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 누르고 계속 보기
“보이스 피싱으로 전재산을 잃어 천원 밖에 없다며 김밥 반줄만 달라고 하던 할아버지” 슬픈 얼굴로 아들에게 고기 먹고 있다며 통화하던 할아버지에게 매일 김밥을 드렸더니 저에게 ‘기적’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작은 김밥 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면서 이 채널의 여러 사연들을 들으며 웃고 울고 하다가 얼마전 제게도 이것의 사연을 보낼 만큼 특별한 일이 생겨 몇 자 적어 보게 되었습니다. 김밥집을 운영한지는 아내가 임신했을 무렵부터 시작했으니까 벌써 10년이 되었네요. 10년 동안 이곳을 지키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만큼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봤는데요. 오늘 그 사람들 중 저와 특별한 인연이 된 분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일하는 곳 주변에는 초등학교가 하나 있고 주택과 아파트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어르신들도 종종 오시고 보통은 제 또래의 사람들이 아이 손을 잡고 옵니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가끔 오시던 어르신들이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이 라고 하기엔 뭐 하고 제 부모님 또래보다 조금 더 많은 분들이 셨는데, 항상 사이좋게 손을 잡고 들어오시는 모습이 인상 깊어서 계속 기억에 남더라고요. 자주는 아니었지만 두어 달에 한 번꼴로 찾아주셨습니다. 저희 가게에서는 김밥, 떡볶이, 튀김 몇가지 이렇게만 팔거든요.
원래는 라면이나 순대, 쫄면 도 했는데 아내가 육아에 집중하면서 손이 딸리기도 했고 장사가 예전 만큼 안되어서 다 치워 버렸죠. 그 어르신 부부는 오실 때마다 떡볶이를 드셨습니다. 딱 2인분 시켜서 드셨는데 그마저도 할머니가 거의 다 드셨죠. 혹시 형편이 어려우신가 했는데 행색은 그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항상 멋진 중절모 를 쓰시고 좋은 구두의 지갑도 명품 이었고 시계도 값비싼 시계를 차고 계셨 거든요. 할머니도 매번 곱게 립스틱을 바르시고 비싸보이는 반지도 끼고 계셨 거든요. 그러니까 더 궁금하더라구요. 왜 항상 그것만 드시는지, 다른 걸 안 드시는 지요. 혹시 다른 건 맛이 없나 싶기도 했고요.
-손님 저희가 계획 김밥도 맛있는데 좀 드셔보실래요?
-아, 안돼요. 주지 마세요.
제가 허리를 숙여 할머니께 여쭤봤는데 ,할아버지께서 안 된다며 손사레를 치더라구요. 할머니는 호호 웃기만 하셨고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으니까 할아버지께서 이유를 말해 주셨습니다.
-우리 안사람 이 당뇨가 있거든요.
-당뇨요?
-아 그럼 떡볶이도 안되는거 아닌가?
-안되죠. 평소엔 바깥음식 절대 안 먹어요. 며느리랑 딸이 해 다 주는 밍밍한 반찬만 먹고 차도 돼지감자 인가 그런 것만 먹고, 근데 그게 다 이 떡볶이 먹기 위해서예요.
-네? 이거 드시러 고요?
-두달에 한번 이거 먹으려고 평소에는 열심히 관리 하다가 이거 한번 먹고 또 두달 버티고 그러는 거예요 .
-아 저희 떡볶이 드시려고요? 그렇게 맛있으세요?
제 물음에 할머니는 입가를 냅킨으로 닦으시면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솔직히 많이 감동이었습니다. 제 떡볶이가 그렇게 맛있다니 사실 그때 떡볶이를 없앨까 말까 고민을 많이했거든요. 저 혼자 하려니 조금 벅차서요. 그런데 그 분들 말씀을 듣는 순간 절대 없애지 말아야지 싶더라고요. 그렇게 저의 소중한 단골 분들과의 인연은 한 해, 한 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방문해 주시는 간격이 늘어 나더라고요. 세달에 한번 네달에 한번 이렇게요. 할머니 얼굴빛도 점점 안 좋아 보이셨습니다.그래도 떡볶이를 드실 때 만큼은 정말 행복해 보이시더라고요.
저희 배달도 한다고 가졌다 드린다고 해도 며느리랑 딸이 쓰레기통도 검사 한 며 안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며느님이랑 따님의 마음이 뭔지 알면서도 조금 짠 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떡볶이를 드실 때 만큼은 17살 고등학생 같이 생기 넘치던 할머니는 더 이상 저희 가게에 오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오지 못하셨습니다. 두 분을 처음 뵌 지 5년쯤 지났을
때였나 추운 겨울 날 할아버지 혼자 가게로 들어 오시더라고요. 문을 닫고도 자리를 잡지 않으시고 입구에 그대로 서서 쓰고 계시던 모자를 잠깐 벗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못 올것 같아요. 그 사람..멀리.. 갔네요. 이 집 떡볶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코 앞에 나오는 게 뭐가 어렵다고 내가 그걸 못 들어 줬네요. 정말 아무 말도 생각이 안 났습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해야하나 너무 건방져 보이나 괜찮으시냐고 여쭤야 하나, 죄송 하다고 해야하나 목구멍이 턱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씁쓸하게 마지막 말을 하시고 떠났습니다.
-거기선 떡볶이 많이 먹겠죠, 뭐
그로부터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2년이나 흘렀기에 할아버지 등장은 정말 뜻밖의 였죠.
그 새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지 할아버지의 행색은 말 그대로 초라해 보이셨습니다. 멋진 모자도 보이지 않았고 겨울이었는데 도 얇은 바람막이 하나를 걸치고 계셨고 신발도 다 낡아 보였습니다. 멀끔한 떤 할아버지의 과거는 온데간데 없었죠. 당혹스러워 서 겨우 목매 만 하고 멍청하게 서 있는데 할아버지가 배트 신 말에 더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 김 밥 반줄 만 될까요.
근데 당연히 안됩니다. 그런데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얼른 김밥을 싸서 반주를 접시에 담아내 갔습니다. 할아버지는 며칠 꿈 기라도 하셨는지 허겁지겁 접시를 비우셨습니다.
-더.. 더 드릴까요?
-아니에요. 내가 돈이 것 뿐이라서 미안해요. 고마워요. 가볼게요.
할아버지는 급하게 주머니에서 1000원 한 장을 꺼내서 상위에 올려 주시고 가버리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를 붙잡으려 했지만 할아버지는 그냥 그렇게 가버렸습니다. 분명 무슨 일이 생기셨구나 확신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되어서 나타난 할아버지가 걱정이 되던 와중에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는 다시 저희 가게를 찾아 오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이번에 또 김밥 반 줄을 주문 하셨습니다. 저는 이번에는 김밥을 한 줄 다 접시에 채워 나갔습니다.
-아..아니에요. 저는 반줄 만 먹어도 배불러서.
-어차피 반 줄 남은 거 팔지도 못하는 거예요. 괜찮으니까 드세요.
-미안해요.
-미안하다니요.아니에요. 거지꼴로 나타나서 놀랐죠. 저는 정곡이라도 찔린 듯 말문이 막혀서 고개만 옆으로 돌렸습니다.
-참.. 내가 이나이먹고..사기나 당할줄 몰랐지.
-사기요?
제 물음에 할아버지는 입에 있던 김밥을 얼른 씹어 삼켰습니다.
그리고 물 컵 까지 비우시고 고개는 빈 컵에 고정한 채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한때 잘나가던 사장님이셨답니다. 대기압의 물건 납품을 많이 하는 하청업체 사장님이셨대요. 이른 나이에 성공하셔서 넉넉하게 누릴 것 다 누리시며 자식들 고생 안하고 키우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자인 분이 거지 꼴이 되는 건 정말 한 순간이었다고 하시더군요.
그건 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였답니다 할아버지는 평소 투자 같은 건 관심도 없고 접근 같은 것도 안 하셨던 분이라 예금만 두둑하게 있었는데 어느날 아들한테 전화가 걸려오더래요. 지금 해외에서 여행 중인데 큰일이 났다고요. 가방도 누가 훔쳐가서 없고 하나뿐이 손녀딸이 다쳐서 병원에 실려간 상태고 보험도 없어서 돈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며 우선 지금 예금 가진 것 다 보내라고 했답니다. 할아버지는 손이 벌벌 떨리셨대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손녀 달에 ‘할아버지!’ 하는 외침에 무작정 은행 으로 향했고 억소리 가 나던 예금을 다 아들에게 보낸 거죠. 보이스피싱 이었답니다. 은행원도 계속 크기의 아드님 이와 짓이냐 꼭 제차 확인했는데 아들 번호로 전화 왔고 애가 출장이 잦아서 해에도 잘 나가고 손녀딸 목소리도 똑같다고 거기서 우리 애들 다 죽으면 어떻게 할거냐 고 따져 물었답니다. 그렇게 평생을 모으신 전 재산을 잃으셨다고 해요. 그게 보이스 피싱 이란 걸 알게 된건 전화를 끊고 한참 뒤 아들이 걱정되어 전화를 거셨을 때 였답니다. 전화벨 소리가 끊기자마자 괜찮냐고 어떻게 됐냐고 묻는 데 아들이 작은 목소리를 이랬대요.
-아버지 제가 지금 회의 중이라서 나중에 다시 걸게요.
할아버지는 평생 이런 적이 없으시다며 계속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그때 남들 다하는 보증 한번 한적 없고 누가 어디 땅 사라고 할 때도 귓등으로도 안 들었고 그 흔한 곗돈도 안 넣으실 만큼 자신의 신념에 철저 하셨고 타인을 잘 못 믿으셨던 분인데 이렇게 될 줄 알았냐며 한탄 하시더라고요. 제 속이 다 상하더군요. 보이스피싱 같은 건 뉴스에서 나 봤지 전화 한번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놀랍기도 했고 제가 다 억울하고 분할 지경이었습니다.
-신고는 하셨어요?
-네. 당장 했지. 내가. 그런데 경찰 양반들이 그러더라고요. 그거 못 찾는다고 어르신 기대는 하지 마세요. 하는데 참 죽겠더라고요. 집사람 따라가야 하나 싶기도하고.
-그런 말씀 마세요.
-그럼 뭐 내가 더 살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는데. 내 나름 고생 안 시키고 잘 키웠습니다. 내 앞가림 은 내가 하니까 용돈 한 장 가져오지 말라고 부담 주기 싫어서 그랬는데요. 나요.집에 있는 우리 집사람 보석 다 팔고 이제는 가방이며 옷 같은 것까지 전당포 가져다 줍니다. 돈이 없어요. 내가 내 생활비가 없어. 낵.
-자녀 분들은 모르시고요?
-모르지 절대 모르지. 내가 어떻게 말을 합니까. 무슨 낯짝으로 요. 저만 보고 살게 한 애들인데 어떻게 애들한테 손을 벌립니까.
-그래도 자녀 분들이라면 이해해 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그런 애들이 라면 내 진작 말 했겠죠.
씁쓸한 표정을 짓는 할아버지의 표정에서 저도 모르게 연민이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상위에 놓인 할아버지의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투박하게 ‘아들’ 이라고 적힌 글자 뒤로 정장을 말끔하게입은 남자의 증명사진이 배경으로 나타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방금 저와 대화할 때 목소리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과장되게 밝은 목소리로 받으시더라고요.
-어~ 그래 아들
-내 아버지 식사는 하셨나 하고 전화 드렸어요.
– 먹었지 그럼.
– 뭐 드셨어요? 혼자 일수록 더 잘 챙겨 드셔야 해요.
-소고기 먹었다. 아주 힘이 펄펄나!
-뭐 그럼 다행이고요. 주말에 애들이랑 갈까 하는데 괜찮으세요?
-주말 바쁜데 오긴 말과 됐어 됐어.
-요즘 일도 안 바쁘고 애들도 할아버지 보고 싶다고 하는데.
-아, 됐다니까 그러네~!
-왜요 약속 있으세요?
-어, 그래! 최사장 하고 한잔 하기로 해서~~
-뭐 그럼 그러세요. 다음에 갈게요.
-어 그래그래 바쁠텐데 들어가봐라. 전화를 끊은 할아버지는 한숨을 푹 쉬셨습니다.
그리곤 곧 제가 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제 눈치를 쓱 보시더니 민망한 듯 옷이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습니다.
-애들한테 이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거든요.
-이런 모습이 어때서요? 그리고 언제까지 숨길 수 없는 노릇이 잖아요.
-그쵸. 언젠간 밝혀야겠죠.
-배고프시면 언제든지 저희 가게 오세요. 김밥 한 줄이고 열 줄이고 싸 드릴께요. 아 참 할머니께서 떡볶이 좋아 하셨는데 좀 드릴까요?
할머니라는 말에 할아버지께서 잠깐 머뭇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 이셨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날 아주 천천히 떡볶이를 드시고 가셨습니다. 떡볶이를 드시며 한번씩 손수건으로 눈을 꼭 누르셨는데 아마 할머니 생각이 나셔서 우시는 것 같았습니다. 두 분이서 나누었을 그 시간과 그 추억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모르는 척을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날은 도망치듯 가지 않으시고 계속 고맙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처럼 꼬깃한 천 원 한 장을 내미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매일 저희 가게에 오셨습니다. 아마 하루에 한끼를 저희 가게에서 드시는 듯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매번 김밥 반 줄을 주문 하셨고 그러면 저는 한줄을 내어 드렸습니다. 소고기김밥, 참치김밥, 돈까스김밥 등 항상 다른 메뉴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오늘따라 더 맛있네요.
라고 하실 뿐 이었습니다. 가게에 오늘 다른 할아버지 분들도 많았지만 저는 유독 그분께 마음이 가더라고요. 처하신 사정 때문에 더 신경이 쓰이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돌아가신 제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 중학생 때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많이 힘드셨거든요. 그때 아빠가 우시던 그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라 아직까지 더 기억이 나는데 할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제 아버지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라도 더 챙겨 드리고 싶었고 도움이 될만한 일이 있으면 뭐든 해드리고 싶었죠 할아버지가 매일 가게에 오신 지 보름이 흘렀을 무렵 이었습니다. 토요일 저녁 마감을 앞둔 시간이었는데 할아버지께서 오시더라고요. 평소엔 보통 점심에 오시던 분이 그날 않오시길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어두운 얼굴로 터덜터덜 문을 열고 들어 오셨습니다.
-오셨어요? 오늘은 늦으셨네요. 어디 다녀오세요?
-저 여기 소주도 팝니까.
자세히 보니 할아버지는 울고 오신 듯했습니다. 주름이 많은 얼굴에 지워지지 않은 눈물 자국이 있었고 흰자도 빨갛게 핏줄이 서 있었고 목소리는 다 갈라진 쇳소리였죠. 저희 가게에서는 술을 안 팝니다. 그런데 드려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잠깐 기다리ㅅ라고 하고 얼른 나가서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왔습니다 할아버지는 평소보다 더 굽은 등으로 앉아 계셨습니다.
제가 나가서 소주를 사온 걸 아신 할아버지가 화들짝 놀라시더라고요.
-이걸 나가서 사온 거에요? 안 팔면 안 판다고 하지.
-그냥 저도 오랜만에 한 잔 먹게요.
제가 말없이 따르는 술을 할아버지는 말 없이 받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쓴 소주를 단숨에 들이키고 제가 만든 김밥을 오물오물 드셨습니다.
-내가 오늘 납골당 에 다녀왔습니다.
-아 할머니 보고 오셨군요.
-거기가 좀 멀어요. 여기서 버스타고 지하철역 가서 지하철 타고 또 고속버스 타고 내려서 택시까지 타고 가야해요.
-아이고 먼길 다녀 오시느라 고생 하셨네요.
-예 멀죠. 고생했습니다.
-그때 집사람 납골당 들어가면서 애들이 그러더라고요. 여기 너무 머니까 가고 싶을 때 자기는 애들한테 꼭 말하라고.언제든 데려다 줄테니까 꼭 말하라고요.
-자녀분들이 걱정이 많이 되셨나봐요.
-제 말에 할아버지는 느닷없이 피식 코웃음을 치고 다시 술잔을 비우 셨습니다. 내가 지금 꼴이 이러니 애들한테 말할 수도 없고 집사람은 너무 보고 싶어서 혼자 갔습니다. 그런데요 집사람 있는 곳 옆에 그 옆자리가 비어져 있더라고요. 그때 며느리가 하는 말로는 이 납골당이 좋은 것이라고 특히 그 자리가 로얄석 이니 뭐니 하면서 다들 거기 예약하고 싶어 안달이라고 돈 없으면 하지도 못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자리가 비워져 있는데 참 이상하지 않아요?
-뭐 잠깐 자리가 생겼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내가 참 그걸 보는데 그 한 자리만 빈 게 너무 이상해서 사무실 가서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뭐 라는 줄 압니까? 그게 자리가 예약이 된 자리 랍니다. 가끔가다가 여유있는 사람들이 부모 죽기 전에 미리 납골당 계약하는 일이 있는데 그게 그거 랍니다. 그래서 또 물었죠. 계약자가 누구냐고. 안된대요. 못 알려 준대요. 내가 그 옆에 있는 할멈 바깥사람 되는데 거기 계약한 사람 내 아들 이종범, 이 이름이랑 같냐고 그 사람이 그 옆자리 까지 한 거냐 고 하니까 그 남자가 모니터를 힐끔 보던 다시 슬쩍 내 눈치를 보고는 알려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알려주지 않아도 알았습니다. 내 자식들이 나 죽을 짜리 미리 받았다는 거.. 내 자식들이 나 죽기를 바란다는 거.
당혹스러웠습니다.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하나 싶더라고요.
-그 혹시 할머니 옆자리에 다른 분이 안치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그런 거 아닐까요? 같은 것에 모시고 싶어서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떨어져 계심 외로우니까요.
-갑자기 고지식한 얘기 하려고 해서 미안한데요. 그런 말은 부모가 먼저 하는 겁니다. 내 죽거든 아내랑 같이있게 해줘라. 나 한번도 그런 말 한적 없습니다. 부모 죽을 짜리 받아둔다 생각해서 한 행동 아닙니다. 지들 생각해서 한 거지.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편찮으신 것도 아니고 그걸 원하신 것도 아닌데 자기들 멋대로 납골당을 계약해 놓는다는 건 제가 봐도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도 아버지를 납골당에 모시긴 했는데, 뉴스에선가 광고에선가 본 기억이 있습니다. 납골당을 사전 계약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고요. 그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당사자 입장에선 썩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지금은 저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 지지가 않더라고요. 할아버지께서는 남아있는 술병을 비우시곤 조금 비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말 하려고 합니다.
-뭘요?
-나 사기 당했고 이들 줄 돈 없다. 아무것도 없다.
-네 잘 생각하셨어요. 자녀 분들도 이해해 주시겠죠.
-그건 내일이 되어 봐야 알겠네요. 내가 버려질지 부양 될지
할아버지는 술기운이 올라 오신건지 일어나시면서 다리가 한 번 꼬이셨습니다. 모셔다 드린다는 소리에 제게 손을 휘젓고 할아버지는 가게를 나가셨습니다. 상위에 천원 한 장을 두시고요. 들어 오셨을 때 보다 좀 더 씩씩하게 가게를 나 가셨지만 저는 괜히 긴장이 되더라고요.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제가 우려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습니다.추운 날씨의 주말엔 출근을 좀 느긋하게 합니다. 출근길이나 등원길에 김밥을 사 먹는 사람도 없고 날씨가 추우니 소풍을 가는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집 앞 카페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사서 들고 동네를 한 바퀴 쭉 돌고 가게로 가려는데 한적한 동네 한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파트 단지 놀이터 들어가는 쪽에서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 소란의 주인공들을 마주하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희 단골 할아버지가 거기 계시더라고요 할아버지는 벤치에 다리를 떡 벌리고 앉으셔서 팔짱을 끼시곤 입을 꼭 닫고 정면만을 응시하고 계셨습니다. 화가 나신 것 같았습니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침까지 튀기며 있는 말 없는 말을 쏟아내는 사람이 있었는데 할아버지의 자녀들로 보였습니다.
-아버지 진짜 제정신이세요. 어떻게 보이스피싱을 당하여 아니지 제정신이 아니니까 당 하신 거겠죠?
-그러는 너는 제정신이냐? 때 죽을 자리 맡아 준 게 제정신이냐 ?
-말씀드렸잖아요. 그건 만일을 대비해서 그런 거라고 그럼 만일을 대비해서 니 자리도 봐뒀냐? 며늘아가 자리도 봐뒀고?
-아 아버지 진짜 !!
아들로 보이는 남자가 머리를 벅벅 긁더라고요. 이걸 계속 몰래 봐도 될지 그냥 가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다음엔 딸로 보이는 여자가 대화를 이끌 더군요.
-아빠 그러지 마시고 사기 당한 예금말고 돈 더 있으실 거 아니에요. 아버지 연금도 나오실 거고.
-연금 그 코딱지 만큼 나오는 걸로 관리비만 더 내던?
-그럼 그 아빠 여기 말고 아파트 하나 더 있으시 잖아요. 그쵸?
-아파트 는 개뿔. 그거 저자식 결혼할 때 빼서 준거?
-뭐요 오빠 결혼할 때 아빠 아파트를 빼줬다고? 나는 처음 듣는 얘긴데 딸은 그렇게 안 해줬잖아요!
방금까지 할아버지를 살살 달래던 여자의 표정이 싹 굳었습니다.참 이러면 안되지만 그 표정이 너무 우스워서 계속 그 광경을 보게 되더라고요. 남자가 여자에게 나와보라고 살짝 밀치며 아버지 옆에 앉았습니다. 이번에는 남자가 할아버지를 살살 달래더라고요.
-야 너는 지금 그게 중요하냐. 아버지 이 아파트 있잖아요. 이거 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잖아요. 자가고. 그쵸. 맞죠.
-아 맞네. 이 아파트는 아직 남아 있겠네.
남자의 말에 여자가 손벽까지 치면서 호응을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눈이 똘망똘망 해진 두 사람 번갈아 보더니 기가 차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말씀하셨습니다.
-아파트? 내 꺼지. 내가 월세 내고 사니까.
-이게 왜 월세예요? 이게 어떻게 월세냐고요. 아버지!! 집빼서 동생 결혼자금 대줬으니까 월세지 이놈아! 이게 자꾸 지애비 한테 따박따박 아주 큰 소리만 낼 줄 알지 배은망덕한 자식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돈 타령이나 하고 지 애비 죽을 자리나 봐두고! 내가 똑바로 얘기하는데 그거 당장 취소 해라. 나 아주 오래 살 테니까. 그리고 너네 같은 자식 한테는 물려 줄 거 하나 없으니까 나 데리고 살 거 아니면 썩 꺼져라. 내 집에 있는 너네 새끼들도 다 데리고 가.!!
할아버지는 자리를 박차고 계단을 내려 가셨습니다. 여자는 벤치의 주저앉아
-난 몰라
라고 했고 남자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욕을 해댔습니다. 이제 알겠더라고요. 할아버지가 왜 그때 그런 애들이라면 진작 말했겠다고 하셨는지요. 자기들 아버지를 그저 돈으로만 생각하는 아주 나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동네를 빙 돌아 가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가게 앞에 할아버지께서 서 계시더라고요. 추후 신지 외 주머니의 손에 꼭 넣으시고 계셨습니다. 순간 혹시 갈 곳이 여기밖에 없으신 건가 싶더라고요. 저는 얼른 가서 문을 열어 드렸습니다.
– 아이고 추우시죠? 얼른 들어가세요.
-고맙습니다. 주인 양반 오늘은 출근이 늦네요.
-주말 아침에 손님이 없어서요.
-그럼 제가 첫손님 이 된 거네요. 김밥 좀 먹을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잠시만 계세요. 저는 서둘러 재료를 준비했습니다.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가스불을 켰다 껐다 한참을 정신 없이 준비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아까부터 계속 같은 자세로 앉아 계시더라고요. 꼭 쥔 주먹은 무릎에 올려 놓으시고 바닥만 쳐다보고 계시는데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울고 계시다는 걸요. 할아버지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투박한 눈물을 뚝뚝 흘리고 계셨습니다. 저는 이전처럼 그 눈물을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나 지났는지 할아버지께서 겨우 컵에 든 물을 마셨을 때 저는 김밥을 쌌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우동국물 까지 할아버지께 내어드렸죠.
-오늘도 고맙습니다.
-저 어르신 저 사실 아까 봤어요. 어르신 하고 자녀분들 대화 하시는 거요. 일부러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죄송합니다.
-아 이거 험한 꼴을 보이게 되었네요.
할아버지께서 젓가락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씁쓸하게 웃는 할아버지 모습을 보니 더 죄송스러웠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오늘 있었던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젯밤 저희 가게에서 한잔하시고 집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는 자기 전에 자식들한테 문자를 보내셨다고 하셨습니다. 보이스피싱 당에서 전재산 날렸다고 보내시고 그대로 핸드폰 끄고 잠 드셨다 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깨시기도 전인 새벽 6시 누가 비밀번호를 치고 집에 들어오다 랍니다. 바로 딸의 가족 이었답니다. 할아버지는 놀라셨죠. 혹시 뭔일이 생겼나 걱정돼서 왔구나 싶었는데 마주치자 마자 딸이 한다는 소리가
-아빠 진짜 보이스피싱 당했어요?
잠깐이라도 기대했던게 우스울 정도로 딸은 계속 진짜냐고 묻고 사위는 뒤에서 애들 보는 척하며 슬슬 이쪽을 살폈다 합니다. 할아버지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서 입을 꼭 닫고 계셨고 곧 이어 아들네까지 왔더라 합니다. 자식들끼리 이미 연락을 주고 받은 건지 눈으로 대충 왔냐는 시도만 하고 아들이 쪼르르 할아버지 옆에 왔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좀 더 눈치가 있는 아들은 전화를 했는데 왜 안 받냐 일이라도 난 줄 알았다. 하며 결국엔 진짜라고 묻더랍니다. 할아버지는 대답대신 잔액이 0 이 적혀있는 통장을 던졌고 자식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소리를 지르다 난리를 다고 합니다.
저는 보지 못했지만 자식들이 바보냐 어떻게 그런 걸 당 하냐 노인네들 이래서 핸드폰 주면 안 된다. 세상 등신도 이런 건 안다 하며 할아버지께 하는 말인 듯 아닌 듯 하는 말을 계속 뱉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위랑 며느리가 애들도 다 듣는다 며 눈치를 줬고 그래서 자식들과 할아버지가 놀이터로 나와 2차전을 벌은거라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내내 계속 눈물을 참으시더라고요.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한번씩 살피기도 하고요.
-이렇게 슬퍼 하실 거면서 아까 왜 그렇게 모질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만약 거기서 미안하다고 내가 죄인이라고 그랬으면 자식들이 날 데리고 사라졌을까요. 애비 불쌍하다고 여기면서 생활비 라도 보내 줬을까요. 그건 아니요. 나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 이후로 전화 한통 없어요. 사기 당한 거 몰랐을 때 매일 전화했습니다. 며느리랑 딸이랑 누가 더 전화 많이 하나 겨루기 라도 하는 듯이 아주 지겹도록. 내가 그렇게 말을 하고 왔는데 지들이 나한테 그렇게 소리를 쳤는데 전화 한통 안해요. 내가 자식 농사를 이렇게 했네요. 자신 농사를 아주 잘 못했네요.
자기들의 아버지가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는데 어떻게 돈 타령을 하고 원망하고 폭언을 내뱉지 싶었습니다. 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더라고요. 할아버지가 제 속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하신 듯 말을 덧붙이시더라고요.
정말 자식들 얼굴 보기 힘들게 일했다고요. 하루에 한번은 커녕 중학교 넘어가곤 일주일에 한 두 번 보는 것도 어려웠고 가족 여행도 마지막을 언제 갔는지 모를 정도였대요. 엄마랑만 붙어있어 봤지 아빠랑은 대화하는 것도 껄끄러워 했다고 그만큼 자신을 어려워 했고 그건 여전히 마찬가지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애정이 없는 것 같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니 지금의 상황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면서도 문득 제 아들이 생각나 게 됐습니다. 많이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닌데 바쁘다는 핑계로 육아는 뒷전인 제 모습이 괜히 걱정이 되더라고요. 식사를 마친 할아버지는 집으로 가보겠다 고 하셨습니다. 혹시 집에서 자식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서요.
하지만 그 희망은 그저 희망으로 끝이 났는지 할아버지는 그 이후에도 매일 저희 가게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어쩔 땐 점심 밥을 차려 드리는 요리사가 됐고 어쩔 땐 저녁에 반주를 같이 하는 말동무가 되어 드렸습니다. 항상 얘기를 하시는 입장 있었던 할아버지가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시더라고요. 저는 기꺼이 저에 대해 아낌없이 얘기 해 드렸습니다. 군대 다녀와서 서울로 상해 중국집에서 일. 소개팅에서 만난 아내에게 첫눈에 반한 일. 저랑 똑 닮은 아들 사진도 보여드리고 얼마전에 드디어 투룸 에서 벗어나 방 3개짜리 빌라 전세 계약을 한 것도 말씀드렸죠.
무려 엘리베이터도 있다고 자랑 했더랬죠. 할아버지의 사정을 들은 아내는 할아버지께 가졌다 드리라며 반찬도 싸주고 댁에서 주전부리 하실 것도 챙겨 줬습니다. 할아버지와 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남들이 보면 부자지간이라고 오해 할 정도였죠.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낯선 남자와 함께 가게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때 봤던 아들은 아닌 것 같고 사위인가 생각했는데 할아버지가 소개를 하더라고요.
-인사하게 내친구 아들인데 변호사야.
-아네. 안녕하세요.
어리둥절한 채로 할아버지 앉으실 의자를 빼 드렸는데 할아버지가 옆에 앉으라고 하시더라고요. 무슨 상황인가 싶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명의이전 받으실 아파트는 보셨나요.
-네? 명의 이전이요? 아파트요?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으니까 할아버지께서 나섰습니다.
-아 여기 주인 양반 아직 못 봤어. 내가 얘기도 안 했거든.
-어르신 아파트라니요? 무슨 상황인지 여쭤 도 될까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있잖나. 그거 자네한테 주겠네.
무슨 주머니에 사탕 준다고 하듯이 말씀하신 할아버지의 말에 더 당황했었습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싶기도 했고요.
-네 어르신 아파트를 저를 왜 주세요.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나는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아휴, 그건 또 무슨 소리세요.
-할멈이 맨날 다 된 것 같아요,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요,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이제 알겠더라고. 그런데 나 죽으면 배은망덕한 자식들이 내 아파트 가져갈텐데 내가 그 꼴은 절대 못 보겠네. 그래서 말인데 받아주게. 자네가 받아주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아.
프로포즈 라도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경우인가 싶었습니다.
-어르신 그게 이렇게 아무한테나 쉽게 줘도 되는거예요?
-아무 한테 라니. 내가 이제 와서 말하지만 난 자네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을 거야. 굶어서 죽든, 마음의 병이 나서 죽든. 자네는 나한테 가족과도 같아. 아니 가족 그 이상이야.
-네..?아니 잠깐만요. 할아버지 ! 그 때 따님 결혼 자금으로 집 팔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내가 그걸 팔긴 왜파나. 그 것들한테 주기 싫어서 거짓말 한 거지.
할아버지는 통쾌 하신건지 껄껄껄 웃으셨습니다. 저는 여전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르겠고 어리 둥절 하기만 한데 앞에 있던 변호사분이 능숙하게 가방에서 종이 여러 장을 꺼내면서 설명을 하는데 이거 진짜 현실인 건가 내가 이렇게 귀한 걸 받아도 되는 건가 복잡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미 손은 그 여러 장의 종이 들의 서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변호사 분은 명함을 남기고 훌훌 사라지셨습니다. 할아버지도 은행의 가보셔야 한다며 자리를 뜨셨죠. 어안이 벙벙 한게 며칠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날이후 기분이 좋아 보이셨습니다. 제가 이걸 받아도 되는 거냐고 여러 차례 물었는데 할아버지는 항상 자신이 가지고 죽을 순 없으니 거기서 잘 살아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할아버지 안 돌아가실 거예요. 이런 말을 할 수도 없고 저말고 자식들 주세요 할 수도 없고 난감하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할아버지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변호사분과 가게를 휩쓴 지 보름이 지났을 때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추운 겨울 초 저녁이었습니다. 밖이 소란스러워서 나가보니 구급차가 와 있고 사람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더라고요.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가보니 구급대원 중 한 명이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였습니다. 저희 가게를 오시려다 그렇게 되신 것 같았습니다. 너무 놀란 저는 가게 문을 잠가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제가 보호자 라고 하면서 할아버지를 따라 구급차에 탔습니다. 할아버지는 의식이 전혀 없으셨습니다. 구급차 구석에 초조하게 앉아서 미동도 없는 할아버지와 다급한 구급 대원들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결국 병원에 도착하기 직전에 숨을 거두 셨습니다. 법적으로 보호자가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할아버지 핸드폰으로 할아버지 자녀 분들께 연락을 취하는 데 계속해서 안 받더라고요 아들에게 10통 딸에게 10통 했을 때 였을까요. 딸이
-아 왜요!
하고 날카롭게 받더라고요. 제가 자초지정을 설명했습니다. 딸은 말없이 듣더니 전화를 뚝 끊고 두어 시간 뒤에 병원에 나타났습니다. 그 뒤로 아들도 나타났고요. 둘 다 울고 있지 않았습니다. 조금 놀란 표정도 다음날 장례식장에 갔을 때에도 둘 다 울지 않더군요. 부모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다양하다지만 자식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그다지 슬퍼하지 않는다니 할아버지의 삶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틀 후에는 변호사가 가게에 찾아왔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대출을 받으셔서 명의 이전 비용 이며 사후에 짐정리를 어떻게 할 것이며 모두 변호사 분께 전달 드리셨답니다.
일주일 안에 집이 비어 질 테니 그 돈으로 이사 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뭐랄까요. 제 평생 서울의 아파트 전세로 라도 살아 볼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졸지에 서울의 아파트 한 채 있는 사람이 된 건 분명 기쁜 일이지만 그게 남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일이라니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노릇이 더라고요. 변호사 분은 가지고 온 서류들을 정리 하시더니 이번엔 명함 대신 편지봉투를 내밀고 가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제게 전해 주라고 하셨다면서요. 편지의 내용은 짧았지만 꾹꾹 눌러 쓴 글씨 에서 할아버지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주인 양반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의 마지막을 함께 해줘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외롭지 않았습니다. 내 먼저 가 있을 테니 다음 생에도 친구로 만납시다.
저는 편지가 할아버지 라도 되는 듯 꼭 끌어안고 끅 끅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민 고민을 하다가 저희는 할아버지가 주신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월 세 만큼이나 비싼 관리비를 내야 하고 생각보다 더 비싼 세금도 내야 하지만 도저히 이걸 판다거나 세를 내준다고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럼 할아버지께서 서운해 하실 것 같았거든요.아 그 할아버지 자녀분들이 이 사실을 어떻게 알고 집에 와서 한번 난리를 친 적이 있었습니다.
네가 뭔데 우리 아빠 집을 뺏어가냐는 둥 저보고 기꾼 이라고 하더라고요?그런데 변호사님께 전화 한 번 하니 싹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 독기 어린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아무튼 저는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제가 언제 죽을 지 모르겠지만 만약 생이 끝난다면 다음 생애도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할아버지가 주신 것 항상 감사히 여기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할아버지 그 곳에선 웃을 일만 가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사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