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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어느 작은 도시에서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30대 여자입니다.
평생 부모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착하고 바르게 자라왔던 저희 엄마가 미혼모가 되고 난 후 집에서 쫓겨나기까지 했었는데 어떠한 계기로 인해 엄마는 저를 다시 외할머니 집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외삼촌의 사랑을 듬뿍 받아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고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힘든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늘 긍정적으로 저를 키워내셨던 저의 엄마가 제가 7살이 되던 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저는 외할머니의 손에 맡겨지게 되었습니다.
“합의도 없이 태어난 것도 불쌍한데이 어린 나이에 어미도 일타니이 어린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가혹한 일들만 벌어지나 싶다 부모를 잘못 둔 것도 죄라면 죄가 되겠구나”
“엄마 그래도 세빈이한테는 우리가 있잖아요. 물론 엄마랑 아빠랑은 차원이 다르겠지만 우리가 엄마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잘 돌봐주면 세빈이 그래도 괜찮을 거예요. 우리 세빈이 누나 닮아서 천성이 착한 아이라는 거 엄마도 아시잖아요”
“내 나이도 이제 70이고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데 내가 어떻게이 어린애까지 키우겠어. 나는 정말 자신이 없다. 그래도 그나마 내가 얘한테 해줄 수 있는 건 씻겨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밖에 없을 것 같구나.”
“엄마는 그것만 해주세요 그 왜 그건 제가 할테니까 다른 건 절대 걱정하지 마시고요 저 가고 단단히 했어요 제가 세빈이를 내 딸처럼 잘 키워야지 누나도 마음 편히 눈 감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어떻게든 내가 세빈이 잘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할머니와 외삼촌이 저를 거둬 주셨는데 엄마가 세상을 떠난 것이 슬프긴 했지만 최선을 다해 저에게 부모 역할을 해주시던 할머니와 외삼촌 덕분에 저는 씩씩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5년 후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셨고 제게 가족이라고 남은 사람은 외삼촌이 유일했습니다
세빈아 삼촌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삼촌이 세빈이의 아빠도 되어주고 엄마도 되어주고 친구도 되어줄게 우리 세빈이 시집갈 때까지 삼촌이 세빈이 옆에 있었을테니까 세빈이는 엄마랑 할머니 없다고 슬퍼하지 말고 걱정하지 마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세상에 삼촌과 단둘이 남게 되었을 때 삼촌은 약속대로 제게 부모도 되어주고 친구도 되어 주셨습니다. 저는 왜 삼촌을 제 부모라 생각하며 삼촌의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삼촌에게 많은 의지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삼촌과 단둘이 산지 1년 만에 저는 삼촌에게서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세빈아 삼촌이 정말 미안해 삼촌도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삼촌도 어쩔 수가 없었어 지금은 네가 어려서 삼촌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세빈이가 삼촌을 이해해줄 날이 올 거라고 삼촌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삼촌을 너무 원망하지 말아주렴”
“삼촌 나 이제 여기서 살아야 되는 거예요? 여기 고아원이잖아요. 여기는 부모님이 안 계시는 친구들이나 지내는 것인 걸로 아는데 제가 왜 여기서 지내야 돼요?”
“세빈이도 알겠지만 삼촌이 이제 곧 결혼을 할 것 같아 삼촌이 결혼을 하게 되면 세빈이랑 같이 살 수가 없어서 그래 그러니까 세빈이 앞으로는 여기서 지내도록 하자 삼촌이 세빈이 보러 자주 올게”
“삼촌 결혼을 해야 돼서 지금 저를 고아원에 버리시는 거예요 언제는 저 시집갈 때까지 제 옆에 있어 주시겠다고 하셨으면서 어떻게 저를 여기에 버릴 수가 있어요”
“세빈아 삼촌은 절대로 세빈이를 버리는게 아니야 가능하다면 세빈이 데리러 올 수 있도록 삼촌이 노력해볼게 그러니까 여기 원장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
결혼을 하게 된 삼촌은 더 이상 저를 키울 수 없게 됐다며 저를 고아원에 맡기셨고 그 후로 저를 찾아오지는 않으셨지만 종종 고아원으로 선물을 보내곤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삼촌이 보낸 선물이라고 하면 뜯어보지도 않고 바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습니다.
“야 너희 삼촌도 너한테 말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너한테 그렇게 잘해줬던 사람이 이유도 없이 너를 고아원에 맡겼겠냐”
“우리 삼촌은 나한테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이야 나를 그렇게 쉽게 벌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자기가 끝까지 책임지기로 했으면 어떻게든 책임을 졌어야지 그 인간은 어린애를 고아원에 갖다 버리면서 죄책감도 안 느꼈나 몰라”
고아원에 들어간 이후 저는 제가 세상에 버려진 불쌍한 아이라고 생각을 하며 자랐습니다. 저는 제가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것이 저의 가장 큰 콤플렉스라고 생각을 했고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남자를 통해서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세빈아 나 얼마 전에 남자친구랑 헤어졌다면서 나 아는 오빠 중에 진짜 성격 좋고 괜찮은 오빠 한 명 있는데 소개해줄까 너랑 엄청 잘 맞을 것 같아서 너한테 꼭 소개해주고 싶었거든 소개 한번 받아볼래”
그 남자 잘 살아 아니면 돈 잘 벌어 채빈이의 돈 많은 집 아들이거나 전문직인 남자만 만나는 거 너 몰라서 그래 예 평범한 사람은 절대 안 만나잖아”
“아 그랬어 나는 몰랐어 사람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소개해 주려고 한 거였는데 돈 많은 남자만 만나야 되는 거면 안 되겠다이 오빠 가난한 건 아니지만 평범한 편에 속하거든”
저는 태어나길 돈 많은 집에 태어난 남자나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남자만 골라 만났습니다 그런 남자들을 만나 연애를 하면 저도 그 사람과 같은 급의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또 그 사람들을 통해 제 인생을 역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오빠 나한테 프로포즈는 해놓고 왜 부모님한테 인사드리러 가자고는 안 해 설마 지금 나한테 프로포즈한 거 후회하고 있는 건 아니지?’
“그게 아니라 부모님이 아직 며느리를 맞을 생각이 없으시다고 해서 지금 당장 인사드리러 가긴 힘들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전에는 부모님이 얼른 결혼해서 애낳으라고 해서 스트레스 받는다고 얼른 결혼부터 해야겠다고 말했잖아 설마 오빠 부모님이 나 보기 싫다고 하셔서 미루고 있는 거야”
“미안하다 사실 두 분한테네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두 분은 본인들이 원하는 며느리를 맡고 싶다고 하시는 중이셔서 우리 결혼 준비하고 있는 건 일단 다 취소해야 될 것 같아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두 분 잘 설득시켜 볼게”
25살일 때 저는 결혼을 할 뻔하긴 했었습니다. 돈이 많은 집안의 아들이기도 했고 100억대 매출을내는 화장품 회사 대표이기도 했던 남자와 말이죠. 하지만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고아이다가 제대로 된 직업도 없는 저를 며느리로 드릴 수 없다고 해서 저희는 결국 파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가 파혼을 당한 것이었죠
“세빈아 너 남자친구랑 헤어졌다면서 프로포즈까지 받았다고 하길래 결혼도 당연히 하는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니 혹시 남자친구 부모님이 결혼 반대한 거야”
“부모도 없는 고아라고 하니까 고아는 절대로 안 된다면서 극구 반대를 하셔서 파혼하기로 했어 근데 나는 괜찮아 너도 알겠지만 난 남자 잘만 아는 편이잖아 세상에 널링이 남잔데이 정도로 나 속상해하지는 않아”
“그래 나는 너만큼 남자 잘 만나는 애는 또 못 봤어 어쩜 그렇게 돈 많은 남자만 만날 수 있는지 너 그것도 정말 재능이다”
처음 파혼을 당했을 때 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딱히 아쉽지도 않았구요. 친구에게 말했던 것처럼 널린게 남자였고 저는 또 그만한 남자를 만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저는 파혼 후에도 돈 많고 잘나가는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게 되었는데 그 남자와는 정말 열렬히 사랑을 했기에 부모의 반대도 이겨내고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네가 그 세빈이라는 애구나 우리 아들한테네 이야기 많이 들었다. 너희 둘 결혼할 생각이라고 하던데 그 전에 너한테 내가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 너 고아원에서 자란 고아원 출신이라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니?”
“네 14살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오빠에 비해 정말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오빠에게 좋은 아내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제가 오빠한테도 어머님이랑 아버님한테도 정말 잘 할테니까 저희 결혼 허락해 주시면 안 될까요”
“ 김칫국 마시진 않았으면 하네 나는 너희들 결혼 허락해 줄 생각이 추워도 없다 너도 참 애가 왜 이렇게 생각이 없니 너 같은 고아원 출신의 애가 우리 집안의 시집오는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거니 내가 볼 때 너 돈 좀 있는 남자 꼬셔서 팔자 고쳐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 되도록 가만히 둘 것 같아?”
그래도 그때 당시에 남자친구는 직전에 만나던 남자친구와는 달리 자신의 부모가 결혼 반대하는 것에 대해 크게 화를 냈고 또 저에게 걱정 말라며 안심을 시켜주기도 했었습니다. \
“세빈아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 해서든 우리 부모님 마음 돌릴 수 있도록 해볼게. 부모님이 죽어도 안 된다고 하시면 내가 집을 뛰쳐나와서라도 너랑 결혼할테니까 나만 믿고 조금만 기다려줘. 본의 아니게 너에게 상처를 줘서 정말 미안해.
“오빠 자신 있어? 부모님이 나랑 결혼하면 재산이고 뭐고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하면 어떡할 거야 그래도 괜찮아 당연하지 너도 알겠지만 나 부모님 없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직업을 가졌잖아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자식이이기는 부모 없다는 걸 내가 보여줄게”
자신만 믿으라며 어떻게든 저와 결혼을 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던 남자친구는 1년 가까이 저 때문에 부모님과 싸우다 본인도 지친 건지 결국엔 저에게 먼저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세빈아 미안하다 어떻게든 부모님 마음 설득시켜보려고 했는데 그게 내 마음처럼 쉽지가 않더라. 그렇다고 부모님이랑 연을 끊으면서까지 너랑 결혼할 자신도 없었어. 우리 이제 각자의 길을 가도록 하자.”
“언제는 나보고 부모님이랑 연을 끊어서라도 나랑 결혼하겠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왜 마음이 바뀐 거야 돈 없는 여자 선택하느니 돈 많은 부모님 선택하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거야”
“돈을 떠나서 천륜을 끊는게 쉬운 일이 절대 아니야 너는 부모님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평생 부모님 도움 받고 평생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라온 나 같은 사람은 그게 쉽지 않다고 나 우리 부모님이랑 연 끊는 집까지 못 하겠어”
“지금 말 다 했어 그래도 너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너도 똑같은 인간이었구나 나도 너같이 사람들한테 쉽게 상처주는 인간이랑 결혼하고 싶지 않으니까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어디 평생네 부모그늘 밑에서 꼭두각시처럼 잘 먹고 잘 살아봐”
두 번째 파혼을 당하고 난 후 저는 계획을 바꿔 저를 좋아하는 어른들의 자녀를 공략해 보기로 했습니다. 당시 제가 피부관리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저희 피부관리실에 자주 오던 부자 모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어머님은 저를 딸처럼 여겨 주시고 엄청 예뻐해 주셨는데 저는 그 어머님의 아들을 사적으로 연락해 꼬셨고 그렇게 연애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우리 아들이랑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이건 별거 아니고 일하면서 당 충전하라고 사 온 디저트니까 이거 먹으면서 일해요~ 그나저나 우리 아들이 잘해줘요 우리 아들 성격이 좋아서 자기 여자한테는 엄청 잘해줄 텐데”
“네 맞아요 오빠 정말 잘해줘요 세상에 이렇게 다정하고 착한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너무 잘해줘서 요즘 매일이 행복해요 어머님이 이렇게 좋으신 분이셔서 오빠가 다정하고 착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님”
“내 덕분은 아니고 개가 원래 천상이 착했어요 어쨌든 우리 아들이랑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잘 만나봐요 그리고 우리 아들이 속 썩이고 그러면 나한테 바로 말해요 내가 대신 혼내줄테니까”
제가 일부러 공략을 하고 만난 남자친구의 엄마는 저희 연애 소식을 들으시고는 잘 만나보라고 응원을 해주시고 제가 일하는 피부 관리실에 올 때마다 저를 위한 선물을 사들고 와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이 사람과의 결혼은 별 탈 없이 수월하게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건 저의 크나큰 착각이었습니다
“지금 두 사람 결혼하겠다고 나를 찾아온 거야? 세상에 결혼이라니 둘이 연애만 하고 끝내는 거 아니었어?”
“우리 만날 때부터 진지한 관계로 만난 거였어요. 그래서 생각보다 일찍 결혼 이야기까지 나누게 된 거고요. 엄마 이 사람 좋은 사람인 거 알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말 하지 마시고 그냥 저에게는 허락해 주세요”
“나는 두 사람 당연히 연애만 할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결혼이라니 결혼 전제로 만나는 거였으면 나 두 사람 연애도 못하게 내가 나서서 말렸을 거야 지금 나가지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들이야 연애는 어차피 장난이니까 수준 차이가 좀 나도 상관없지만 결혼이라고 하면 그 이야기가 달라지지”
남자친구 엄마가 저를 너무나도 예뻐해 주셔서 당연히 결혼 허락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남자친구 엄마는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표정을 싹 바꾸시고는 절대로 허락을 해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180도 태도를 바꾸며 말했습니다
“저기요 김세빈 씨 내가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대해주니까 내가 우스워 보였어요 어떻게 겁도 없이 우리 아들을 탐낼 수가 있어요 김세빈 씨는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사람인가? 김세빈 씨랑 우리 아들이 수준이 맞다고 생각해요?”
“엄마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해요 세빈씨가 저보고 억지로 결혼하자는 것도 아니고 우리 둘 서로 사랑하고 좋아해서 결혼한다는 건데 왜 수준을 우는 하시는 거냐고요”
“너는 가만히 있어 너는 딱 보면 모르겠니 여자가 우리 집 돈보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거잖아 내가 잘해주고 자기 좋아해 주는 것 같으니까 우리 집 며느리도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너한테 접근한 거라고”
“우리 세빈씨 그런 사람 아니에요 솔직히이 사람 저희 집에 비해 가진게 없는 건 맞지만 정말 착하고 현명한 사람이라구요 엄마는 왜 가진 걸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그러세요”
저를 인간적으로 좋아해 주던 사람도 결국은 저의 출신 때문에 결혼을 반대하는 것을 보고 그때 깨달았습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고아는 절대로 돈 많은 부잣집 도련님과 결혼을 할 수 없는 것을 말이죠
“세빈 씨 내가 어떻게든 엄마 설득시켜볼게요 사실 엄마가 며느리 욕심이 조금 있었거든요 저희 엄마가 보기보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세빈 씨가 우리 엄마 기대에 미치지 못한 며느리라고 생각을 해서 심통 나서 저러시는 거예요 근데 우리 엄마 세빈 씨가 아니라 누가 봐도 저렇게 하셨을 거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요”
“우영 씨 미안하지만 우리는 인연이 아닌 것 같아요 저 때문에 괜히 어머님이랑 싸우지 마시고요. 오늘 집에 가셔서 어머님한테 저랑 헤어졌다고 말씀드리세요”
“세빈 씨 왜 이래요 벌써 포기하기는 일러요 그리고이 정도 반대도 생각도 못하고 저랑 결혼할 생각한 거예요? 세빈 씨 저를 정말 사랑한다면 힘들어도 조금만 견뎌주세요”
“우영 씨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저는 우영 씨한테 어울리는 여자가 아니에요 제 수준은 밑바닥인데 그것도 모르고 우영 씨 같은 사람을 만나려고 했더니 제가 욕심이 많았던 거예요 저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으니까 제발 여기서 끝내주세요”
세 번의 파혼을 당하고 난 후 더 이상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던 저는 그 이후로는 그 어떤 남자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평생 살아왔던 고향을 떠나 연고지 하나 없는 작은 시골 동네로 이사를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세빈아 가족도 없는 니가 여길 떠나면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거야 여기는 그래도 친구들이라도 많지 네가 가는 곳은 아는 사람 단 한 명도 없는 곳이잖아”
“나는 지금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 출발하고 싶어 나 지금까지 너무 잘못 살아온 것 같아 고아원에서 자란게 잘못이 아닌데 나 혼자 자격지심을 나를 괴롭게 만들고 또 결핍을 남자로 채우려고만 했어 근데 나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새 출발을 하려는 거야”
저는 새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작은 동네로 내려오게 되었고 이사를 하던 날 저희 집에서 도배를 해주고 있던 도배사인 남편을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이 동네 사람은 아니시죠? 어쩐 일로이 작은 동네까지 이사를 오시게 되신 거예요? 혼자 사시는 것 같은데 결혼은 아닐테고… 공무원이셔서 발령이라도 받으신 건가요? “
공무원은 아니고 그냥 여기서 한번 살아보고 싶어서 내려왔어요 동네가 조용하니 좋은 것 같더라구요 여기서 제빵하고 다니면서 빵집을 하나 차려볼까 생각 중인데 괜찮겠죠
“빵집 좋죠 제가 여기 토박이랑 상권 잘하니까 빵집 차릴 때 저한테 한번 연락 주세요 제가 상권 기가 막히고 월세 저렴한 곳 알아봐 드릴게요”
저 또래로 보였던 남편은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도배 일을 해서 그런지 낯가림도 없고 싹싹하니 성격이 아주 좋아보였습니다. 저희 집에 도배를 할 때 딱 한 번 본 사람이기는 했지만 빵집을 차릴 때 제가 도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남편이었기에 저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남편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빵집 차릴 때쯤 연락 주시라고 하셔서 연락드렸어요. 그때 상권도 추천해주고 상가도 알아봐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안 그래도 연락 기다리고 있었어요. 마침 엄청 좋은 자리를 내가 하나 알게 됐거든요 내일 시간 되면 저랑 한번 같이 가보실래요? 외지에서 온 젊은 여자 혼자 가는 것보다이 동네 토박이인 저랑 같이 가시는게 훨씬 도움 되실 거예요.”
그렇게 저는 오지랖이 넓은 남편 덕분에 연고지 하나 없는 작은 동네에서 빵집을 차릴 수 있게 되었고 본격적인 새 출발의 신호탄을 터뜨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빵집을 차리고 난 후 남편은 매일 아침 일찍 저희 빵집을 들려 빵을 사가곤 했는데 저는 그게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매일 이렇게 아침마다 빵 사가 주셔서 감사한데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돼요. 저 잘 되라고 이러시는 건 잘 알지만 조금 부담스러워서요.
“장사하는 사람한테는 첫 개시 손님이 중요하지 않아요 그래서 일부러 첫 개시손님 하려고 가게 여는 시간 맞춰서 오는 건데 그렇게 말하면 서운하죠. 그리고 여기 빵 맛이 좋아서 같이 일어난 직원들 간식으로 사가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뭐 설마 제가 그쪽 좋아해서 이러는 거겠어요?”
저는 저를 생각해주는 남편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남편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남편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친절했고 늘 먼저 배려를 했으며 좋은 에너지를 나눠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근데 사장님은 나이가 어떻게 돼요? 저랑 비슷할 것 같은데 언제 한번 저랑 술 한잔해요. 친구도 없는 동네에서 맨날 빵만 굽고 사는 거 재미없지 않아요”
“저 올해 서른이에요 안 그래도이 동네에서 취미생활 할 만한 것 좀 추천받아볼까 생각 중이었거든요 사장님 말씀대로 일 집 반복하니까 너무 심심해서요”
“그래요 그럼 저랑 배드민턴 치러 다니지 않으실래요 제가 배드민턴 동호회를 하나 하고 있는데 연령대도 다양하고 좋은 사람들만 있어서 모이면 참 재미있거든요”
제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남편 덕분에 저는 가족도 친구도 하나 없는 곳으로 내려와서도 외롭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빵집 사장님 우리 기억이 어떻게 생각해요 이렇게 보니까 둘이 잘 어울려서 엮어주고 싶은데 그래도 빵집 사장님 마음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서 물어보는데 우리 기영이 괜찮게 생각하고 있다면 한번 만나봐요”
“저는 기영씨 좋게 생각하고 있어요 나이도 어린데 성실하고 어른들한테도 잘하고 성격도 너무 좋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서요 근데 남자친구로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것 같네요”
“이제부터라도 생각해보면 되죠 우리 기용이랑 한번 잘해봐요 우리 기영이 신랑감으로도 훌륭한 남자고 기영이랑 결혼하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예요 그리고 기형이 저놈 보기보다 엄청 순해 보거든요”
돈 많은 남자만 찾아다니던 제가 평범한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졌는데 남편을 만나고 난 후 저는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제 이상형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진정한 제 이상형에 들어맞는 마음이 건강한 남편에게 반해 처음으로 평범한 남자와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빈 씨가 우리 기억이랑 꼭 결혼해줬으면 좋겠어요. 아 제가 기용이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기형이 진짜 괜찮은 애거든요. 저한테 여동생이 있었다면 무조건 기억이한테 시집보냈을 거예요. 그 정도로 기억이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어마 우리 동네에서 기용이 사윗감으로 탐내는 어른들 엄청 많을 걸요 기억이 생긴 건 좀 순복해 보여도이 동네 여자들한테도 인기 엄청 많아요 기영이 소개해달라는 여자가 한둘이 아니더라고요.”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 저는 남편이 좋은 사람이니 꼭 놓치지 말고 결혼을 하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어야만 했습니다 저도 남편과 같은 사람이라면 제 인생을 맡겨도 되겠다고 느끼긴 했지만 파혼을 세 번이나 했던 경험이 있어 차마 쉽게 결혼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남편이 저와 같은 고아원 출신이라는 것을 연애 1년 만에 남편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미안한데 우린 여기까지인 것 같아 갑작스럽게 헤어지자고 해서 정말 미안해 오빠는 좋은 사람이니까 나보다 더 좋은 여자 만날 수 있을 거야”
“설마 내가 고아여서 헤어지자고 하는 거야 너 내가 고아라는 이야기 듣고 난 이후부터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던데 정말 그 이유 때문에 나보고 헤어지자고 하는 거야?”
“맞아 오빠가 고아라서 헤어지자고 하는 거야 사실 나도 지금까지 말 못한게 있었는데 나도 고아원에서 자랐었어 오빠가 좋은 사람인 건 알지만 나는 나같이 불행하게 자란 고아랑은 결혼하고 싶지 않아”
제가 평생을 부모도 없이 불행하게 살아왔기에 저는 남편만큼은 부모님이 모두 계시는 온전하고 행복한 가정에 자란 사람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와 같은 고아였던 남편에게 헤어지자고 했던 건데 남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저에게 매달렸고 또 저를 설득시켰습니다.
“세빈아 나 군 전역하고부터 도베일 하면서 모은 돈으로 좋은 아파트도 하나 사뒀고 또래에 비해서 정말 많은 돈을 모았어. 어릴 땐 나도 너처럼 내 처지에 대해 속상해하고 좌절하기도 했었지만 나는 내 인생은 내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 생각을 하고부터 나는 불행하지도 않았고 괴롭지도 않았고 오히려 행복하기만 했어. 내가 너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줄테니까 나 믿고 나랑 결혼해줘라.”
같은 고아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저와 달라도 너무나 달랐습니다. 절대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 저와 달리 남편은 노력만 하면 인생을 얼마든지 역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남편은 어린 시절과 다른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어린 나이에 집도 사고 야독이나 모은 남편을 보면서 저도 한 번쯤은 남편과 같이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는 남편에게서 확신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세빈 씨 기용이 프로포즈 받아주셨다면서요? 정말 잘 생각했어요 제가 제 친구라서 이렇게 말하는 거 아닌 거 알죠? 그리고 기영이한테 들었어요 세빈수도 고아원에서 자랐다구요 저는 두 사람이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두 사람이 결혼하면 지금보다 더 잘 살 거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살 수 있길 늘 응원할테니까 우리 기영이랑 잘 살아주세요.”
“오빠가 정말 좋은 사람인 건 맞나 봐요 오빠 친구부터 시작해서 오빠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더 오빠 칭찬뿐이더라구요. 저는 제가 정말 불행한 사람이고 평생 죽을 때까지 불행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빠 만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저도 오빠처럼 행복하게 열심히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남편과 저는 아는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고 결혼 후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저희는 결혼을 하자마자 아이를 가질 수 있었는데 남편의 인복 덕분에 친정식과 하나 없는 저였지만 저는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도 무사히 출산을 할 수 있었습니다. 딸아이가 태어난 후 제게 남아있던 작은 근심과 걱정들도 남김없이 사라지게 되었고 남편과 더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기 위해 매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갔습니다. 치열하지만 평화롭기만 하던 날만 지속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딸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오랜만에 외식을 하러 갔는데 그곳에서 누군가가 남편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야 최규영 오랜만이다 너 장가갔던 이야기 들었는데 정말 장가를 가긴 갔구나? 거기다 애까지 나왔어? 너 진짜 많이 컸다”
“오랜만이다 나도 애들 통해서 너 경찰 됐다는 소식 들었어 고생 많이 했었는데 정말 축하한다. 근데 여기는 어쩐 일이야?’”
“나 여기로 발령 받았거든 앞으로 여기서 지낼 것 같아 근데 너 장가갈 돈은 모아두고 장가간 거냐 돈도 없는데 막 지른 건 아니지?”
“내 소식을 제대로 못 들었나 보네 나 아이들 중에서 돈 제일 많이 버는 거 몰랐어 나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지금 성가도 하나 살 계획 중이야 똑똑하기로 유명했던 내가 설마 무책임하게 돈도 없이 결혼을 했겠어?”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사람은 오랜만에 본다는 남편을 보자마자 비아냥거리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고 저는 그 사람이 너무나도 불쾌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남편의 친구이니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대뜸 저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근데 무슨 일 하시는 분이세요? 얼굴 보니까 여기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공무원이세요? 공무원이 아닌 이상은 외지인들이 여기 올 일이 없거든요”
“저 사거리 주유소 앞에서 빵집 운영하고 있어요. 여기 사람은 아니고 동네가 좋아 보여서 혼자 내려왔다가이 사람 만나서 같이 살고 있는 중이에요”
“아이고이 자식의 꼬임에 넘어가신 피해자 분이시군요 얘가 어렸을 때부터 여자를 참 잘 꼬시긴 했죠. 어쨌든 오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다음에 또 뵈었으면 하네요”
남편은 남편의 동창이 어렸을 때부터 자기보다 약하거나 약점이 있는 친구들을 놀리고 괴롭히는 재미로 사는 사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고아원에서 자란 남편은 항상 그 친구의 단골을 놀림거리였다고 말해주었죠.
“보니까 사람을 무시해도 아주 더럽게 무시하던데 당신 앞으로 그 인간 만나면 인사도 하지 마 동네가 좁아서 안 볼래 안 볼 수 없을 텐데 어떡해 그래도 최대한 엮이지 않도록 노력해볼게”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고 난 후에도 한동안 기분이 찝찝하고 좋지 않았는데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이 저의 빵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여기서 빵집 하신다길래 좀 팔아 드리려고 왔어요 우리 경찰서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 사줄 빵 좀 사가려고 하는데 맛있는 빵으로 담아주세요”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을 보자마자 기분이 나빠지기는 했지만 좋은 의도로 저희 가게에 온 것 같아 애써 웃으며 고객으로서 끝까지 친절하게 응대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친구가 계산을 끝내고 난 후 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근데 기영에게 고아인 건 알고 결혼하셨어요 개가 재수씨한테도 고아인과 연애초부터 말하던가요 설마 아직까지도 기형에게 고아원을 소자라는 거 모르시는 건 아니죠 아니다 결혼까지 해서 애까지 낳고 사는 중인데 그걸 모를리는 없겠죠”
“결혼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근데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무슨 의도로 저한테 그런 질문을 하신 건지 궁금하네요.”
“기형이 개가 워낙 거짓말을 잘하니까 제수씨가 걱정이 돼서 제가 오지랖을 좀 부렸네요 그리고 제 직업이 경찰이라 그런지 사람들한테 조사된 캐묻는 직업병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러시구나 근데 저는 그쪽이 다른 의도를 가지고 질문하신 것 같이 느껴지네요 그리고 모르시고 계신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저도 고아라 그 사람이 고아인게 저한테 크게 문제될 건 없거든요.“
남편과 같이 저도 고아 출신이라고 하자 남편 고등학교 동창은 얼굴을 심하게 구겼습니다 그리고는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리더니 인사도 건네지 않고 가게에서 나가버렸죠 그 후로 동네 오다가다 몇 번 마주치곤 했는데 남편의 동창은 뻔뻔하게 가식적인 웃음을 보이며 항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아 제수씨 언제 한번 집으로 초대 좀 해줘 난 너네 집 구경 한번 가보고 싶다 야~ 결혼도 했는데 애들 불러서 집들이 한번 해야지 않겠어
“집들이 이미 했어 그리고 지금은 내가 일이 바빠서 안 될 것 같고 나중에 시간 되면 그때 초대해 줄게”
“야 내가 없는 집들이가 무슨 집들이냐 내가 애들 데리고 갈테니까 집들이 준비해놔 제수씨 맛있는 거 많이 준비 부탁드릴게요”
만날 때마다 집들이 타령을 하던 남편 동창은 안 된다는 저희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결국 말도 없이 친구들을 데리고 저희 집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이렇게 애들 데리고 오면 어떡해 집에 안주거리 할만한 거 없으니까 이러지 말고 일단 나가자 내가 나가서 술 사줄게”
“야 시켜 먹으면 되지 요즘 배달이 얼마나 잘 되있는데 그래 그리고 나 여기서 먹고 싶으니까 얼른 상 좀 차려줘 제수씨! 술은 제가 사왔으니까 먹을 거 간단한 거라도 좀 내와주세요”
친구들을 데리고 막무가내로 집으로 쳐들어온 남편 동창 때문에 화가 나기는 했지만 남편의 다른 친구들을 보며 화를 참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요리를 죄다 만들어 갖다 바쳤고 남편 동창회 비위를 맞춰주었습니다 저희 집으로 찾아온 남편 친구들 대부분이 술에 취하게 되었을 때 그 중에서도 제일 심하게 추해했던 남편 고등학교 동창이 결국엔 좋게 유지되고 있던 분위기를 망가뜨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기형이를 보고 깨달았다. 역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끼리끼리 만나서는 것 같아. 어떻게 꼬아주시느라고 자기 와이프도 고와 출신인 사람을 만나서 사는지. 정해져 태어난 사람 팔자라는게 이래서 바꾸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 같네”
“야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냐 술 많이 취한 것 같은데 이상한 소리할 거면 이제 그만하고 가자”
“내가 뭐 못할 말 했냐 너희들 착한 척하지 말고 나처럼 솔직하게 말해봐 너희도 기영이이 자식 꼭지 같은 거 만나서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잖아 솔직히 고아가 아무리 배우자를 잘 만나봐야 얼마나 잘 만나겠어 도배로 돈 많이 벌고 집은 살면 뭐 해 고아에서 벗어나질 못하는데 그래도 이왕 이렇게 고아끼리 만나서 살기로 한 거 열심히 잘 살아봐라 기형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도와줄게”
남편 동창의 말에 남편이 발끈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저는 소란을 부리고 싶지 않아 제 나름대로 그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들 술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마지막 한잔하고 일어나는 걸로 해요 저도 내일 일찍 가게 문 열어야 돼서 얼른 정리하고 자야 되거든요. 마지막 잔이니까 마지막 술잔은 제가 채워 드리는 걸로 할게요.”
남편 친구들을 쫓아내기 위해 남편 친구들 술잔에 술을 채워주고 있는데 남편 고등학교 동창이 저를 보고 기분이 나쁠 정도로 웃어 보이더니 저를 술집 여자 취급하는 성희롱 발언을 시전했습니다.
“사실 남자들끼리 술 마시면 꿀 담은 술이라도 맛이 없거든 근데 이렇게 여자가 하나라도 있으면 똥수를 마셔도 꿀맛이 나게 되어 있다니까~ 내 친구 와이프지만 그래도 여자라고 치마들은 여자가 술따라주니까 술맛이 좋네~”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편의 주목이 날아갔고 순식간에 그 자리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너 지금 나 때렸냐? 너 내가 누군지 알고 나를 때려 나 경찰이야 경찰 지금 당장이라도 너 경찰서에 쳐 집어넣을 수 있는 경찰이라고 지금 내 손에 수갑이 있었으면 더 바로 수갑 쳤어
“야이 새끼야 사람이 참는데도 한계가 있어 건드릴게 없어서 감히 내 와이프를 건드려 너이 새끼 내가 걷지도 못하게 다리 분질러버릴 거니까 당장 이리 와
“네가 내 다리 분지르기 전에 내가 너 감방에 쳐 놓을 거니까 너 딱 기다려 내가 고아인네 와이프 남편까지 잃고 혼자 애 키우게 만들어 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라고 너 때문에네 와이프 팔자 조지게 됐다 야!”
저에게 성희롱한 것도 모자라 남편과 저에게 말끝마다 고아 고와 거리는 남편의 동창을 보고 결국 폭발해버려 남편 동창에 정강이를 걷어차며 말했습니다
“우리 남편을 감방에 쳐놓겠다고? 나야말로 네가 우리 남편 감방에 쳐 놓기 전에 너 경찰 관두게 만들 거야 니가 뭔데 내 남편을 감방에 넣었는데 네가 우리 가족을 건드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무식한 것들끼리 만나니까 아주 개판이구만 부모한테 버려진 주제에 네가 뭔데나데! 고아들끼리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꼴이 참 안타깝고 우습네”
“남편의 동창은 끝까지 고아인 남편과 저를 무시했고 저에게 피 섞인 침을 뱉은 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남편은 웬만하면 집에서 쉬라고 했지만 저는 빵집가게 문을 닫고 남편 동창이 일하고 있다는 경찰서로 달려갔습니다 경찰서 건물 입구에 제가서 있자 출근을 하던 남편의 동창은 놀란 눈을 하고 제게 달려왔습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여기까지 쫓아왔어요 어제 일은 어제 일로 끝내시라고요 저도 그렇고 기영이도 그렇고 술에 취해서 생긴 일인데 왜이를 크게 만들려고 하세요? 그리고 여자가 어디 겁이 여길 왔어요 기영이가 어제 저 때린 거 그냥 용서해 줄테니까 돌아가세요!”
“내가 어제 말했잖아 너 경찰 그만두게 만들어 버릴 거라고 나 절대로 그냥 못 넘어가고 당장 경찰서장 불러서 너 잘라버리라고 말할 거야 그러니까 너 경찰서장 나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경찰서장이 제수씨 친구예요? 괜히 사람 곤란하게 만든지 말고 돌아가시라고요! 남의 직장에서 무슨 행패예요”
남편 동창은 저를 쫓아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저는 휴대폰을 꺼내 들어 경찰서장에게 직통으로 전화를 걸어버렸습니다.
“저 세빈이에요 지금 경찰서 앞인데 잠시만 내려와 주실 수 있어요?”
많이 급한 거니까 1분 이내로 당장 내려와 주세요 진짜 우리 서장님한테 전화 걸었어요
“지금 저 돌리시는 거죠 제수씨가 우리 사장님 번호를 알리가 없잖아요”
남편 동창은 끝까지 믿지 않았지만 정확히 1분 후 경찰서장이 허겁지겁 제가 있는 곳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그러자 남편 동창회 면상은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고 저는 경찰 소장에게 말했습니다
“삼촌 인간이 저한테 성희롱을 했는데 이거 어디다 신고하면 돼요? 인간 제 남편 고등학교 동창이거든요. 근데 어제 우리 집에서 술 먹겠다고 쳐들어오더니 저보고 여자가 술 따라줘서 술맛 좋다고 하던데 이거 성희롱으로 신고할 수 있는 거 맞죠?”
경찰서장에게 제가 삼촌이라고 부르자 남편 동창의 얼굴은 새파랗다 못해 썩어가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낯빛이 어두워졌습니다. 사실 제가 부른 경찰 소장은 제가 연을 끊고 살았던 저희 외삼촌이었습니다. 경찰이었던 외삼촌이 경찰 서장이 되고 우연찮게 제가 살던 곳으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저희 빵집에 빵을 사러 온 삼촌과 마주쳐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일로 남편은 제게 왜 삼촌이 존재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고, 어쩌다 삼촌과 남처럼 지내게 되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사실 우리 엄마 삼촌 때문에 돌아가셨어 엄마가 삼촌한테 신장이식을 해주셨거든 그 일로 삼촌은 건강을 되찾았고 엄마는 건강을 잃으셨어. 그렇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삼촌이 엄마 때문에 목숨을 부지했으니 나에게 부모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을 했던 거야. 근데 외숙모 될 사람이랑 처가에서 내가 있으면 결혼 허락을 못 해준다고 해서 날 고아원에 가져다 버린 거였지.”
“그래서 외삼촌이랑 연을 끊고 살았던 거였구나 나한테 말 안 할 만 했었네 그래도 이번엔 삼촌이 도와주신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삼촌은 나를 고아원에 버리고 난 이후부터 나한테 절절매고 살았어 자기가 죽을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계셨거든. 안 그래도 나한테 평생 죄책감 느끼면서 살고 있는데 그런 조카가 성희롱 당했다고 도와달라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나한테 미안한 것도 많고 이 기회로 나랑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서라도 어떻게든 나를 도와주고 싶었겠지.”
제가 삼촌을 죽을만큼 미워하고 원망했던 이유는 삼촌이 저를 고아원에 버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삼촌에게 신장이식을 해준 엄마가 죽고 제가 고아가 된 것인데 결혼을 해야 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를 버린 것을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죠. 어쨌든 경찰 소장인 외삼촌 덕분에 남편의 동창은 징계를 받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의 동창은 지금까지 수많은 징계를 받았고 사고를 치지 말고 살라고 고향으로 발령을 받은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누적된 징계가 많다보니 남편의 동창은 결국 경찰 일에서 짤리게 되었습니다. 남편 동창이 동네에서 평판이 제일 좋았던 사람의 아내인 저에게 성희롱을 해서 경찰에서 짤리게 되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자 남편의 동창은 도망가듯 다른 동네로 이세를 가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남편 동창은 제 부모에게 쫓겨나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남편의 동창 대신 남편 동창의 부모님에게로부터 사과를 받았고 또 저희 외삼촌과 외숙모에게도 진정 어린 사과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래도 외삼촌과 외숙모와 좋은 가족 사이로 지낼 수는 없지만 저는 이제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지 않아도 되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외삼촌과도 좋게 마무리를 지었으니 앞으로 제 인생의 머리 아픈 큰 이벤트는 생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 저에게 가장 큰 바람이 있다면 딱 남들만큼만 행복하고 남들만큼만 불행했으면 한다는 것이랍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이 많이 남았고 한치도 모르는게 사람의 인생이라지만 왠지 모르게 저는 제 남편이 제 곁에 있다면 앞으로 저도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이 마구마구 생깁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남편 하나는 정말 잘 만났거든요. 그럼 남편 자랑을 끝으로 제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저의 긴 서연을 끝까지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 복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