겼다. 다음 날 출근이 빨랐으니까.
그 다음 밤, 그 년이 또 나갔다. “친구 만나고 온대.” 가방을 챙기는 손을 보는데, 예전에 없다고 했던 목걸이가 반짝였다.
서랍을 열었다. 맨 아래 칸에 통장이 하나 있었다. 내가 모르는 은행이었다.
잔고를 보는 순간 손이 멈췄다. 3년 전 입금. 로또 1등. 그 뒤로 매달 천만 원씩, 유흥으로 빠져나가 있었다.
삼 년. 사억. 나는 그 기간 동안 월급날마다 생활비 백만 원을 그 통장이 아닌 다른 통장으로 넣고 있었다. 그 돈으로 라면을 끓이고, 대출 이자를 넣고, 아내는 매달 천만 원씩 밖에서 쓰고 들어온 거다.
현관문이 열렸다. 차려입고 들어온 그 년이 현관에서 신발을 벗다가, 탁자 위 통장을 봤다. 그리고 웃었다.
“그거 내 돈이야. 당신은 신경 꺼.”

나는 그 웃음을 한동안 봤다. 변명하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하지도 않았다. 마치 내가 서랍을 열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얼굴이었다.
“삼 년 동안 나한테 생활비 받으면서?”
“당신이 준 건 생활비고, 이건 내 돈이야. 내가 산 복권이잖아.” 목소리가 평소랑 똑같았다. 라면 물 맞추듯이 말했다.
그 자리에서 계산이 됐다. 내가 준 백만 원으로 그 년이 복권을 샀고, 당첨되고도 삼 년 동안 내 앞에서 가난한 척을 했다. 나는 대출을 갚고, 그 년은 매달 천만 원씩 유흥을 했다.
그 밤 나는 소파에서 눈을 뜨고 앉아 있었다. 아내는 방에 들어가 코를 골았다. 통장은 내 무릎 위에 그대로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그 년은 평소처럼 커피를 내렸다. “아직도 그거 가지고 그래? 이혼할 거면 해. 그래도 그 돈은 내 거야.”
나는 커피를 받지 않았다. 변호사 번호를 찾았다. 삼 년을 같이 산 줄 알았는데, 그 년은 처음부터 나를 남편이 아니라 생활비 카드로 보고 있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