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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결혼이란 것이 인생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어요. 남자에도 관심이 없었고 결혼에도 관심이 없었던 저였지만 우연찮게 결혼이란 것을 하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제 인생이 이렇게 엉망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저는 가난이라는 것이 너무 너무 싫었어요. 가난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거죠.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다고 해도 가난은 티가 났어요. 숨만 쉬어도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 때문에 어머니는 늘 힘들어 하셨어요. 아버지가 벌어 오는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거든요. 두 분 다 사치스러운 것도 아닌데 워낙 두 분 다 없는 상태에서 결혼을 하셨고 같은 일을 해도 적은 월급을 받았기에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비가 오면 일거리가 없어서 수입이 없었던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제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부터는 식당에서 일을 하셨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두 분이서 같이 벌어야 한 달에 겨우 살 수 있었거든요. 서로 고된 일을 하시다 보니 집에 오시면 늘 힘들어하셨고, 돈 때문에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어요. 특히나 비가 오는 날이면 그 정도가 더 심해졌어요. 식당 일을 하고 힘든 몸으로 들어오시는 어머니는, 비가 와서 일을 갈 수 없어 집에만 있는 아버지를 보고는 화를 내셨고 아버지는 또 아버지대로 또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화를 내고 있는 어머니에게 또 화를 내셨어요.
그로 인해 저희 집은 늘 분위기가 어두웠고 그런 환경에서 자란 저 역시 성격이 어두울 수밖에 없었고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학교에서 수학여행이나 야영을 가게 되면 저는 부모님에게 안내문조차 보여주지 못했어요. 갈 수 없는 형편이란 것을 뻔히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말하지 않은 거죠.
저는 다른 친구들이 여행으로 들떠 있을 때 가만히 가슴 아파야 했어요. 자라면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니, 저는 가난이 죽는 것만큼 끔찍했어요 부모님이 가난을 벗어나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고 저는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어요.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는 길은 공부뿐이라고 여겼어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저는 미친 듯이 공부를 했어요. 제가 늦은 밤까지 불을 켜고 공부를 하고 있으면 아버지는 “어차피 대학갈 형편도 안 되는데 공부를 왜 하냐”며 제 속을 긁었어요. 도와줄 수 없으면 가만히라도 있는 것이 저를 도와주는 것인데 저는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너무 답답했어요. 아버지가 그러면 그럴수록 저는 더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고, 꼭 보란 듯이 성공할 거라고 다짐을 했어요.
그 결과 저는 원하는 대학에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고 하루 24시간을 쪼개가며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렇게 4년을 정신없이 보냈어요. 주위에서는 저더러 독종이라고 말을 했지만, 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른 친구들처럼 즐길 것 다 즐기고 그렇게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거든요.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복이 들어온 것인지, 저는 운 좋게도 대기업에 입사까지 하게 되었어요. 부모님은 저보다 더 좋아하셨어요. 해준 것도 없는데 혼자서 제 갈 길을 잘 가고 있으니 부모님은 저를 자랑스러워 하셨어요. 저의 악바리 근성으로 다른 동료들이 힘들어하는 일들을 해내다 보니 초고속으로 승진을 하게 되었고, 저만의 커리어를 쌓게 되었어요. 어느 정도 직장생활이 안정이 되었을 때에는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취미생활도 즐기면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어요.
오로지 저만을 위해서만 살았고 제 삶이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결혼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어요. 결혼한 친구들 역시 능력만 있다면 혼자 사는 것이 속 편하다는 소리를 종종 했었어요. 그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 나서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기 시작하면서 경력이 단절이 되었어요. 아이가 조금 자란 후에 다시 복직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 길로 쭉 쉬고 있었죠. 그런 친구들은 하나같이 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자신의 삶이 없어졌다며 하소연을 했었어요. 저는 그런 친구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어요. 결혼 전에는 이 친구들도 자신의 삶을 살면서 반짝반짝 빛이 났었는데 그 빛을 잃어버린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더더욱 결혼을 꼭 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었어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나이는 서른이 넘어 37살이 되어 있었고, 부모님의 자랑이었던 저는 부모님의 근심이 되어 있었어요. 부모님은 20대 중반부터 “만나고 있는 남자가 없냐?” 물으셨고 서른이 넘어가면서부터는 “결혼은 언제 할 거냐?”며 독촉을 하기 시작하셨어요. 저는 매번 “만나고 있는 남자도 없을 뿐더러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다.” 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먼저라고 말했었어요. 하지만 이것도 나이가 서른 중반이 넘어가자 먹히지가 않았어요. 저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선을 보게 되었어요. 부모님과 같은 모임을 하고 계시는 지인분이 집안도 좋고 능력도 좋고 사람도 괜찮다며 소개시켜 주었어요. 선자리에 나간 저는 남편을 처음 만났고, 남편은 미국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1년 전 한국으로 들어와서는 자기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었어요.
부유하게 자라 힘든 것 없이 물 흐르듯 살아온 남편은, 남들이 봐도 그렇게 자란 사람처럼 보였어요.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인상도 푸근하고 아우라가 느껴졌어요.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따뜻함이 묻어나오는 남편에게 저는 끌리게 되었어요. 부모님의 성화에 하는 수 없이 나온 저는 차만 마시고 일어나려 했는데 한 번 더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카페에서 나와 남편은 저희 집까지 데려다 주었고 괜찮다면 주말에 식사를 하자고 말했어요. 저 역시 한 번 더 만나고 싶었기에 흔쾌히 승낙을 했어요. 남편의 차를 먼저 보내고 저는 집으로 들어왔고 처음으로 선을 보러 간 딸을 부모님은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계셨어요. 제가 집에 들어가자마자 “어떤 사람이더냐? 느낌은 어떠냐? 또 만나기로 했냐?” 등등 쉴새없이 질문 공세가 이어졌어요. 저는 환하게 웃으며 “주말에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고 말을 했고 부모님은 “잘 되었다”며 좋아하셨어요.
그리고 며칠 뒤 주말 저녁 남편의 친구가 운영을 하고 있는 식당에 식사를 하러 갔고 첫 만남 때보다 남편이 더 편안했어요.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남편에 대해서 더 알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든 성격이든 다 완벽해 보이는 남편에게서 따뜻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졌어요. 어렸을 때부터 가난히 싫어 부자가 되고 싶었던 저는 조금은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고 차가운 성격이었던 저와 정반대인 남편에게 저는 점점 더 끌리게 되었고, 결혼의 전제로 연애를 시작했어요. 제가 남편과 만남을 이어가자 부모님은 “길게 볼 것이 뭐 있냐”며 괜찮은 사람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결혼을 하라고 성화 하셨어요. 저는 “이제 겨우 서너 번 만난 사람인데 뭐가 그리 급하시냐”며 아직 좀 더 알아보고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제 나이를 들먹이며 “이렇게 만나다가 잘못되면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 아니냐?”며 “다 알고 만나는 사이 뭐가 더 궁금한 것이 있다고 그러냐?”며 하자 없으면 결혼해서 마음 맞춰가며 살면 그만이라고 하셨어요. 그렇지만 저는 나이가 많아서 떠밀려서 하는 결혼은 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저는 사랑이 전부인 20대가 아니었거든요. 이리저리 따져가며 저에게 맞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었어요. 남편과 연애를 시작한지 두 달이 되어갈 때쯤 남편은 결혼에 대해서 먼저 말을 꺼냈고 저는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꾸 압박을 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결혼을 서두르게 되었어요. 다행히 양가 어른들도 다들 허락을 하셨고 저희는 일사천리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어요.
워낙 둘 다 사회생활을 오래한 상태라 지인들이 많이 와서 축하를 해주었고 특히나 남편의 대학 동창들은 따로 춤을 연습해서 이벤트를 해줬어요. 그 친구들 덕분에 저희의 결혼식은 더 빛이 났어요. 만난지 석 달 만에 결혼을 하게 된 저는 아직 서로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했기에, 아이는 천천히 갖고 싶었어요. 남편에게 아이는 천천히 가지자고 말을 해야 하는데 주위에서 다들 남자들은 자기 자식에 대한 것이 크기 때문에 결혼을 하면 다들 자식을 빨리 갖고 싶어 한다는 말을 많이 해서 어떻게 남편에게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다행히 남편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고 남편 역시 저와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저희는 당분간 신혼을 즐기기로 했어요. 하지만 저희의 생각을 모르시는 부모님은 결혼을 하자마자 제가 나이가 있어서 빨리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연락을 할 때마다 그 이야기를 하셨고, 한번은 몸에 좋다는 한약을 지어오셨어요.
– 저희 아이는 조금 천천히 갖기로 했어요.
– 그게 무슨 소리냐?
-만난지 석 달밖에 안되서, 연애 좀 하다가 그때 가지려고요.
-얘가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니? 지금 네 나이가 몇인데 노산이야 이것아!
-노산은..
-노산이지 그럼! 지금 가져도 내년에 나올 텐데, 너 그러다 곧 마흔 된다? 애도 젊을 때 낳아야 좋은 거지~ 늙어서 낳아서 키우면 얼마나 힘든지 알아?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이왕 지어온 것이니 아무 생각 말고 잘 챙겨 먹어!
-임신할 것도 아닌데 뭐하러 먹어요?
-비싼 돈 주고 해온 건데 그럼 버리니? 몸에 좋다고 생각하고 잘 챙겨 먹어!
-에이~ 쯧 미리 물어보시지
-너 그러나 나중에 후회한다?
-후회를 해도 저희가 하니까 이제 그만요!
어머니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가셨어요. 저는 한약을 박스에서 꺼내어 냉장고 야채칸에 넣었어요. 임신할 것도 아닌데 괜히 사 오셔서 돈만 버렸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냥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먹을 수도 없고 너무 난감했어요. 그날 저녁 퇴근을 하고 온 남편에게 부모님이 몸에 좋다며 한약을 사 오셨다며 하나 뜯어서 챙겨주며 매일 하나씩 챙겨 먹으려고 그랬어요. 남편은 단숨에 한약을 들이켰어요. 그리고 남편은 친구들을 초대하자고 말을 했어요. 양가 어른들을 초대해 집들이는 했지만 아직 지인들은 초대를 하지 않았거든요. 남편은 결혼식 때 대학 동창들이 이벤트를 해줬는데 “그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해야지 않겠냐?”고 말을 했어요. 저도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을 했고, 돌아오는 주말에 친구들을 초대하기로 했어요. 친구를 초대하기로 해놓고 저는 집들이 음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신경이 쓰였어요. 간편하게 배달을 시키려니 왠지 정성이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음식을 장만하자니 할 줄 아는 요리도 딱히 없었거든요. 하는 수 없이 저는 어머니에게 부탁을 했고 저희 부탁에 어머니는 양손 가득 장을 봐 오셨어요.
갈비찜, 잡채, 오징어무침, 추어탕까지 어머니는 맛깔나게 음식들을 만드셨어요. 저는 어머니가 요리를 하시는 동안 옆에서 보조를 하며 어머니를 도왔어요. 간을 보라며 입안에 넣어주시는 음식마다 모두 다 맛있었어요. 음식 준비를 다 마치고 저는 어머니가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막막했을 거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어요. 남편 역시 너무 감사하다며 봉투를 건넸고 어머니는 봉투를 다시 밀어내며 서둘러 신발을 신고 나가려 하셨어요. 남편은 어머니를 뒤쫓아가 어머니 외투 주머니에 봉투를 넣어 드렸어요. 어머니는 마지못해 하시며 잘 쓰겠다며 집들이 잘하라는 말을 하시고는 가셨어요. 어머니가 가시고 난 후 저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조금 뒤 남편의 친구들이 우르르 다 같이 들어왔어요. 하나같이 축하한다고 들어서며 집들이 선물을 전해주었어요. 친구들은 먼저 집 구경을 시켜달라고 말을 했고 남편은 친구들에게 방마다 구경을 시켜주었어요. 그리고는 거실에 차려놓은 상으로 친구들을 안내했고, 친구들은 음식을 보고 감탄을 하며 자리에 앉았어요. 결혼식 때 다 온 친구라는데 그날이 너무 긴장을 하고 정신이 없어서인지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어요.
-결혼식 때 덕분에 즐거웠어요.
-연습을 더 했어야 했는데 아~ 아쉽더라고요.
-아니요. 너무 멋졌어요!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그 정도는 해야죠.
-음식이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하~ 너무 맛있어요! 직접 다 하신 거예요?
-아니요. 친정어머니가 도와주셨어요.
-음~ 어머니께서 고생하셨겠어요.
남편의 친구들은 어머니의 음식이 맛있다며 즐겁게 식사를 했고 남편이 들고 온 술을 마시며 더 화기해졌어요. 그때 초인종이 울렸고 또 한 명의 친구가 들어왔어요.
-제가 좀 늦었죠?
-아니에요. 어서와요.
-결혼 축하드려요. 제가 그날 사정이 있어서 결혼식을 못 갔거든요.
-아.. 그러셨구나. 감사해요.
-행복하게 사세요.
그 친구는 긴 웨이브 머리를 한 여자친구였어요. 남편의 옆에 자리를 앉은 그 친구는 남편에게도 결혼을 축하한다며 전했고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었어요. 저는 뒤늦게 온 친구에게 따뜻하게 대운 추어탕과 밥을 건넸어요. 그 친구는 저에게 고맙다고 생긋 웃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는 더 고조되었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친구들도 생기게 되었어요. 남편은 술을 더 사오겠다며 일어났어요. 그러자 한 친구가 따라 일어나며 그럴 필요 없다며 “더 늦기 전에 그만 가자”고 말을 했어요. 그러자 남편은 무슨 소리를 하냐며 “더 놀다가 내일 천천히 가라”고 말을 했어요. 친구들은 “신혼집에서 그러고 싶지 않다”며 다들 일어났고 집들이는 마무리가 되었어요. 친구들이 다 가고 나니 집은 한순간 조용해졌고 저는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술에 취한 것인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깊은 잠에 들었어요.
어찌나 그릇들이 많은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었어요. 한참이 지나서야 마무리가 되었고, 저는 침대에 고단한 몸을 뉘었어요. 평소에 불면증이 있어 잠을 잘 못 잤었는데 어찌나 피곤하던지 곧바로 곯아떨어졌어요. 그 이후로 남편은 대학 동창들과 꾸준히 모임을 이어갔었고, 저도 몇 번 그 자리에 나가게 되었어요. 학창시절 공부만 미친 듯이 했던 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익숙치가 않았어요. 특히나 고등학교 때부터는 그것이 더 심해져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거의 없었어요. 사회에 나와서도 일적으로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사적인 대화라는 자리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저는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 같았어요. 모임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그저 쉬고 싶어졌어요. 남편의 친구들은 워낙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사이들이라 현재의 이야기를 하다가도 과거의 이야기로 넘어가기 일쑤였어요.
다들 그때의 일로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그저 같이 웃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공감대가 없는 무리 속에 끼어 있는 것이, 꼭 외딴섬에 혼자 있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던 저는 어느 순간 남편이 같이 가자고 하는 자리에 핑계를 대며 빠지게 되었어요. 마음이 불편한 자리에 가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안 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남편은 자신의 친구들과도 친해지려고 노력을 해보라고 그랬지만 저는 쉽지가 않았어요. 몇 시간을 가만히 이야기만 듣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고 그 시간에 차라리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남편도 몇 번 같이 가자고 말을 했다가 제가 계속 거절을 하니 어느 순간부터는 같이 가자는 말없이 혼자 다니게 되었어요.
-이번 주말에 친구들과 여행 가기로 했는데 같이 갈 수 있겠어?
-나 그런 거 싫어하는 거 알면서..
-당연히 알지. 그래도 한번 물어보는 거야 혹시나 갈 마음이 있나 해서..
-난 괜찮으니까 혼자 다녀와!
-아이~ 같이 가면 좋을 텐데, 결혼한 친구들은 다 부부 동반으로 나오는데 나만 혼자 나가니 애들이 한마디씩 거들어서 말이야..
-미안해. 조금 더 친해지면 그때 갈게.
-자주 얼굴을 봐야 친해지지..
-알았어~ 다음에는 꼭 같이 갈게! 이번에는 혼자 다녀와.
-알았어.
남편은 고정적으로 등산이나 여행을 다녔고 저는 별을 의심 없이 친구들이니 믿고 보내주었어요. 남편이 없는 동안 저는 잠도 자고 음악도 듣고 나름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어요. 평일 업무에 시달리다 주말에 잠깐 이렇게 쉬는 것이 저에게는 행복이었어요. 따로 또 같이 각자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 지냈어요. 어느 한쪽이 이런 생활이 싫으면 다툼이 생길 수도 있는데 저희는 둘 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괜찮았어요. 며칠 뒤 여행을 가기로 한 주말 남편은 아침 일찍 짐을 챙겨서 나갔고 저는 침대에서 평소 부족했던 잠을 청했어요. 새벽같이 일어나 자정이 넘어서야 잘 수 있었던 저에게 정말 꿀맛 같은 휴식이었어요. 한참을 자고 일어났더니 점심때가 훨씬 지나있었어요. 저는 이불 속에서 나와 그 전날 시켜 먹었던 족발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데워 먹으며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친구가 떠올라 친구에게 전화를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같이 자라온 저와 제일 친한 친구였어요.
다른 친구들에게는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들도 이 친구에게는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었거든요. 가정 형편이 비슷해서 저희는 공감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어요. 그 친구는 저에 대해서도 잘 알았고 저와 결이 비슷해 제가 너무 좋아하는 친구예요. 오랜만에 친구와 수다를 떨게 된 저는 갑작스럽게 집으로 친구를 초대했어요. 저의 초대에 친구는 한달음에 달려왔고 저는 과일과 차를 준비했어요. 텔레비전을 보며 깔깔거리며 친구와 수다를 떨었어요. 저는 “남편이 여행을 가서 내일 오니 자고 가도 상관이 없다”고 말했고 친구는 “그럼 편한 옷으로 갈아입자”며 깔깔거렸어요. 저는 파자마 바지를 하나 꺼내주었어요. 친구는 “이제야 편안하다”며 대자로 뻗어 텔레비전을 봤어요. 그 사이 남편에게 메시지가 왔어요.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잘 자라는 인사였어요. 제가 친구에게 사진을 보여주자 친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요.
-네 남편 여자들이랑 같이 갔니?
-대학 동창들이야
-이런 자릴 보냈단 말이야?
– 왜? 다들 오래된 친구들인데 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박 2일을 이렇게 보낸다고?
-또 이상한 상상하신다. 우정이야 우정!
-남녀 사이에 우정이 어디 있니?
-내가 괜찮다는데 자꾸 왜 그래?
-노파심일 수도 있는데 다음부터는 너도 같이 다녀! 아무리 친구 사이라지만 얘 봐라, 팔짱이 웬말이니?
-아무렇지도 않으니 나한테 이렇게 사진을 보냈겠지.
-여하튼 조심해서 나쁜 건 없잖아.
-네가 자꾸 그러니까 화나려고 그래!
-알겠어. 그만 얘기하고 다른 얘기하자!
친구는 제가 정색을 하자 화제를 돌렸고 저는 친구의 말에 기분이 나빠졌어요.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인데 친구가 하는 말이 거슬렸어요. 친구는 저의 표정을 읽은 것인지 미안하다며 기분 풀라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저는 이내 깔깔 웃었어요. 늦은 밤 친구는 먼저 잠이 들었고, 저는 남편이 보내준 사진을 다시 보았어요. 여러명의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찍은 사진 속에 남편에게 팔짱을 끼고 있는 그 친구 다시 찬찬히 보니 집들이 때 늦게 온 그 친구였어요. 저는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한참을 사진을 보다가 남편이 보낸 “사랑해” 라는 메시지를 보는 순간 고개를 가로 지으며 웃었어요. 남편에게 저도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서는 핸드폰을 닫았어요. 제가 지금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제 스스로가 너무 어이가 없었어요. 다음날 저는 친구와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백화점에 가기로 했어요. 마음에 드는 옷도 사고 맛집을 찾아가 맛있는 음식도 먹었어요.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 같았어요.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저녁이 다 돼서야 저는 집으로 돌아왔고, 집에 먼저 도착했을 줄 알았던 남편이 없자 저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남편은 오는 길에 배가 고파서 저녁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며 먼저 저녁을 먹으라고 했어요. 저는 저녁 준비하기 귀찮았는데 잘 되었다며 쇼핑한 것들을 정리를 하고 쇼파에 앉아 잠시 쉬고 있었어요. 몇 시간이 흐르고 여행을 갔던 남편이 돌아왔고, 저희는 이틀 동안 있었던 일들을 나누며 밤을 보냈어요. 다음날부터 또 다시 저희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회사를 다녔고 주말마다 남편은 모임을 핑계로 나가게 되었어요.
저는 남편과 데이트를 하고 싶었지만, 늘 선약이 있었던 남편 때문에 할 수가 없었어요. 평일에는 늦게 들어오는 남편 때문에 대화라는 것도 길게 나눌 수가 없는데 주말마저도 따로 보내야 하니 저는 점점 서운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한 달에 한 번 정도야 이해를 한다지만 매주마다 저러니, 저의 인내심도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결혼을 하고 가정에 충실하고 싶었고 남편과 연애를 좀 더 하기 위해서 임신도 미루고 있는 것인데 남편은 가정보다는 자신의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결혼을 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바가 없는 남편에게 저는 점점 지쳐갔어요.
-이번 주말에 영화 보러 갈까?
-난 안 되는데.
-왜?
-모임 있어.
-무슨 모임?
-대학 동창.
-또 만나? 왜 그렇게 자주 만나는 건데?
-뭘 또 그렇게 자주 만났다고 그래?
-지난번에 여행 다녀왔잖아.
-그게 언젠데 그래?
-그럼 우리는 대체 언제 데이트할 수 있는데? 매주 당신 약속 있다고 그러고 평일에는 일 때문에 항상 늦게 들어오고 우리 부부 맞아?
-내가 같이 가자고 말을 해도 안 가는 사람이 누군데 그래?
-나 때문이라는 소리야?
-당신이 불편해서 싫다며, 같이 가면 아무 문제 없는 거 아니야?
-그래 알겠어, 이번 주말에 나도 같이 갈게!
-뭐? 갑자기
-왜? 가면 안 돼? 언제는 똑같이 가자며?
-아니 안 가다가 갑자기 간다니까 그런 거지.. 같이가! 그럼
-알겠어!
저는 홧김에 가기 싫었던 남편 모임에 가기로 했고 최대한 예쁘게 꾸미고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퇴근을 하고 백화점에 들렀어요. 어떤 옷을 입어야 잘 입었다고 소문이 날까?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원피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어요. 정장 같으면서도 편안한 느낌이 나는 원피스였어요. 그 원피스를 사고 거기에 맞는 가방과 신발까지 싹 다 구매를 했어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을 한 저는 만족해 하며 집으로 돌아왔어요. 모임이 있던 날 당일, 오전에 저는 미리 예약을 해둔 샵에 가서 머리도 하고 만반의 준비를 다 했어요.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평소에는 한듯 안한듯 화장을 하고 다녔던 저는 이목구비가 또렷이 보이도록 좀 더 진하게 화장을 했어요. 준비를 마친 제가 나오자 남편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예쁘다고 말을 할 줄 알았던 남편은 “무슨 일이 있냐?”며 평상시와는 다르니 “어색하다”고 말을 했어요. 저는 신경 써서 한 화장인데 남편의 반응 때문에 김이 확 새버렸어요. 다시 화장을 고칠 새도 없이 남편은 늦었다며 빨리 나가자고 재촉을 했고 저는 찝찝한 마음으로 남편을 따라 나섰어요.
호텔 뷔페에 도착한 저는 오랜만에 보는 남편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었어요. 남편에게 팔짱을 낀 그 여자친구는 보이지 않았어요. 각자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담아서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저는 같이 웃다가 어색해지면 음식을 가지러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가만히 앉아서 음식들이 줄줄 나오는 한정식보다는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더 편안했어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초밥 쪽으로 가서 이거 저것 종류별로 담았어요. 가격대가 있는 곳이다 보니 비싼 재료들도 많이 있었어요. 한 접시 담아서 저는 자리에 돌아왔고 음식을 먹었어요. 남편이 저에게 와인을 따라 주었고 다 같이 건배를 하고 한모금 마셨어요. 달달한 것이 제 입맛에 맞았어요. 배도 점점 불러오고 더 이상 음식을 가져오는 것은 무리이다 싶어 저는 남편에게 조용히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그리고는 화장실로 갔어요. 다행히 사람들이 없었고 저는 맨구석 자리에 들어가 변기에 앉아 잠시 쉬었어요. 오랜만에 높은 구두를 신었더니 다리가 퉁퉁 붓는 것 같았어요. 잠시 구두를 벗고 다리를 주무르며 쉬고 있는데 여러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저는 자리를 비켜줘야겠다는 생각에 급히 구두를 신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주저앉고 말았어요. 화장실에 들어온 사람들은 다름아닌 남편의 친구들이었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저는 기함을 하고 말았어요.
-오늘 영재 와이프 와서 미영이 안 온 거 맞지?
-그렇겠지, 와이프가 있는데 오는 건 아니지 않아?
걔네들 도대체 어쩌려고 그런다니? 나 영재 와이프 보는데 심장이 떨려서..
-나도 그래, 눈 앞에 없을 때는 몰랐는데 눈 앞에 있으니 괜히 내가 죄짓는것 마냥 영재 와이프 눈을 못 보겠더라.
-영재 쟤는 무슨 생각으로 저런 건지, 아무리 10년을 만났다지만 이제는 결혼한 유부남인데 저래도 되는 거니?
-10년이 뭐니, 미국에서부터 동거했었잖아?
-맞다, 그랬었지
-영재 부모님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미영이가 먼저 한국으로 들어오고 곧바로 영재도 그 좋은 회사 그만두고 미영이 찾으러 한국 들어온 거였잖아. 그럼 둘이서 잘 살 것이지, 왜 엉뚱한 사람하고 결혼을 해서는 일을 이렇게 만들어? 사람 곤란하게..
-부모님 등살에 못 이겨서 선보고 석 달 만에 결혼한 거잖아, 그 바람에 미영이랑 저렇게 만나게 된 거지.
-같은 여자로써 알려야 되는 거 아니니?
-아서라~ 무슨 소리 들으려고?
-아휴~ 모르겠다. 그만 나가자!
한참을 이야기하던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저는 숨죽여 조용히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다가 다시 주저앉았어요. 제가 지금까지 무엇을 듣고 있었던 건지, 분명 저희 두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고나니 저는 힘이 빠져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잠시 한참 멍하게 있던 저는 옆에 벽을 짚으며 겨우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어요.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이 조용한 음악 소리만 흐르고 있었어요. 비틀거리는 다리로 겨우 세면대까지 온 저는 세면대를 지탱하여 숨을 크게 내쉬기를 반복했어요.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쿵쾅거려서 미칠 것 같았거든요. 안에서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이 떨리고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그동안 하나같이 저를 감쪽같이 속이다니, 저는 온몸이 덜덜 떨렸어요.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저는 앞에 있는 수도꼭지를 올려 손바닥으로 물을 받아 입술이 적셨어요. 몇 번의 반복을 하다 고개를 들었어요. 거울 속에 저의 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친구가 걱정이 된다고 노파심에 했던 말들이 떠올랐어요. 그때는 그 말들이 듣기 싫었었는데.. 친구가 이상한 상상을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여자와 남편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니, 저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까지 남편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도 없었는데 제가 그동안 남편을 너무 믿고 있었던 것일까요? 잦은 모임들이 화근이 되었던 것일까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그리고 그동안 남편과 그의 친구들이 만났던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그럼 그때 집들이를 하러 왔을 때에도 남편 옆에 자연스레 앉아 있던 것도 여행을 가서 팔짱을 끼고 있었던 것도 모두다 우연히 아니었고 그 둘은 뻔뻔스럽게 저를 앞에다 두고 연애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것처럼 모든 것이 아구가 맞아 들어가고 있었어요. 그래놓고선 어떻게 저에게 사진을 보낼 수가 있는 건지,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인가요? 그것도 둘만의 비밀이 아닌 다른 친구들조차도 둘 사이를 모두 다 안 채 저 하나만을 두고 모두 다 연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에 저는 심장이 쿵쾅거렸어요.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보고 얼마나 비웃었을까요? 남편과 친구들이 저를 보고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은 장면이 그려져 저는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거울 속 제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였어요. 언제나 늘 당당하고 제 삶에 만족스러워 하며 살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낙오자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모두가 한 통속이 되어 저를 바보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저는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고, 그 길로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와 남편에게 다가갔어요. 남편은 “화장실에 갔다 온다는 사람이 왜 이렇게 늦었냐?”며 다들 저 때문에 못 일어나고 기다리고 있었다며 핀잔을 주었어요. 저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남편의 친구들을 하나하나 돌아가며 찬찬히 쳐다봤어요. 저의 행동에 남편의 친구들은 당황했고, 남편 역시 당황해하며 “왜 그러냐?”고 물었어요. 저는 피식 웃으며 남편의 뺨을 세차게 때렸어요. 그러자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쳐다보았어요. 남편은 “이게 무슨 짓이냐!”며 저에게 소리를 질렀고, 저는 다시 한번 더 남편의 뺨을 세차게 있는 힘껏 때렸어요. 그러자 남편은 화를 내며 저의 손목을 잡았어요. 저는 남편의 손을 뿌리쳤어요.
-이거놔!
-이게 무슨 짓이야?
-그동안 재미있었니? 아무것도 모르는 날 중간에 두고 사랑을 하니 기분이 어땠니? 비밀연애라는 것처럼 설레고 그랬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니 이야기하는 거잖아! 박영재와 김미영의 이야기!
-뭐!
-왜? 더 즐길 수 있었는데 안타까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하나같이 모두 다 어떻게 사람 하나를 바보로 만들 수 있냐고, 너희들 러브스토리에 나를 끼워 넣어? 왜 잘 살고 있는 내 인생을 비참하게 만드냐고!
-여기서 이러지 말고 밖으로 나가자.
-이거놔! 왜? 내 앞에서 아주 가증스럽게 뻔뻔하게 행동을 하더니 다른 사람들 눈이 신경이 쓰이나 보지?
남편은 흥분해서 날뛰고 있는 저를 잡고 밖으로 나가려 했고, 저는 그런 남편을 밀쳤어요. 힘없어 바락바락 악을 쓰며 고함을 질러댔더니 저의 몸은 심하게 비틀거렸고, 그런 저의 몸을 남편의 친구가 붙잡았고 저는 그 친구 역시 밀쳤어요.
-너희들도 다 똑같은 것들이야! 바람피고 있는 것들이나, 방관하고 같이 즐긴 너희들이나 다 거기서 거기 다 똑같은 것들이야! 하하하
-미안해요. 정말 이러려고 그랬던것이 아닌데..
-그만둬요! 내가 너희들 사과받자고 이러는 것 같아? 참 대단한 우정들이네요~
저는 가방을 들고 그 자리에서 나왔어요. 화려하게 꾸며놓은 길거리는 저를 더 슬프게 했어요. 무작정 길을 걷던 저는 어느 한 공원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하늘에는 커다란 보름달이 떠 있었어요. 그때 핸드폰이 울려댔고 친구의 전화에 저는 잠시 진정이 되었던 감정이 또 다시 폭발하게 되었어요. 저는 친구의 전화를 받자마자 울음을 터뜨렸고 친구는 제가 있는 곳으로 한달음에 달려 와 주었어요. 친구는 제가 진정이 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주었고 제가 어느정도 진정이 되자, 자신의 집으로 가자며 저를 일으켜 세웠어요.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저는 다음날 남편의 여자가 다니고 있는 회사로 찾아가 머리끄댕이를 잡고 흔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어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던 그 여자는 별다른 저항이 없었어요. 그 일로 인해 회사의 소문이 쫙~ 펴진 그 여자는 회사를 다닐 수가 없었고, 며칠을 친구 집에서 보낸 저는 남편과 끝을 맺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어요. 집에 온 저를 보고 남편은 미안하다며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무식하게 회사까지 찾아가 그 행패를 부리냐?”며 화를냈고 저는 어이가 없었어요. 저 때문에 자신의 친구들과도 다 틀어졌다며 모든 잘못이 저에게 있다는 듯이 말하는 남편에게 저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어요. 말할 가치도 없는 사람과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싫었던 저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 캐리어에 짐을 싸기 시작했어요. 뒤따라 들어온 남편은 집을 나가려고 그러는 거냐며 비아냥거렸어요. 순간 전 화가 났고 싸고 있는 짐들을 남편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무슨 짓이냐며 “한번은 넘어가지만 두 번은 안 봐준다!”며 저의 양팔을 붙잡고는 벽으로 밀쳤어요. 힘으론 이겨낼 수가 없었던 저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저는 남편을 향해 “인간 같지도 않은 벌레 같은 놈!” 이라고 퍼부었고, 남편은 저의 뺨에 때렸어요. 그 순간 저에게는 없던 힘이 솟아났고 있는 힘껏 남편을 밀쳤어요.
그리고 그 길로 저는 그 집을 나와 밖에서 지내며 이혼 소송물과 사기결혼 상간녀 소송을 진행했어요. 저희의 소식을 들으신 시부모님은 자신들의 잘못이라며 용서를 해달라고 말을 했지만 저는 용서를 할 수가 없었어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제 인생은 온데간데 없고 이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부모님의 반대로 이루지 못한 사랑을 하고 있던 두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이혼을 하게 된 마지막 저의 모습만 남아 있을 테니까요. 저는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게 되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저만 보면 웃는 것 같았어요. 다른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힘이 들었던 저는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지만, 쉽게 이겨낼 수가 없었어요. 다니고 있던 회사도 그만두고 집에만 틀어박혀있는 저를 보고 부모님은 가슴 아파 하셨어요. 특히나 어머니는 분에 이기지 못하고 남편의 회사를 찾아가 뒤집은 적도 여러 번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죄를 지은 그놈은 잘 먹고 잘 사는데 뭐가 못나서 너는 이러고 사냐?”고 우셨어요. “이렇게 혼자 청승맞게 지내지 말고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자”고 말씀을 하셨지만 저는 그런 말조차 듣기 싫었고 그저 저 혼자 있고 싶었어요. 오로지 저 혼자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힘이 들고 사람을 믿지 못하겠어요. 하루 빨리 털어내고 싶은데, 다시 제 삶을 즐기며 살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데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는 저의 모습에 화가나 미친듯이 운적도 많았어요. 언제쯤 이 생활이 끝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날이 오긴 오겠죠? 그날을 기다리며 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려 해요.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올 때 그때 제 마음에도 봄이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