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집에 팔려가듯 시집가 저를 낳았지만 바람난 아빠에게 버려진 우리 엄마..” 시간이 흐르고 한쪽팔이 없는 여자와 결혼한다며 여자친구를 엄마께 소개하자 엄마는 울면서 충격적인 ‘과거’를 고백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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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곧 두 아이의 아빠가 되는 30대 후반 구독자입니다. 저에게는 과분한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는데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의 이르기까지 제게 벌어졌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모두가 그렇듯 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어머니입니다. 대부분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제 어머니도 정말 헌신적이셨어요. 아니 다시 표현해야겠네요. 제 어머니의 인생은 참 안쓰러웠습니다. 어머니는 20대 초반에 저를 낳으셨습니다. 20살이 되자마자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란 8살 연상의 남자의 시집을 발 뻔했지만 겨우겨우 미로고 미뤄 24살의 결혼을 하게 됐죠. 그래봤자 미뤄진게 4년이었고 그 4년 동안에도 가족과 남자의 가족 그리고 그 남자에게 시달려야 했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그 남자가 바로 저를 낳아준 생부입니다. 왜 아버지를 생부라 부르냐면 아버지는 밖에서는 누구에게나 신사로 불리지만 집에서는 폭력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죠.게다가 그 폭력을 자식에게까지 휘두른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혼에는 어머니의 의사가 없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친정은 어딜 여자가 말을 하냐라고 하는 가부장적인 집안이었고 어머니의 어머니도 평생 그렇게 살아온 분이셨습니다. 옷도 집에서 입으라는 옷만 입었고 단발머리는 꿈도 못 꿨으며 하교 후 친구들과 놀러가는 것도 불가능한 삶이었죠. 오빠와 남동생에게 치여 양보를 강요받는 그런 인생이요.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는데 어떻게 집안의 결정에 토를 달 수 있었을까요. 어머니는 그렇게 떠밀리듯 원치 않는 결혼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생부의 폭력과 폭언에 지칠 때마다 유일하게 의지할 곳인 친정에 기대고자 했어요 하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친정어머니 그러니까 제 외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너 시집갈 때 내가 뭐라 그랬니 출가 외인이라고 했지 시집갔으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할 망정 친정까지 와서 오는 소리를 해! 
죽을만큼 힘들어도 꼭 참아야지 집안일이 자랑이냐 힘들어도 꾹 참고 그러는 거야 나는 안 그러겠니 너만 힘들어?” 

어머니에게 가족은 유일한 희망이었을 겁니다. 실제로 어머니는 성인이 된 책에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무리 괴롭게 해도 엄마니까 엄마는 나를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지 같은 여자이기도 하고” 

“엄마도 시댁에서 시달리기도 했잖니 그리고 우리 아버지도 좋은 남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엄마는 나를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아니더라 시댁에 괴롭게 하는 것보다 어머니가 나를 외면하는 걸 보는게 더 힘들었어” 친정이 이러니 시댁은 더 심했습니다.

"부잣집에 팔려가듯 시집가 저를 낳았지만 바람난 아빠에게 버려진 우리 엄마.." 시간이 흐르고 한쪽팔이 없는 여자와 결혼한다며 여자친구를 엄마께 소개하자 엄마는 울면서 충격적인 '과거'를 고백 하는데...

시댁이 잘 살았던 이유는 부모에게 큰 재산을 상속받았기 때문이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집안에 큰 행사와 재산은 오로지 큰 집이었던 시댁의 몫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사를 준비하는 건 어머니의 몫이었죠. 물론 다른 며느리들이 있었지만 

“다른 며느리들은 시집올 때 혼술을 어마어마하게 가져왔어 결혼한 후에도 남편들이 마누라 집도움을 많이 받았고 본인들이 을이까 갑인 며느리들한테 일을 시킬 수 없었던 거야 그런데 나는 뭐니 가난한 친정은 아들 둘 뒷바라지 않느라 정신이 없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꾹 참고 시댁에 하라는 대로 하는 거야 그리고 제사상은 얼마나 크게 차리는지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놔도 부족하다면서 일을 시키더라 기름이 쏟아져서 화상을 입어도 저는 붙여놓고 병원에 가라고 하는데 서러워서 그냥 콱 죽어버리면 나아질까 생각도 했어”

아주 어린 시절에 흐릿한 기억으로 회상해보았는데 온 가족들이 한데 모여 있을 때 어머니는 항상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앞치마를 둘러메고 온몸에 기름 냄새를 묻힌 채 부엌에서 일하고 있었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에게 웃으면서 다가가 이렇게 말하고는 했습니다. 당신 힘들지 조금만 힘내 내가 집 가면 안마해줄게 가증스러운 말이었죠.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어머니의 손 발 어깨를 주물러 준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이런 행동은 철저한 가식이었어요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인성이 좋은 사람이라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죠. 

사립학교 교사로 취직하며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 메이킹은 친척들에게도 이루어졌습니다. 아버지의 동생 형 부모님은 가면 속의 얼굴을 알고 있었겠지만 절대 티를 내지 않았죠. 그렇게 친절한 아버지 덕에 득을 보고 있으니까요. 즉 어머니가 곪아버린 속을 털어놓아도 그 말을 믿어줄 사람이 없던 거였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당당히 외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같은 학교에 여교사랑 이요. 누구보다 청렴하고 도덕적이어야 하는 사람들이 학생들이 생활하는 학교 안에서 스릴을 즐기며 불륜을 저질렀던 겁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불륜녀를 만나러 가는 날이면 늘 오셨습니다 우연히 집에 들렀다 그 모습을 본 시어머니는 

“네가 얼마나 못했으면 남자가 바람이 나냐 여자가 꾸밀 줄도 알고 애교도 부릴 줄 알아야 하는데 너는 목석같이 딱딱해서 나원 나였어도 바람났어”라고 말했고 시어머니에게이 말을 전해들은 친정어머니는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창피를 당했는지 알아 남자가 밖에서 일하면서 스트레스 받으면 그럴 수도 있지 여자가 돼 가지고 배려심도 이해심도 없고 그것 때문에 질질 짠다는 걸 차돈한테 들어야 하냐고 내가”

라고 했죠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어머니가 딱 한번 아버지에게 큰 소리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그랬듯 손을 올렸고 그날은 그 손이 저에게까지 향했어요. 어머니는 악소리를 내며 저를 감싸셨습니다. 

"부잣집에 팔려가듯 시집가 저를 낳았지만 바람난 아빠에게 버려진 우리 엄마.." 시간이 흐르고 한쪽팔이 없는 여자와 결혼한다며 여자친구를 엄마께 소개하자 엄마는 울면서 충격적인 '과거'를 고백 하는데...

“안 비켜!” 

“애한테는 이러지 말아요 애가 뭘 안다고 그래요” 

저에게는 단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던 사람이 그날에는 왜 그랬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저를 못살게 구는게 어머니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울고 있는 어머니 앞에서 씩씩거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건방지게 어디서 큰소리야 사근사근하고 조신한게 데리고 살기 좋아서 사왔더니만 이거 아주 대바라진 거였네 야 내가 너네 집에 얼마를 퍼다 준 줄 알아 너 결혼하면 너네 오빠랑 동생 뒷바라지 할 사람 없다고 해서 얼마를 줬는데!”
 
이 모든 이야기를 전해주던 어머니는 조금 슬픈 눈을 하고 있었습니다. 

“설마 설마 했어이 얘기를 듣는데 그때 알았지 나는 그 집에 팔려갔던 거야”

"부잣집에 팔려가듯 시집가 저를 낳았지만 바람난 아빠에게 버려진 우리 엄마.." 시간이 흐르고 한쪽팔이 없는 여자와 결혼한다며 여자친구를 엄마께 소개하자 엄마는 울면서 충격적인 '과거'를 고백 하는데...

 어머니는 이 사건 이후로 집을 나왔지만 집을 나온 이유는 어머니가 돈 주고 팔려온게 아니라 아버지가 저에게 손을 댔기 때문이었습니다. 

“설마 했지만 예상을 못했던 건 아니었어. 친정은 가난했지만 오빠는 하고 싶은게 많았고 어렸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않도록 내가 오빠랑 동생 뒷바라질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거든. 그런데 내 자식한테 손 올리는 건 못 참겠더라고. 나한테 그러는 건 참을 수 있지만 그리고 어떻게 지 자식한테 그래?”

어머니는 그날로 저를 데리고 도망갔고. 그때부터 어머니는 독종이라는 소리를들을만큼 악착같이 사셨습니다. 

“내가 내내 소리밖에 못하고 하라는 대로 하니까 무시당했던 거야. 엄마가 무시당하니까 자식도 무시당한 거고. 내가 독해지지 않으면 내 자식을 지킬 수가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일을 갈았지.” 

어머니가 이런 다짐을 하고 난 후 아버지가 어머니를 찾아왔습니다. 어머니를 거칠게 끌고 가는 아버지의 팔을 뿌리치며 어머니는 단호하게 소리치셨습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와?“

두 눈을 부릅뜬 채 꼿꼿하게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에 아버지는 처음으로 주춤했어요. 

“뭐라는 거야이 여편네가 어디 남편한테 반말이야?” 

“남편은 무슨 남편이야 마누라 기운 줄 모르고 자식 귀한 줄 모르는 인간이 뭐가 남편이야?” 

“이게 진짜!” 

아버지는 습관처럼 손을 올리려고 했지만 이내 주변에 눈치를 보며 손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다가가 협박을 했어요. 

“네가 이런다고 내가 눈하나 깜빡할 것 같아? 지금 운 좋게 식당일 하나 구한 것 같은데 일 한번 안 해본 네가 뭘 할 수 있겠어 어 고집 그만 부리고 집으로 안 들어와?” 

“내가 일을 안 해보긴 뭘 안 해 걸을 수 있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만한 사람이야 내가! 얼마나 마누라한테 관심이 없으면 그런 것도 몰라이 인간아… 너네 집 조상 뒷바라지 하느라 허리가 휘었어 내가 이 나이에!”

아버지는이를 바득바득 깔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겠죠. 비록 꿋꿋하게 서서 눈을 부릅뜨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속은 그게 아니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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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러면 진짜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수가 있어 나 어떤 놈인지 알지 지금까지 겪어봤잖아 살고 싶으면 따라오는게 좋을 거야 알겠어 빨리 짐 챙겨서 와” 

어머니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마지막으로 꺼낸 카드는 협박이었습니다 치졸하죠 어머니는 짓지 않고 말했습니다 

“어디 한번 해봐 나라고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그 여자랑 바람피운 증거 다
모아놨어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당신네 그 잘난 학교에 뿌려질 거라고” 

“증거는 무슨 증거 내가 그딴 말을 믿을 것 같아” 

“나갈 때마다 그 여자 만나러 간다고 떠들고 나갔는데 내가 가만히 있었겠어 둘이 뭔 짓을 하고 있었는지 내가 다 봤어” 

어머니의 마지막 한 방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자리를 떴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어머니는 가진 폐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해요. 그때 처음으로 큰소리 내봤는데 

“증거는 무슨 증거야 집에서 울면서 속상해한게 다였지 그냥 질러 본 거야 그게 통해서 다행이지 뭐니” 

어머니는 그 기세를 몰아 이혼하셨습니다. 제 증언이 크기도 했어요. 당시 제 나이가 국민학교 고학년이었을까요 제가 보고들은게 이혼의 결정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가족들은 화를 댔다가 이내 회유했습니다.

훌륭하고 타의 모범인 교사가 이혼을 했다는 꼬리표를 붙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자 이번엔 양육권을 주장했습니다. 이혼 후에도 홀로 자식을 기르는 좋은 아버지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돈이 있는 사람이 아이를 키워야 하는게 아니냐며 우겨댔지만 기각되었죠. 제 의사가 중요하다면서요. 대신 아버지가 매달 양육비를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두 사람의 외도 사실을 외부에 알렸다면 통쾌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어쨌든 아버지가 보내는 양육비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굳이 어머니가 귀찮은 일을 하지 않아도 아버지와 불륜녀는 자기들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어머니와 이혼한 뒤 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여자와 합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 여자는 미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여자는 이혼남이랑 결혼할 수는 없다며 매몰차게 돌아섰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버지는 학교 직원들과 교사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곳에서 불륜녀에게 소리를 지르며 자신들의 불륜 사실을 모두 알렸다고 합니다. 그동안 철저하게 숨겨왔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가장 들키고 싶지 않았던 곳에서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스스로 알림 꼴이 되었던 겁니다. 하필이면 그때 학생 몇 명이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이와 같은 소문은 한순간에 퍼져 나갔습니다. 학생들이 알게 되었으니 학부모들이 알게 되는 건 당연하죠. 아버지는 전통있는 살이 밖에 교사였기 때문에 학교와 학부모들은 교사들에게 그만큼의 인격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교사가 같은 교사와 학교에서 불륜을 저질렀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학부모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고 학교를 찾아와서 항해하는 학부모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아이를 이런 비도덕적인 곳에서 가르칠 수 없다는 학부모들의 항의 학교는 아버지와 그 여직원을 해고하기로 했고 두 사람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연한 수순이었죠. 두 사람이 했던 건 사랑이 아니라 잠깐 애 불장난일 뿐이었으니까요. 학교에서 짤린 아버지는 곧바로 다른 학교에 이력서를 냈지만 합격이 될 리가 없었습니다. 지난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본인 스스로 그만둔 것도 아니고 모종의 이유로 짤렸다는 건 교사를 채용하는 학교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었고 아버지가 왜 짤렸는지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이 소식은 친척들의 기회도 들어갔고 평생 동안 가면을 쓰고 살았던 아버지는 자신의 몰락을 견디지 못했고 폐인으로 살기 시작했다고 하죠. 그에 반해 어머니는 아버지가 보내주지 않는 양육비를 매우기 위해 악착같이 사셨습니다. 홀로 아이를 키운다는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할 법도 한데 어머니는 그러면서 단 한 번도 불평하신 적이 없었죠. 시간이 흐른 후 어떻게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 한 번도 불평을 안 하셨냐라고 여쭤보자 어머니는

“내 자식이랑 둘이서 오붓하게 사는게 그 지옥 같은 집구석에서 사는 것보다 백배 천 배 나왔어. 이혼하기 전에는 몸이 부서져라 이래도 알아주는 사람 한 명 없었는데 이혼하고 나니까 내가 일을 하고 일을 잘하면 인정을 받았지 않니 그리고 한번 큰 소리 내고 보니까 나중에는 쉽더라. 친정 가족들이 와서는 호통을 치고 사람을 괴롭게 하는데 말이 또박또박 나오더라고. 그 인간이랑 한바탕 하니까 간이 커졌는지 친정 가족들은 무섭지도 않았어. 나를 평생 동안 고생시켰던 사람들 얼굴을 안 볼 수 있게 됐는데 힘들 리가 없지 당연히”

어머니는 작은 가게에서 일을 한 것을 시작으로 점점 큰 가게로 일하는 것을 넓히더니 나중에는 작은 가게를 여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엔 직원이 둘이나 되는 가게에 사장님이 되셨죠 그런 어머니 덕분에 저는 꽤나 여유롭게 1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20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대부분의 20대처럼 살았어요. 대학도 갔고 또래와 어울리며 술도 진탕 먹어보고 연애도 하고 질질 짜면서 이별도 해보고 군대도 가고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렸던 시절에 어울렸던 잊고 지낸 친구들과 만나고 여행도 가보고 한 번도 입에 대본 적 없는 술도 마셔보고 제가 20대를 즐겼든 어머니는 그 시절을 즐겼을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어린 시절도 찾고 계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고생하던 그때를 너무나 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너무나 기뻤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가끔 철없는 행동을 해서 어머니를 걱정시키기도 했죠. 그러던 중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런만큼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이었어요. 아주 우연한 계기로 저는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였죠. 다같이 식사를 하고 있는 중에 동기 한 명이 어 하며 누군가를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현주 씨!” 

동기가 손을 흔들며 보고 있는 자리에는 모델 같은 여자 한 명이서 있었습니다 현주라고 불린 그 사람은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동기에게 다가왔어요 늘씬하고 아름다운 외모에 다들 수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이 다가오는 동안 동기들은 난리가났습니다. 그 사람을 부른 동기의 옆구리를 찌르며 야 누구냐 누군데라고 답을 재촉했죠. 그 사람이 저희 테이블 앞에 와서 섰을 때 동기가 자리 하나를 만들어 그 사람을 안 쳤습니다 

“여기는 내 직장동료 김현주 씨, 다들 인사해라” 

모두가 앞다투어 현주 씨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동기들 사이에 흐르던 웃음은 현주 씨의 작은 행동 하나로 끊어졌습니다 현주씨의 작은 행동은 어깨에 걸쳐진 외투를 벗는 것뿐이었어요.

그런데 현지씨의 그 작은 행동은 저희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현주씨는 한쪽 팔이 없는 상태였거든요. 순간에 정적이 찾아왔고 현주 씨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뜻 동기들을 보며 데려오셨습니다. 

“많이 놀라셨나 보네요. 제가 사고 때문에 파란 쪽을 절단해야 됐어요.” 

그 누구 하나 섣불리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제 앞에 앉아 있던 동기 한 명이 정말 궁금하다는 듯 현주 씨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어요. 

“그런데 강민이 직장 동료라고 하셨죠?” 

현지 씨는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이어진 동기의 질문은 모두를 멈칫하게 만들었어요 강민이 복지시설에서 일하지 않나 현지씨는 또 대답했습니다 

“네 저도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어요” 

동기는 입맛살을 찌푸리며 또다시 물었습니다. 저는 조마조마하며 동기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걱정하고 있었죠. 그런데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었고 동기는 무례한 질문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장애인이 장애인 시설에서 어떻게 일해요?” 

모두의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가끔 눈치 없게 행동하는 면이 있긴 했지만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구분 못하는 줄은 몰랐어요. 그 친구 옆에 있던 친구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이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궁금한 점을 입 밖으로 굳이 꺼내 놓았습니다. 

“아니 잠깐만 너네도 궁금하잖아 어떻게 장애인이 같은 장애인을 돌보지 그게 가능해요? 법적으로?” 

"부잣집에 팔려가듯 시집가 저를 낳았지만 바람난 아빠에게 버려진 우리 엄마.." 시간이 흐르고 한쪽팔이 없는 여자와 결혼한다며 여자친구를 엄마께 소개하자 엄마는 울면서 충격적인 '과거'를 고백 하는데...

식은땀이 줄줄 났어요. 대놓고 장애인이라고 말하는 것도 큰일 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주 씨의 직업마저 깎아내린 것과 똑같았으니까요. 저와 모든 친구들은 곁눈질로 현주씨를 살폈습니다. 그런데 화를 낼 거라 생각했던 현주 씨의 반응은 아주 평온했어요.

현주씨는 무례한 질문을 한 친구를 보면서 대답했습니다. 

팔 하나를 잘라내면서 장애인이 됐죠 그런데 제 꿈은 처음부터 사회복지사가 되는 거였어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꿈을 접을 필요는 없잖아요 

현지씨는 무례한 질문에 웃으면서 대답한 것을 넘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애인으로 사는게 불편하긴 하지만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장애인이 되어 보니까 장애인들 마음을 더 잘 알게 되더라고요 

떨며 말하는 현주 시 덕분에 분위기가 풀리기는 했지만 그 말은 저에게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현주씨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흐름을 이어갔어요 보지 않아도 알겠더라고요. 현주씨는 직장에서도 다른 직원들을 이끌어가는 사람에게 분명했습니다 현주씨를 자리에 앉힌 동기가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되려 그 친구를 다독이기도 했죠 그렇게 훈훈하게 자리를 파악하고 나서 저는 현주씨를 따라갔습니다 

“저 현주 씨!” 

현주씨는 의아해하며 저를 보았죠 방금까지 제대로 말도 안 섞어본 사람이 대뜸 뛰어나왔으니 이상할 만도 했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심장이 뛰더라구요 누군가를 보면서 그렇게 심장이 뛰었던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앞뒤 역시 대뜸 현주 씨에게 내일 시간 있으세요라고 물었어요 현주 씨는 웃음을 터트리며 저에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요 

아까 저랑 말도 안 하지 않으셨어요 저는 저를 마음에 안 들어 하시는 줄 알았는데 

저는 딸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건 제가 낯을 많이 가려서 그런 거고요 이름도 모르는데 어떻게 데이트를 해요” 

현주 씨의 말에 프리즈가 인사를 하고 돌아 나가려는데 현주 씨가 재미있다는 웃음을 지으며 제게 물었습니다 

“이름이 뭔데요” 

저는 다음날 현주씨를 만났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한참동안 대화를 했죠 대화를 하며 알게 된 건 현지씨가 사고로 인해 팔을 절단하게 되었다는 거였습니다 현주씨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처음엔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눈을 떴는데 병원 천장이 보이더라고요 몸이 너무 무거워서 팔을 짚고 일어나려는데 뭔가 이상했어요 분명히 왼팔에 힘을 준 것 같은데 아무 느낌이 없었죠 아무 생각 없이 왼쪽을 봤는데 분명히 팔이 있어야 하는 곳에 팔은 없고 병원복만 펄럭이더라고요 그대로 졸도했어요 다시 정신을 차린 뒤에도 한동안 충격에 말도 못했죠 팔을 잘라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수술 과정에서 잘라낸 건데 부모님한테 팔 없이 살게 할 거면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그랬냐고 못된 말도 했죠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죄스러워서 말문이 막혀요” 

당당하고 올곧게만 보였던 현주 씨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니 절로 숙연해졌습니다

“그런데이 말을 하자마자 어머니 옆에서 아버지가 눈물을 뚝뚝 흘리시더라고요 무뚝뚝한 분이시고 평소엔 저랑 대화도 잘 안 하시던 분이 입술을 꽉 깨물고 오시니까 당황했죠 아버지가 울먹이면서 ‘우리는 살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라고 하시는 걸 들으니까 머리를 한데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내가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한 건가 생각하면서 그날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죠 평생을 두 팔로 살았는데 한 팔만 쓰려니 정말 불편하더라구요이 팔에 익숙해지는데만 1년이 넘게 걸렸으니까 뭐 다음은 예상하시는 대로예요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시험을 봐서 사회복지사가 됐어요” 

현주씨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달싹이며 아무 말 하지 못하는 저에게 

“의외로 불편한게 그리 많지는 않았는데 가장 불편했던게 절단한 팔이 오른손이어서 왼손을 써야 했던 거였어요 제가 오른손잡이였거든요”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현주씨를 보며 희미하게 웃음이났습니다 웃어도 되나 싶어 눈치를 보니 

“웃으세요 저 불쌍한 사람 아니에요”

라고 말해주었죠 그날 이후 현주 씨가 자꾸 생각났습니다 제 눈에는 현주 씨의 장애가 아닌 현주씨의 멋진 삶이 보였거든요 저는 끊임없이 고해했고 현지 씨와 저는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혼까지 생각하게 되었죠 현주씨와 결혼을 약속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현주 씨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한테 제 얘기했어요” 
“네 여자친구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왜요?”

"부잣집에 팔려가듯 시집가 저를 낳았지만 바람난 아빠에게 버려진 우리 엄마.." 시간이 흐르고 한쪽팔이 없는 여자와 결혼한다며 여자친구를 엄마께 소개하자 엄마는 울면서 충격적인 '과거'를 고백 하는데...

현주씨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어요 그 제 장애 얘기를 했나 해서요 저는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걸 얘기했어야 하는 거예요 

어른들한테 인사드리겠다고 말씀드린 것도 아닌데 여자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왜 장애가 있는게 흠인 것처럼 얘기해요. 현주 씨가 이러는 모습 처음 봐요 현주 씨는 혹시나 자신의 장애가 흠이 되어 저와의 결혼을 허락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나도 내가 이렇게 불안해하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생각대로 마음먹기가 쉽지 않네요 저는 현지씨를 다독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의 약속을 진행했죠 현재 씨는 저를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이 외투를 어깨에 걸친 상태로 레스토랑에 도착했습니다 어머니는 반갑게 현주씨를 맞아주셨고 현재 시도 떨리는 마음을 감추며 인사했죠 그리고 의자에 앉은 뒤 현주씨는 조심스럽게 외투를 벗어서 의자에 걸쳐 두었습니다 저와 현주 씨는 어머니의 반응을 살폈지만 어머니는 아직 보지 못한 듯 현지씨와 저를 번갈아서 보고 계셨어요. 

“저 어머님” 

현주 씨가 어머니를 불렀을 때 어머니는 그제야 현주 씨의 팔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애써 당혹스러움을 감추셨습니다. 많이 놀라신 듯했어요. 현재 씨는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떨궜습니다. 어머니는 

“저기..” 

라면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하시는 듯 했지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셨어요. 약간의 정적이 흐른 뒤 현주시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귀하게 키운 아들이었을 텐데 제가…” 

현재씨가 죄송하다고 말하자마자 어머니는 아들짝 놀라시며 손사래를 치셨어요. 

“죄송하다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아가씨가 나한테 미안할게 뭐가 있다고” 

현주 씨는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저는 저를 보고도 아무 말씀 안 하시길래” 

“그건 솔직히 조심스럽잖아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랬던 거고 아휴 내가 너무 조심스러웠나 보네 미안해요”

“이름도 못 물어봤네요 이름이 어떻게 돼요? “

“김현주입니다” 

서로 통성명한 뒤에 어머니는 저희에게 어떻게 만났냐 얼마나 만났냐 무슨 일을 하냐 우리 아들이 가끔 철없이 행동하는 듯 싸우지는 않았냐라고 물어보면서 화기애애하게 분위기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덕분에 저와 현주 씨의 긴장감도 서서히 부러졌어요 대화가 무르익었을 쯤 저는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엄마 놀라지는 않았어요?” 

어머니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대답해 주셨습니다 

“안 놀랐다면 거짓말이지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가 되니 얘기해 보니까 두 사람 서로 많이 사랑하는 것 같고 현주도 열심히 사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여 그게 중요한 거지 현재 겉모습이 중요한 건 아니잖니” 

현주씨는 어머니의 말에 용기가 생겼는지 물었습니다. 

“제가 장애가 있는데도 정말 괜찮으세요?”
 
“그럼 문제없지 다만 일상생활을 할 때 불편할까봐 걱정되기는 하네” 

“평상시에 불편한 건 없니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은 없어요 타고난지 꽤 돼서 생활하는데 많이 익숙해졌거든요 “

“그래 다행이네” 

어머니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하고 계셨습니다. 생각과 너무 다른 상황에 현지씨는 본인이 나서서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성인이 되고 나서 사고가 있었어요 죽기 직전까지 갔는데 정말 하늘이 도와서 살아난 거라고 하더라고요” 

“고생 많았겠구나” 

살짝 떨리고 있는 현주 씨의 손을 잡아주며 건네는 어머니의 위로에 현주씨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 결혼 생각하고 있는 거지 저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어머니는 제 눈을 보며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절대 가벼운 마음이 아니라는 거지?” 

“당연하지” 

어머니는 제게 아주 중요한 조언을 하기 시작하셨어요 

“니 마음속에 동정심이 있니?”

어머니는 현주씨를 향해 양해를 구했습니다. 현재 씨는 아무렇지 않다고 대답했죠. 저는 어머니가 이런 질문을 한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현주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안 돼 현주와 너를 똑같은 사람으로 봐야 되는 거야 두 사람이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올 텐데 그 결정에 현재 장애가 개입돼서는 안 된다는 거야 현재 장애는 그냥 겉모습일 뿐이라는 걸 항상 명심해 너랑 현주랑 손 크기가 다르고 발 크기가 다르고 키가 다르듯이 현주의 한쪽 팔이 없는 것도 그냥 그런 거야 알겠니?” 

저는 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현주씨를 배려하는 이유가 장애에 있다면 그건 현주 씨를 동정하는 것일 테니까요. ‘저 사람은 장애가 있으니까 이건 못할 거야 그러니까 내가 해줘야지’라는 생각은 동정일 뿐이었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넘어가실 수도 있는 부분을 어머니가 짚어주시는 걸 보면서 어머니의 지혜에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뒤이어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현주도 명심해야 하는게 또 있어. 너희가 아무리 사랑하고 사이가 좋아도 살다 보면 싸우는 날도 있겠지. 그럴 때 현주는 내가 팔이 없으니까 장애가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절대 안 돼. 성식이 너도 마찬가지야 알겠지? “어머니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부잣집에 팔려가듯 시집가 저를 낳았지만 바람난 아빠에게 버려진 우리 엄마.." 시간이 흐르고 한쪽팔이 없는 여자와 결혼한다며 여자친구를 엄마께 소개하자 엄마는 울면서 충격적인 '과거'를 고백 하는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두 사람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아닌 거야 그냥 인간 김현주와이 성식인 거야 두 사람의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고 가벼운 마음도 아니라고 하니까 나는 더 할 말 없어 내가 지금 했던 말들 잘 지킬 수 있다면 결혼해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 기뻤지만 눈물이났습니다. 제 마음속에도 어머니가 허락을 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죠. 현주 씨는 거의 오열하다시피 울고 있었습니다.

현주씨는 울먹거리며 말했어요 “솔직히 분명히 반대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이 팔을 가지고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장애인 아가씨가 열심히 사는게 기특하다고 말만 하지 가족으로서는 절대 싫다는 반응이 없거든요 그래서 당연히 거절당할 줄 알았어요 어머니는 어느새 현주씨의 옆자리에 앉아 어깨를 다독여 주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도 사람들 시선이 다 바뀐 건 아니지. 얼마나 고생을 했어 인생 사는게 쉽지 않지 정말 고생했어” 

현주씨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위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늘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한 사람인 현주 씨의 마음에도 여러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현주 씨를 집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가니 어머니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먹고 오는게 아니었어? 현주는” 

“너무 울어서 그런지 피곤하다고 하네 밥은 집에서 먹겠다고 하길래 데려다주고 왔어”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습니다. 

“엄마 밥 먹고 술 한잔 할까?”

“무슨 바람이 불어서 술 한잔 하재 술도 약한 애가”

“아니 그냥 뭐 어머니는 피식 웃으시며 아끼는 술을 꺼내 오셨어요” 

“그렇게 마주 앉아 한두 마디를 놔두면서 어머니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습니다”

“고마워 엄마” 

“뭐가 고마워” 

“결혼 허락해줘서” 

“몇 번을 말해 둘이 좋으면 된 거라고 현주도 좋은 애인 것 같더라 잘 모시고 살아” 

“사실 엄청 걱정했거든 엄마가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내가 아니까 나를 남들이랑 비슷하게 키우려고 그렇게 힘들게 살았던 거잖아 그래서 걱정됐어 평범하지 않은 결혼을 한다고 반대할 것 같아서” 

“너는 아까 내가 한 말을 어디로 들었어 장애가 있는 사람이랑 산다고 평범하지 않은 거니” 

"부잣집에 팔려가듯 시집가 저를 낳았지만 바람난 아빠에게 버려진 우리 엄마.." 시간이 흐르고 한쪽팔이 없는 여자와 결혼한다며 여자친구를 엄마께 소개하자 엄마는 울면서 충격적인 '과거'를 고백 하는데...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네가 남들이랑 똑같이 사는게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거야 네가 생각하는 행복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거라면 그리고 그 사람이 현주라면 둘이 사는 걸 응원해 줘야지 엄마는 그걸 만족해” 

어머니의 말은 저에게 아주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솔직히 엄마 같은 사람 둘은 없을 것 같아” 

“둘 정도는 있을 것 같고 흔하진 않겠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 

어머니는 한참 동안 생각하시는 것 같더니 

“알려줄까 응? 가방끈도 짧은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알려주냐고” 

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뭐 자랑이라고 자식한테 이런 얘기를 하나 싶어서 그동안 말 안 했는데 너도 이제 다 컸으니까”

머니는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걸리는 듯 한참 주저하셨습니다 

“나는 단 한 번도네 아버지랑 결혼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어’ 

한 번 더들은 적 없지만 알고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 인간이랑 결혼해서 얻은 건 네가 유일하거든” 

“그렇게 싫은 사람이랑 왜 결혼한 거야’ 

"부잣집에 팔려가듯 시집가 저를 낳았지만 바람난 아빠에게 버려진 우리 엄마.." 시간이 흐르고 한쪽팔이 없는 여자와 결혼한다며 여자친구를 엄마께 소개하자 엄마는 울면서 충격적인 '과거'를 고백 하는데...

“평생 큰소리로 웃지도 못하면서 자랐어 학교 마치고 친구들이랑 놀러 가본 적도 없고 잊고 싶은 옷도 입어본 적 없고 원하는 걸 말해본 적도 없고 그냥 하라는 대로 하면서 살았지 결혼도 마찬가지였어 집에서 정해주는 사람한테 얌전히 시집가야 하는 상황이었지”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어 자식한테 어떻게 그래 나는 자식이 아니라음 그냥 말하고 움직이는 재산 같은 거였지 자식은 내 위아래로 있는 오빠들 밖에 없었고 나를 20살 때까지 잘 입히고 먹여서 성인이 되면 팔아치우려고 한 거야 딸의 시집보내는게 아니라 재산을 처분하는 거였어 내 결혼은” 

이 정도였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처지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어요. 

“그런데 내가 유일하게 원했던게 남자였어 원치 않는 결혼을 했으니까 사랑도 못해봤을 것 같이 엄마도 진짜 가슴에 있는 사랑을 해본 적이 있다” 

이 말을 하는 어머니는 남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덤덤했습니다. 

“아주 우연히 만났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뭔가 이상한 거야 보니까 신발 밑창이 너덜거리더라고 나는 신발이 해지지 않으면 새 신발을 신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밑창이 떨어질 때까지 신을 신고는 했어 익숙한 일이니까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는데 누가 나를 부르더라고 학생 하고 불러서 무슨 일인가 하고 봤는데 웃긴게 날 부른 사람도 학생이더라 옆에 있는 남자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는 나를 학생이라고 부른 거야 정말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 근데 그걸 어떻게 티 내 나는 집에 있는 남자들이랑 학교 선생님 빼고 말을 섞어본 남자가 없었거든 그냥 모른척 지나가려는데 그 남자가 내 앞에 불쑥 나타난 거야 깜짝 놀라서 악 소리를 냈는데 미안하다고 신발 밑창이 떨어졌길래 고쳐주려고 했다더라고 한두번 떨어져 본 것도 아닌데 그날따라 그게 왜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괜찮다고 돌아서려는데 자기가 구두 수성공이라 신발 하나는 무지하게 잘 고친다는 거야 뭐에 홀린 듯이 따라가는데 그 남자가 다리를 절더라구” 

어머니가 만났던 구두 수선공은 장애가 있던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어머니의 첫사랑인게 분명했습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아니었는지 신발은 정말 잘 고치더라. 어떻게 하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때처럼 얘기할 수 있을까 싶어서 일부러 신발을 닳게 하기도 했어. 그런데 잘 안 해지더라.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이었던 거지. 근데 될 사람은 된다고 둘이 만나서 얘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나눠 먹고 그랬어. 그래봤자 얼른 집에 들어가야 해서 몇 시간 되지도 못했지만 처음 만나고 얼마 안 됐을 때만 해도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내가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더라. 그래서 깨달았어 아 내가이 사람을 좋아하고 있구나. 근데 이걸 티를 낼 수가 없었던게 가족들이 내가 시집갈 것을 정하고 있었거든 그걸 아니까 표현할 방법이 없지.” 

“그럼 계속 말도 못한 거야 그 사람은?” 

“불타는 청춘을 누가 막니 그렇게 속앓이하고 있으니까 먼저 얘기하더라 사실 나 좋아한다고 얼굴이 빨개져서 목소리도 떨리고 손도 떨리는데 나도 떨리더라고 그런데 세상에 어떻게 알았는지 가족들이 귀신같이 알아차린 거야”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는데 

“예상대로지 학교도 못 가고 집안에서 나가지도 못했어” 

“학교도 못 갔다고?” 

“설마 내가 똑똑해지라고 학교를 보냈겠니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어디 시집보내도 좋은 데를 보내니까 고등학교까지 보낸 거지 졸업장만 있으면 되니까 학교를 못 가게 해도 됐던 거야” 

“그럼 그 사람이랑은 그렇게 끝난 거야?”

“아니지 가족들이 그 사람한테까지 쫓아가서 행패 부렸어 하자 있는 놈이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 주제를 알고 살라고 나한테 화를 내면서 밖으로 나가길래 설마에서 뛰쳐갔는데 그러고 있더라 정말 그런 말에 입 밖으로 냈다고 믿기지가 않지 

나도 그걸 내 눈으로 보면서 믿기지가 않았어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저러나 싶더라고 그 사람은 뭐가 부끄러운지 고개 푹 숙이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아예 안 본 거야” 

당시에 어머니는 가족들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니 저는 그렇게 끝날 쓸 줄 알았습니다. 

“그러는 가족들 모습을 보니까 미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 나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데 무시하고 밖으로 나갔지 집에 가면 먼지나게 맞을게 분명했는데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그 사람한테 진심으로 사과했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괜찮다고 웃는데 마음이 참 아프더라 그러고는 다시 만나지 말재” 

그 남자의 마음이 어땠는지 알 것만 같아서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근데 진짜 사랑의 눈이 멀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그렇게 순종적인 내가 반항을 하는데 아무도 못 말리더라 진짜 아무도 못 말렸어

음 그건 좀 과장이고 몰래몰래 만났어 그 사람은 찾아오지 말라고 단호하게 얘기하기도 했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었어 내가 싫다는 말은 해도 오지 말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진짜 드라마 같은 말이지 않니

“엄마한테도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주변에서 반대하니까 더 애틋해지는 거 있지 그렇게 한 인연이 지났나 당연히 20살이 되면 가족들이 하라는 대로 시집갈 줄 알았는데 2년 동안 그 사람을 만나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어 스무 살이라면 성인이잖아 그때가 되면 내 생각을 얘기해 볼 수는 있겠다 싶었지 분명히 반대는 하겠지만 그 사람이랑 만나는 거 허락해 달라고 말은 해볼 생각이었어 “

“그렇게 했어?” 

“그렇게 못했지 해가 바뀌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부모님이 나를 동네에서 제일 큰 집으로 데려갔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새 옷이랑 새 신발을 신기고 머리까지 빗어주고”

“뭔가 불안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설마 거기 데려가서는 집주인들을 보면서 굽신굽신 거리는데 아찔하더라 그러면서 그 집 큰아들이 내려오는데 울 것 같았어 내가 학생 때부터 나를 눈여겨봤던 사람이었거든 대학
졸업해서 학교 선생님 준비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집에 나를 시집보낼 생각이었던 거지 그 아들이 나랑 결혼하고 싶다고 했대”

“굳이 왜”

“차근차근하니 말 잘 듣게 생겼다고” 

“그래도 엄마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잖아” 

“그 남자 집사람들은 몰랐어 그리고 알았어도 신경 안 썼을 거야 못 사는 집 여자랑 결혼한 욕심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그 집 사람들이 원하는 거였거든” 

정말 드라마 한편을 보낼 기분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한 사람의 인생에 벌어질 수 있나 신기하면서도 몸살이가 처질 정도였죠. 

“그 집에서 먹은 건 다 토했어 그리고 그날 밤에 그 남자 집 앞으로 도망갔는데 그 남자가 문을 안 열어주더라 설마 찾아가서 말했나봐 적이 큰 집 보이냐고 저기에 시집보낼 거라고 너같이 다리 전은 놈은 꿈에도 못 꿀 것이라고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도 가라고 하더라. 기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구두 수선하는 것 밖에 없고 어딜 가면 다리 저런 놈이랑 손가락질만 받는다고 같이 있으면서 겪어보지 않았냐고.

나는 그 사람이 장애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게 아니었어. 그냥 그 사람이 너무 좋았던 건데 가족들이랑 함께 있으면서 또 경험하지 못했던 행복을 그 사람이랑 있으면서 알았는데 겨우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본인을 깎아내리는 그 사람을 보면서 너무 슬펐고 결국 그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될 내 처지도 너무 불쌍하더라” 

그 뒤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 집의 시집을 갔고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 시달리다가 결국 집을 나오게 되었죠. 

"부잣집에 팔려가듯 시집가 저를 낳았지만 바람난 아빠에게 버려진 우리 엄마.." 시간이 흐르고 한쪽팔이 없는 여자와 결혼한다며 여자친구를 엄마께 소개하자 엄마는 울면서 충격적인 '과거'를 고백 하는데...

“그 사람이 보고 싶지는 않아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궁금해 잘 살고 있으면 좋겠고 그런데 굳이 보고 싶지는 않아 다른 집의 시집가기로 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게 마음을 정리한 거였어 다른 남자한테 시집가서 자식도 낳고 사는게 정해졌는데 미련 가져서 뭐 하니… 그냥 멀리서 행복하길 빌어주는 수밖에 없지. 그리고 그런 생각도 했어 내가 미련을 가지면 그 사람한테 새로운 인연이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그런 믿음.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아. 내가 조금만 더 용기를 냈다면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 있어. 그런데 그 사람한테 갔으면 너를 못 받겠지. 어머니는 장난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그래도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놓치지 마”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마지막 말을 이으셨습니다. 

“너는 현주를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잘해줘 현주한테” 

어머니가 저와 현주의 결혼을 아무렇지 않게 허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머니에게도 같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던 거죠. 그것을 알고 나니 현주와의 결혼을 허락해 준 어머니에게 더욱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저와 현주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는 것또한 진심으로 느끼게 되었죠. 

“고마워요 엄마” 

고맙다는 제 말에는 결혼을 허락해 주어서고맙다는 의미와 지금까지 저를 이렇게 키워준 것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가 담겨 있었습니다. 

 사연을 쓰는 현재 어머니는 가깝게 지내는 분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아이처럼 들뜬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이런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싶더라고요어머니가  행복을 간절히 바랐던만큼 저도 어머니의 행복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부잣집에 팔려가듯 시집가 저를 낳았지만 바람난 아빠에게 버려진 우리 엄마.." 시간이 흐르고 한쪽팔이 없는 여자와 결혼한다며 여자친구를 엄마께 소개하자 엄마는 울면서 충격적인 '과거'를 고백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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