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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 연정, 사랑의 이름표 등 여러 명곡을 남긴 가수 현철을 모르시는 분들은 없으실텐데요. 한동안 방송계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았었는데요. 그러다가 가요무대에 출연하여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0년 무명생활을 이겨내고…

1969년 28세의 나이에 ‘무정한 그대’라는 곡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데뷔했지만 인기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현철과 벌떼들’이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리메이크 하며 활동을 하였는데도 오랫동안 무명을 벗어날 수 없었고 셋방살이를 해야 했을 정도로 가난한 시절을 거쳐왔다고 합니다.
결국 ‘현철과 벌뗴들’을 해체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뒤 2년 후에 현철은 솔로로 전향하게 됩니다. 솔로로 전향 후 불혹에 나이에 발표한 ‘사랑은 나비인가봐’를 구성진 꺾기 창법과 가창력을 내보이며 성공 시켰고 88년에 발표한 ‘봉선화 연정’으로 국민들에게 확실히 국민가수라는 인식을 주었습니다.

이 ‘봉선화 연정’으로 KBS 가요대상을 수상하였는데 이때 수상소감을 말하며 ‘수상 한달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한 달만 더 사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말하며 자책했습니다. 이 뒤로부터 그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는데요.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4대천왕으로까지 불릴정도였습니다.
현철은 타고난 구수한 목소리로 천생 트로트가 나는 수식어까지 얻게 했으며 90년대 후반에는 한국 여론 설문조사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로 남진과 나훈아를 제치고 1위에 등극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현재에는 나훈아가 발표한 ‘고장난 벽시계’를 2012년에 리메이크한 곡으로 현재까지 활동하는 중입니다. 현철이 20년 무명을 깨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기다릴 줄 아는 인내력과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었던 것이 아닐까 싶네요.
항상 함께해준 아내

현철과 그의 아내는 가난한 시절부터 함께했습니다. 현철은 당시 무명이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결혼식도 치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부부는 미래를 향한 희망을 나누며 서로의 꿈을 응원했습니다. 현철은 낮에는 건설 현장에서 노동을 하고 밤에는 식당에서 노래를 부르며 힘든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아내 역시 옷과 카세트를 팔며 가정을 지켰습니다. 이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에게 따뜻한 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