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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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식당을 운영하며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68세 여성입니다. 저에게 찾아온 기적 같은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고자 이렇게 저의 사연을 제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려면 저의 과거 이야기 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요.

저의 남편은 정도 많고 마음 따뜻한 남편이었어요. 남편은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였는데요. 남편이 고기 잡으러 나가면 2일에서 3일 길게는 한 달 동안 집에 못 들어오는 일이 많아서 남편 오는 날엔 두살 아들을 포대에 업고 아침부터 선착장에 가서 오매불망 기다렸어요.

남편은 저의 유일한 가족이자 등불이었습니다. 제가 기댈 수 있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웃을 수 있는 저희 분신 이었으니까요. 섬에 사는게 답답하지 않겠냐지만 저에게는 평화롭고 따뜻한 가장 행복한 공간이었습니다.

고기 잡는 일이 예전처럼 벌이가 좋지 않아 전 새벽부터 갯벌로 나가 바지락을 캐서 생활비에 보탰어요. 추운 겨울에 손이 부르트고 발이 동상에 걸려 힘들어도 아들 생각하며 힘든 줄도 모르고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남편도 아들 얼굴만 보면, 몸 아픈 것도 잊는다며 그렇게 아이를 이뻐라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다섯 번째 생일 날이었어요. 이날은 아침부터 파도가 평소보다 세서 조금 걱정이 되더라고요.

[나] : 여보 오늘 바람도 좀 불고 비도 한두방울씩 오는데 아이 생일이니까 좀 쉬면 안 돼요?
[남편] : 아침에 수협에 전화해서 날씨 확인해 봤는데 오후엔 안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오전에만 조업하고 오늘은 일찍 오려고. 모텔 가서 우리 아들 좋아하는 장난감도 하나 사야지.
[나] : 그래도 전 영 불안하네요. 그냥 당신 오늘은 배 안 탔으면 좋겠는데…
[남편] : 얼른 가야 돼 저기 사람들 기다려.

남편은 걱정하지 말라며 아이와 절 안아주면서 배에 올랐습니다. 그날따라 전 남편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한참을 보며 배웅을 했어요. 남편도 손을 흔들며 환히 웃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전 아들만 바라보며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 터라 돈 되는 일은 다 했지요. 아이 때문에 하루 종일 일하는 직장은 못 다니고 그나마 동네 분들이 일거리를 챙겨줘서 오전엔 그물 손질, 낮에는 팥 볶기, 저녁엔 하우스에서 고추 따며 그렇게 일당을 받으며 생활을 했습니다.

백여가구도 안사는 작은 어촌이라 사실 돈벌이 될 만한 일이 없었어요. 그나마 동네 분들이 제가 일하는 동안에 돌아가면서 아이를 봐줘 정말 감사했죠. 저도 그렇게 일에 몰두하다 보니 2년이란 세월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근데 고민이 하나 생겼죠. 아이가 일곱 살이라 내년에는 학교에 가야 되는데이 섬에는 학교가 없어서 큰 도시로 가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집도 구해야 되고 직장도 구해야 되는데 너무 막막했습니다. 다행히 동네 친한 아주머님이 자기 조카가 서울에서 큰 식당을 하고 있는데 미리 말해 놨으니까 가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30년 동안 살았던 고향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섬에서 배를 3시간 타고 뭍에 도착해서 생전 처음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섬에만 살다가 이런 큰 도시에는 처음 온지라 아들 손 꼭 붙잡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아주머니 조카가 운영하는 해장국집을 찾아갔지요.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시장에 있는 해장국집은 꽤 컸는데요. 홀은 손님으로 꽉 찼더라고요. 24시간 영업하다 보니 직원도 많았고 식당 한 켠에 방 3개가 있는데 그 중 방 한 개를 저희 모자가 기거할 수 있게 사장님이 배려를 해주셨어요. 전 아직 경험이 없어서 우선은 주방 보조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차츰 홀서빙을 하게 되었고 아이와 단둘이 살 단칸방이라도 장만하려면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 해서 다들 꺼리는 새벽 타임을 자진해서 하게 됐어요. 페이를 많이 쳐주거든요. 하루 종일 무거운 거 들고 앉지도 못해 온몸에 파스를 붙일 정도로 몸은 힘들지만 아이만 보면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시 힘을 내곤 했습니다.

아이는 그새 철이 들어서 엄마가 일하느라 같이 놀아주지도 못하고 신경을 못 써주는데도 한번도 보챈 적 없고 어린이집 마치면 식당으로 와서 손님 없는 방에 들어가 혼자 그림 그리고 잠도 자고 혼자서도 잘 지냈어요.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서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식당 일을 하면서 돈도 제법 모아서 우리 두식구 살 전셋집은 구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이도 컸고 공부방이 필요해서 식당 근처에 집을 계약했습니다. 빌라 2층인데 방 두 개의 거실도 넓고 너무 좋더라고요.

사실 너무 싸서 처음엔 집이 아주 오래됐나 싶었는데 집도 깨끗하고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그렇게 며칠 후에 집주인을 만나 잔금을 다 치르고 이사 오기 전에 청소라도 좀 해야겠다 싶어서 이사갈 집에 찾아갔습니다. 집주인은 빌라 4층에 살고 있어서 벨를 눌렀어요 근데 아무도 없는지 인기척이 없더라고요.

그리고서 저는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돈..제 피 같은 돈 어떻게 해요… 전 재산인데…. 말로만 듣던 전세 사기를 당할 줄이야 정말 앞이 캄캄했습니다. 머리가 새하얘지고 아들이 눈앞에 아른거리기만 했습니다. 그 충격이 너무 커서 일하면서 멍하니 있는 일이 많아졌고 일이 손에 잘 잡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큰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뚝배기를 손님상에 놓다가 그만 무릎에 엎어버리고 말았어요. 사장님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뛰어왔고 손님은 심한 화상으로 구급차에 실려갔습니다. 이 일로 사장님은 그 손님에게 배상 소송을 당하고 법원을 들락날락거리며 어마어마한 소송비용을 지불하면서 더 이상 식당을 꾸려가기 힘들어졌습니다.

소문이 나서 손님 발길이 뚝 끊겨 식당 문을 닫아야만 했습니다. 제 실수 하나 때문에 사장님에게 이런 엄청난 피해를 준게 너무 죄송했어요. 하지만 사장님은 저한테 아무 얘기도 안하시며 되려 한 달치 월급을 미리 당겨서 주며 잘 살라고 웃음을 지어 보이시더라구요. 전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요.

전세금으로 모아둔 돈은 다 사기당하는 바람에 제 수중에 있는 돈이라고는 고작 한달치 월급 200만원이 전부였습니다. 일 구하기 전까지의 우선 여관에서 지내야 했어요. 일은 잘 구해지지 않고 돈도 거의 바닥이 났죠. 매일 라면으로 끼니 때우고 아들은 학용품 살 돈이 없어서 달력을 잘라서 노트로 쓰면서도 공부를 곧잘 했습니다.

반 일등은 기본이고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으니까요. 전 우선 닥치는 대로 일을 알아봤고 그나마 일당자리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낮은 일하고 밤엔 유흥가 쪽에서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비 오면 못하고 하는 일에 비해서 돈이 너무 적어서 근근히 끼니 해결할 정도로만 버티며 살았습니다.

조금 모은 돈으로 보증금 없는 단칸방 월세를 구했고 여관이 아닌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했습니다. 어느새 아들은 17살이 되었고 훌륭한 사람인 의사가 되겠다고 합니다. 의대를 목표로 독서실에서 공부만 죽어라고 했지요.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용돈 한번 두둑이 못 주고 아들 좋아하는 햄버거 하나 못사준게 내내 마음이 걸렸는데 오늘 생각지도 못하게 일당을 두둑히 받아서 퇴근하는 길에 햄버거 사서 아들 공부하는 독서실 앞으로 갔어요. 독서실에 전화해서 아들과 통화한 후 길 건너에서 아들을 기다렸어요 바로 아들이 보이더라구요.

아들은 손을 흔들며 제가 있는 쪽으로 횡단보도로 건너오고 있는데 그 순간 갑자기 차 한 대가 전속력으로 달려와 그만 아들을 덮치고 말았습니다 안 돼 제가 달려갔을 때 아들은 힘없이 절 쳐다봤고 전 아들의 손을 꼭 붙잡았습니다. 아들은 남편이 준 열쇠고리를 꾹 쥐며 그렇게 남편 곁으로 떠났습니다.

저처럼 이렇게 박복한 인생이 또 있을까요. 그나마 저의 유일한 살아갈 수 있는 동아줄이 되어준 아들이 지금 제 옆에 없다는 건 제가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자식 먼저 앞세운 애미가 무슨 낯짝으로 밥을 먹고 tv를 보고 잠을 자고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전 그럴 수 없었습니다.

매일 아들의 열쇠고리만 쳐다보며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그리고 물과 음식을 거부한 채 난방도 안 되는 찬방에서 전 가만히 누워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습니다. 욕실 바닥이 얼 정도로 추운 실내에서 전 젖은 옷을 입고 내일 눈이 떠지질 않기를 기다리며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눈을 뜬 곳은 병원 응급실이었어요. 제 앞에 보이는 얼굴은 제가 일했던 해장국집 사장님이었습니다.

[사장님] : 이제 정신이 들어? 나 알아보겠어? 이 사람아 산사람은 살아야지!

나중에들은 얘기로는 호철이 장례식때 얼이 빠진 절 대신에 사장님이 일을 다 처리해 주셨는데 제가 툭하면 쓰러지는 걸 보시고 한약을 지어서 주려고 그날 찾아온 거랍니다.

[여자]: 제가 사장님 불 면목이 없어요..
[사장님]: 맞지. 내가 호철 엄마 생명의 은인이지. 그럼 나한테 은혜갚고 살아! 나 식당 망하고 나도 죽으려고 했어 근데 애들 때문에 안되겠더라고. 그래서 대출 받아서 공사장 한밭집 이번에 하게 됐어 그거 힘드니까 호철 엄마가 나 도와줘. 우리 때 돈 벌어서 나 빚 갚고 호철 엄마 새 인생 사는 거야!

가족보다 더 깊은 사랑을 베풀어 주신 사장님을 위해서 제 모든 걸 바쳐서라도 은혜를 갖자고 다짐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사장님 다시 제기할 수 있게 죽기 살기로 돈만 벌기로요. 아니 죽어라 일만 했습니다. 전화 사장님이나 한밭집 경험은 전무 했지만 해장국집 하던 경험이 있던 터라 금세 자리 잡을 수 있었고 공사업체들마다 맛있기로 소문이 나서 대박이났습니다.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사장님은 빚을 다 갚았을뿐 아니라 식당 두 곳을 인수했어요. 사장님은 그게 다 저 때문이라며 식당 한 곳을 저한테 아주 싸게 임대해줬습니다. 보증금도 시세보다 절반보다 싸고 월세도 거의 안내고 공짜나 다름없었죠.

가게 계약서에 도장 찍던 날 전 너무 감격해서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기분도 좋고 사장님과 가게에서 소주 한잔 했지요. 사장님 이제야 제 목표를 이뤘어요. 제가 왜 친구도 안 만나고 쇼핑도 안 하고 여행도 안 가고 식당 일만 했는지 아세요?

[사장님] : 맞아 난 그게 너무 안타깝더라고 호철 엄마 아직 한창 젊은데 그렇게 돈 모아서 뭐하려고?
[나]: 사장님 제가 자식을 앞세워 보낸 천하의 나쁜 엄마잖아요. 우리 호철이한테 그 먹고 싶다던 햄버거 하나도 못 사주고..죽어도 내가 죽었어야죠. 하루하루 1년 365일 매 순간마다 우리 아들 얼굴이 아른거리는데 어떻게 제가 좋은 옷 사입고 맛있는 걸 사먹고 커피 마시고 그렇게 할 수가 있겠어요. 우리 호철이한테 너무 미안한 거잖아요. 돈 많이 버는 일 밖에 없었어요. 돈 때문에 우리 호철이 고생만 하다가 간 거잖아요.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사장님은 말없이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습니다. 그렇게 작은 백반집에서 시작해 장사가 제법 잘 되어서 28년이 지난 지금은 갈빗집을 운영하고 있어요. 직원도 6명이 놔두고 연일 손님들로 북적이는 그야말로 줄서서 기다리는 대박집이 되었습니다. 저희집 인기 비결은 머니머니 해도 좋은 품질의 고기에요.

제가 워낙 깐깐해서 고기 품질이 조금만 나빠도 바로 거래를 끊어서 갈아치운 곳이 수두룩합니다. 이번에 새로 바꾼 업체는 어떨지 전 아침부터 긴장하면서 기다렸어요. 저만치서 탑차가 들어오고 기사가 내리더라고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드는데 순간 전 너무 놀라서 몸이 휘청거렸습니다.

[청년]: 사장님 괜찮으세요? 어디 불편하세요?
[나]: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청년]: 어유 우리 사장님 고깃값 좀 깎으려고 저 처음 봤는데도 친한 척하는 거죠? 알았어요. 나이는 45살이고 김동현입니다.
[나]: 45살이라고요? 이런일이…
[청년]: 사장님 왜 그러세요..?
[나]: 우리 아들이 살았더라면..우리 아들과 너무 닮아서 저기서 걸어오는데 너무 닮아서 놀랬어..

내 사정을들은 김기사는 자기를 아들처럼 생각하라며 특유의 명랑함으로 저한테 살갑게 대해줬습니다. 전 매일 오전 9시면 오는 김기사를 기다리는게 낙이 되었죠. 사는 재미를 잊은지 오래였는데 마치 아들을 기다리는 듯이 설레고 늦으면 걱정되고 그렇게 제 인생에도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제가 너무 그런 티를 내면 김기사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그런 내색을 안 하고 겉으로는 사무적으로 대했지요. 하지만 어떻게든 챙겨주고 싶어서 괜히 말하면 부담스러워할까 봐 고기 다 내리고 나오면 홀탁자에 방금 끓인 갈비탕 한 그릇을 매일 탁자 위에 차려 놓았습니다.

그러면 김기사도 내 마음을 알고 거절 안 하고 바닥까지 싹싹 긁으며 잘 먹더라고요. 전 먼 발치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김기사가 간 후에 식탁을 치우려고 보니 비닐봉지에 슬리퍼가 있더라고요. 제가 홀에서 신는 슬리퍼가 낡아서 옆이 헤진 걸 봤나 봐요. 이 슬리퍼도 5년을 신었나봐요. 제가 원체 돈을 안 쓰는 성격이라 속옷도 바느질해서 기워서 입었거든요. 너무 궁상 맞죠.

어떤 명품 신발보다 저에게 너무나 값진 선물이었어요. 또 몇 달이 지난 추운 겨울날 전 여느 때처럼 가게 문을 열려다가 그만 빙판에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허리가 충격을 받았는지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어요. 직원들 출근 전이라 거리엔 아무도 없고 전 앉아서 움쩍 달석도 못하고 있었어요.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매서운 바람에 얼굴과 온몸은 점점 차가워지고 정말 이대로 있다간 큰일 나겠다 싶었습니다 점점 눈이 감기고 정신이 몽롱해질쯤 누군가 다급하게 절 일으켜 세웠어요

[김기사]: 사장님 사장님 정신 차리세요!
[나]: 김기사 나 넘어져서 허리가 잘못된 것 같아.. 일어서질 못하겠어..
[김기사]: 조심 좀 하시지. 내가 갑자기 이 골목으로 들어오고 싶다더니. 나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요! 사장님 빨리 병원 가야 되니까 제 등에 업히세요.

그렇게 김기사는 절 들쳤고 트럭을 타고 30분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서둘러 차를 몰았어요. 허리는 아파 고통스러웠지만 아들같이 든든한 김기사를 보고 있노라니 마냥 좋았습니다. 외로움도 무뎌질만큼 혼자가 익숙해진 내게 우리 아들이 외롭지 말라고 김기사를 보낸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김기사 덕분에 전 치료 잘 받아 얼마 후 몸도 다 회복되었어요.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 김기사는 허리 괜찮나 요리할 때 무거운 것 들지마라, 계단 내려갈 때 밑에 보고 내려가라, 완전히 잔소리쟁이가 다 됐어요. 저는 내가 애냐고 투덜대면서도 김기사의 잔소리가 왜 그리 듣기 좋을까요. 나한테도 잔소리 해주는 사람이 생겼네요. 나 이제 혼자가 아니구나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근데 김기사를 보면 옷이 다림질을 안해 구겨져 있고 며칠 동안 같은 바지를 입고 있기에 슬쩍 물어봤죠.

결혼 안했냐고. 그랬더니 아내와는 얼마 전부터 따로 떨어져 살고 있고 고등학생인 아들과 둘이 산다고 하더라구요. 일이 워낙 늦게 끝나다 보니 아이 혼자 라면 끓여 먹는 날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남자 둘이 살다보니 안 봐도 살림살이가 눈에 훤합니다. 그날 밤 식당 영업이 끝난 늦은 시간에 부엌에서 콩자반, 진미채 볶음, 장조림, 멸치볶음 등등 대여섯 가지 밑반찬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다음날 김기사가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트럭에 몰래 넣었어요. 먼 발찌에서 보니 김기사가 반찬통을 한참을 보더니 눈물을 훔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는 제 마음이 짠해서 저도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그리고 김기사가 잘 먹었다고 하면서 빈 반찬 그릇을 줄 때는 그 안에 항상 군것질거리가 들어있었어요.

어떤 날은 제가 좋아하는 단팥빵, 어떤 날은 약과, 알사탕..메뉴도 시시각각 바뀌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변함없이 9시가 되고 저 멀리서 탑차가 옵니다. 그런데 김기사가 아니었어요 김기사는 어디 갔냐고 물었더니 몸이 아프답니다.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걸었는데 꺼져 있더라고요.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심각한 건가 응급실 간 건가 별의 별 생각을 다하며 식당 일도 손에 안잡히고 미치겠더라고요. 3일 뒤 김기사가 초췌한 얼굴로 왔어요. 전 얼른 고기 죽을 끓여 한술이라도 뜨라고 했어요. 천천히 죽을 먹는 김기사의 표정이 너무 어둡더라고요.

[나]: 김기사 무슨 일 있어? 얼굴이 너무 안 좋네..
[김기사]: 이런 말까지 사장님께 안 하려고 했는데 그동안 저한테 너무 잘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저한테는 어머니 같았거든요. 저 다른 일 알아보려고요. 배송일은 페이가 작아서 공사현장 일을 좀 해보려고요.
[나]: 갑자기 돈 들어갈 일이라도 생긴거야? 사실 저 애들 엄마랑 이혼 준비 중이었거든요. 와이프가 바람을 폈는데 홧김에 그놈을 때렸거든요. 바람은 그놈이 피워놓고 날 폭행죄로 콩밥 먹이겠다고 길길이 뛰더니 결국 3천만원으로 합의 보기로 했거든요. 전 감옥 가는거 겁 안 나지만 혼자남을 아들을 생각해서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어떻게 해서든 돈 마련해 봐야죠…
[여자]: 그 돈이라면 내가 융통해 줄 수 있어. 그 돈 때문에 이 좋은 직장 잃으면 안되지.
[김기사]: 안돼요 사장님한테 제가 도움 받은게 얼마나 많은데 저도 염치가 있지… 사장님 도움 없이 제 힘으로 해결하고 싶어요. 정말 갈아 먹어도 시원찮을 그 더러운 놈한테 사장님 돈 줄 수 없어요.

너무 완강하길래 저도 더 이상 말을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김 기사가 아니라 다른 젊은 청년이 왔어요. 곧바로 김기사한테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안 받네요. 김기사가 사표 냈냐고 청년한테 물어봤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무슨 일일까 순간 제 머리를 스치고 가는 불길한 생각 전 정신없이 김 기사가 근무하는 회사에 뛰어갔고 지금 김기사가 연락이 안 되니 집 주소 좀 알려달라고 통 사정을 했지요. 그런데 이 사장이 그건 개인 프라이버시라 절대 알려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터벅터벅 회사를 나오는데 문득 생각나는게 있었어요. 예전에 빙판에서 미끄러졌을 때 김기사 집도 우리 가게 근처라면서 특이하게도 집 앞에 500년 넘은 은행나무가 있고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물게 삐그덕 소리 나는 오동나무 대문집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김기사 집을 찾아갔어요.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은행나무가 눈에 띄고 그 앞에 나무 대문집이 보이더라고요. 벨을 누르니 누구세요하며 누군가 나와 현관문을 열었는데 저도 모르게 아들 이름이 불쑥 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문을 연이 아이 얼굴이 제 죽은 아들과 똑 닮았기 때문이에요. “아들 누가 왔어?” 뒤에서 김기사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아이 이름은 김준영으로 17살, 고1이라고 하더라구요 .아들이 하늘나라로 간게 17살. 마치 3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절 보며 환이 웃는 아이의 모습이 참 밝아서 좋더라고요. 김기사는 상간남과 또 싸워서 허리가 삐끗해서 며칠 동안 누워 있었다는 겁니다.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전 다음날 또 찾아갔어요. 사실 그 아이 얼굴이 아른거려서 보고 싶어서 갔어요. 갈비찜과 반찬들을 바리바리 싸왔죠. 할머니하며 절 잘 따르며 살갑게구는 아이가 너무 이뻤어요. 맨손으로 갈비를 뜯으며 맛있다고 난리에요. 김기사는 그런 아들 모습을 짠하게 쳐다보면서 말을 꺼내더라고요.

[김기사]: 저 이집 전세보증금 빼서 와이프 위자료 주고 그놈 합의금도 해결하려고요. 그리고 전 지방에서 숙식하며 공사장에서 2년간 일해서 돈 악착같이 모아서 다시 집 구할 돈 벌려구요. 그러다보니 아들 학교 졸업까지는 여기서 혼자 지내야 돼서 작은 원룸 월세라도 얻어줘야 할 것 같아요.
[나]: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어차피 나 혼자 사니까 2년간 우리 집에서 내가 이 아이 돌봐주면 좋을 것 같은데 영 미안하면 생활비로 한 달에 20만원만 받을게.

김기사는 신세 질 수 없다며 완강히 거절하다가 결국 감사하다며 저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그렇게 며칠 후 김기사는 아들과 제 집에 와서 아들 짐이든 캐리어 두 개를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김기사]: 사장님 우리 준영이 잘 부탁드려요. 애가 원래 순둥이고 착한 아이인데 요 며칠새 저랑 말 한마디도 안해요. 많이 화났나 봐요. 자기 버리고 자기와 상의도 없이 잘 모르는 할머니 집에 그냥 떠맡긴다면서 자기가 그렇게 짐덩어리냐고 밉냐고 어젯밤에도 울면서 저한테 고래고래 소리 지르더라고요. 다 제 탓이죠.
[나]: 지금 한창 사춘기라 민감할때지. 내가 많이 노력할게. 걱정 말고 몸조심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 아들 생각하면서 건강만 챙겨.
[김기사]: 네 사장님. 정말 이 은혜는 꼭 갚을게요.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저 뒤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아이는 이쪽으로는 눈길도 안 줍니다. 김기사는 트럭에 오르며 아들에게 아빠 간다고 말해도 쳐다도 안 봅니다. 그렇게 트럭은 떠나고 아이와 저 둘만 남았습니다. 굳건히 닫힌 저 아이의 마음을 열 수 있을지 저도 사실 걱정이 되었어요.

처음엔 그렇게 살갑던 아이가 무슨 마음인지 우리 집에 들어와서는 청개구리처럼 못되게 구네요. 밥상 가득 차려 놓으면 혼자서 라면 끓여 먹고, 빨래 지금 하니까 빨랫감 달라고 하면 없다고 했다가 빨래 널고 나면 세탁기에 휙 속옷을 던져요. 야단치고 싶었지만 저 아이 마음이 오죽할까 싶어서 실컷 나한테 화풀이하라고 전 그럴 때마다 아무 말 안 했어요.

밥을 안 먹으니 전 어떻게든 밥 먹이려고 맛있는 요리를 해서 부탁까지 했는데 전혀 먹히지 않더라고요. 삼겹살 구워서 냄새로 유혹해도 밥은 입에도 안 되는 거예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이제 작전을 바꿨지요. 그 다음날부터는 밥상은 제 것만 차리고 아이 앞에서 보란 듯이 엄청 맛있게 먹었어요. 아이는 배가 고팠던지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도 기싸움을 하느라 참더라구요.

[나]: 와 이 갈비가 꿀이네 꿀이야. 준영이가 갈비찜 킬러인데 안 먹는다더니 어쩔 수 없지. 할머니가 다 먹어야지~

제가 먹는 걸 힐끔힐끔 보더니 공부하는 척 하더라고요. 제가 밥 다 먹고 밥상 치우려고 하니까 준영이가 다급하게 와서 “나 밥 먹을래요.”하고는 허겁지겁 밥을 먹는 아이를 보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고 아이도 같이 웃었어요.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있었어요.

며칠 후 빨래를 하려고 준영이 방에서 웃으며 양말을 가져오는데 아이 청바지에 구멍이 나 있더라고요. 요즘에 누가 구멍난 바지를 입고 다니나요. 마음이 너무 안 좋더라고요. 전 돋보기를 쓰고 손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준영이가 놀라면서 말했어요.

[준영]: 할머니 지금 뭐하는 거예요!
[나]: 아 참 이렇게 바지가 헤졌으면 할미한테 말해야지. 네가 얼마나 할미가 어려웠으면 이런 찢어진 옷을 입고 다니고..네 아빠가 알면 얼마나 할미 원망하겠냐!

전 마음이 너무 아파서 울컥했고 아이는 당황했는지 절 멀뚱이 보다가 깔깔대며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어요.

[준영]: 할머니 그 청바지 원래 그 디자인으로 나온 거예요 구멍난게 아니고. 근데 할머니가 꿰매준 것도 나쁘지 않네? 오 할매스타일~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준영이는 우는 내 모습이 웃긴지 계속 웃었고 준영이 말을 듣고 보니 저도 제 행동이 황당하고 눈물까지 뚝뚝 흘려서 멋쩍었지요. 헛기침하면서 같이 웃음이 터졌어요. 그렇게 아이는 제게 마음을 열었고 처음 본 그날처럼 밝은 원래 준영이로 돌아왔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주말에 김기사가 찾아왔어요. 저와 준영이한테 할 말이 있다는 겁니다.

공사장에서 일하면서 한 여자를 알게 되었고 결혼을 결심했다는군요. 우선 공사 마무리할 동안은 거기서 같이 살다가 서울로 오면 준영이와 같이 살림을 합치자고 말입니다. 갑자기 재혼이라니 저도 황당한데 한마디 말도 없이 재혼한다고 폭탄 선언을 하니 준영이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습니다 울면서 밖으로 뛰어나가더라구요.

너무 늦은 밤이라 저는 걱정이 돼서 같이 나갔어요. 벤치에 앉아 우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찢어지더라고요. 제가 말없이 어깨를 토닥거려주니 속마음을 얘기하더라구요.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준영]: 저 이제 어떡해요. 엄마도 바람나서 나가고 이제 아빠도 재혼한다고 하고..그러면 나 같은 건 방해만 되는 찬밥이 되는 거잖아! 아빠는 내가 싫은가 봐. 아빠 재혼해도 되냐고 최소한 물어봐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나]: 아니야 아니야! 무슨 그런 소리를 해! 아빠가 할미한테 전화 얼마나 자주 하는데. 너 잘 있냐고 오늘 밥은 잘 먹었는지 꼭 물어봐. 얼마나 널 끔찍이 생각하는데!

어떻게 해야 이 아이의 상처를 낫게 해줄 수 있을까.요 그 이후로 아이는 절 더 많이 의지하는게 보였어요. 제가 허리가 안 좋아서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돼서 이날도 보통날처럼 막 현관문을 나오는데 준영이가 따라 나오더라고요.

[준영]: 할머니 이제 병원 갈 때 나랑 같이가. 이렇게 든든한 흑기사 두고 뭐해!

사실 요즘엔 부쩍 허리가 안 좋아서 걸을 때도 구부정하고 계단 내려가는 것도 힘들었거든요. 아이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오늘은 절 부축하면서 천천히 제 보폭에 맞춰서 걸으며 제 손을 꼭 붙잡고 놓질 않는거예요. 이 따뜻한 손에 온기를 느끼며 이 아이가 없으면 안 되겠다 싶은 어떤 끓어오르는 묵직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준영]: 할머니 아프지 마. 내 옆에 남은 사람 할머니 밖에 없어.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울타리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2년 후 공사일이 끝나고 김기사는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 사이에 아이도 생기고 돈도 많이 모았지요. 고기며 과일을 한가득 사서 김기사가 저희 집에 찾아왔어요.

[김기사]: 사장님 그동안 우리 준영이 잘 돌봐주셔서 제가 이렇게 말로 표현하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너무 감사드립니다.
[나]: 아니야 내 밥 먹는 거에 그냥 숟가락 하나 얹은 것 뿐인데 뭐. 애기 엄마랑 같이 살 집은 구했어?
[김기사]: 네 그 사이에 직장도 구했어요. 일하던 공사현장 감독님이 절 잘 봐주셔서 아시는 분한테 추천해줘서 서울에서 현장 감동 일을 하게 됐어요.
[나]: 아유 잘됐네 잘 됐어. 아유 근데 요즘 전세가 많이 올려서 집은 구했어?
[김기사]: 다행히 이 근처에 방 두 개짜리 빌라인데 18평인데도 집이 꽤 넓게 나오고 가격도 저렴해서 계약을 했어요. 사장님 자주 뵈려고 일부러 이 근처로 구했어요.그래서 말인데요. 이제 준영이 데려가려고요.
[나]: 아 그래? 아니 이렇게 갑자기? 어떡하지 조금만 기다려 봐. 준영이 좋아하는 것 좀 해줘야겠다.

전 갑자기 마음이 허해져서 허둥지둥대며 부엌으로 자리를 피했어요. 눈물이 흐르는 걸 보여줄 순 없었어요. 자기 아들 데려가는게 당연한 건데 생판남인 내가 울 자격도 없는 거잖아요. 제가 요리를 하는 동안 김기사는 준영이에게 말을 꺼내더라고요.

[김기사]: 준영아 뭐 해 얼른 짐 싸.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준영이는 자기 방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만 보면서 아빠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거예요. 아예 대꾸도 안 하네요.

[김기사]: 야 김준영 아빠가 말하는데 대답도 안 하고 지금 뭐 하는 거야!

김기사는 언성이 높아지면서 아이를 다그칩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 같아서 제가 말을 꺼냈어요.

[나]: 준영아 김치냉장고에서 김치 좀 꺼내 줄래?
[준영]: 네 할머니. 내가 좋아하는 파김치 꺼내면 되죠?

제 말에는 살갑게 대답을 곧잘 하면서 평소처럼 대하더군요. 아빠 말에는 콧방귀도 안끼더니 제가 요리하는 동안 준영이는 옆에서 보조 역할을 톡톡히 했어요. 양념들 하나하나 필요하다면 다 갖다주고 제가 간 봐달라고 하니까 그렇게 저와 준영이가 평소처럼 농담하고 웃고 그러는 걸 보는 김기사 표정에 영 안 좋아졌습니다. 모자지간처럼 다정한 저희한테 살짝 질투가 난 것 같더라고요.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저희 사이에 끼어들어서 말도 건내고 요리도 도와주려고 하는데 준영이가 매몰차게 밀어내더라고요. 어느새 요리가 다 되어 우리 세 사람은 식탁에 앉았어요. 제가 막 수저를 드니까 준영이가 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제 밥그릇에 놓아주더라구요. 그러고 상추쌈을 싸서 제 입에 넣어주는 거예요. 아빠한테는 전혀 말도 안 건내면서 저만 챙기는게 제가 무안할 정도였어요.

[김기사]: 준영아 많이 먹어 이게 오늘 마지막 식사니까.
[준영]: 아니 이건 아빠하고 먹는 마지막 밥이야
[김기사]: 뭐? 야 김준영 그래서 아빠와 안 갈거라고?!
[준영]: 맞아 여기가 내 집이야. 내 마음 알아주는 건 할머니 밖에 없으니까! 아빠도 엄마도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잖아. 그냥 자기들 인생에 방해꾼만 되니까 나 버린 거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아빠 혼자 결정해서 재혼하고 나보고 그 여자한테 엄마라고 부르라고 하고. 또 이제는 아무런 상의도 없이 집에 가자고 짐 싸라고 하는데 내가 네 알았습니다 그렇게 갈 줄 알았어? 나도 감정이 있다고 적어도 날 필요로 하고 날 아껴주는 사람한테 마음이 또 가는 거라고. 할머니 돋보기 없으면 글씨 잘 안 보이니까 세금 고지서 나오면 내가 읽어줘야 돼. 전구도 갈아줘야 되고. 할머니 나 없으면 안돼 내가 할머니한테 필요한 존재라는게 날 너무 행복하게 해. 아빠는 나 필요 없잖아? 아줌마도 있고 아이도 있고 나 없어도 잘 살거잖아!
[김기사]: 뭐야 이 자식이 나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그러면서 아이 뺨을 때렸습니다. 전 깜짝 놀라서 김기사한테 소리를 질렀어요.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나]: 아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왜때려! 우리 준영이를 한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러면  돼 너 준영이한테 관심은 있어? 준영이는 축구를 좋아해서 대학도 체대에 가고 싶어하고 앞으로 축구 선수가 되는게 꿈이야. 준영이는 멸치볶음을 제일 좋아하는데 꼭 꽈리고추를 넣어야 먹어. 이런 거는 모르잖아? 준영이한테 물어본 적도 없지? 그게 아빠냐고!
[김기사]: 준영아 아빠가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김기사는 우는 준영이에게 무릎을 꿇으며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지만 준영이는 아빠 손을 뿌리쳤어요.
[준영]: 저한테는 할머니가 엄마고 아빠니까 저한테 아빠 노릇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가세요. 나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까지 절대 이 집 안나갈 거니까!

아빠를 따라가지 않고 제 옆에 영원히 남는다는 아이의 말에 전 가슴이 북받쳤어요. 그렇게 김기사는 혼자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전 현관까지 배웅을 해주며 김기사를 다독거렸어요.

[나]: 걱정 하지마. 준영이 말은 저렇게 모질게 해도 얼마나 아빠 보고싶어 했는데. 아빠 어디 다친데 없냐고 나한테 맨날 확인하고 아빠 닭볶음탕 좋아한다고 그거 만들어서 택배로 보내주면 안되냐고 해서 저번 날 닭볶음탕 보낸거야. 그거 몰랐지?
[김기사]: 그 닭볶음탕 그걸 준영이가 나 먹으라고 보낸 거라구요? 전 까맣게 몰랐어요. 준영이가 절 한없이 미워만 하는 줄 알았죠..이런 아빠가 뭐가 좋다고…
[나]: 원래 아들은 다 그래. 엄마가 아빠 자리를 대신해 줄 수 없더라고. 우리 아들도 그랬어. 내가 아무리 잘해주고 노력해도 100%는 안되더라고. 죽은 아빠가 아들한테 남긴 마지막 선물인 열쇠고리를 분신처럼 맨날 들고 다니며 좋아했거든. 나중에 알았는데 아들이 사고 당하던 날 횡단보도 건너면서 주머니에 있던 열쇠고리가 떨어져서 그거 줍느라고 사고를 당한거라 하더라고. 그것만 아니었으면 우리 아들 살 수 있었는데…자기 목숨과도 같이 소중했던 거지. 준영이도 똑같다. 천천히 준영이한테 마음을 열어봐 너무 급하게 다가가려고 하지 말고.
[김기사]: 네 사장님 제가 너무 제 생각만 했어요. 준영이가 얼마나 힘들지 그런 건 전혀 생각을 못했어요. 사실 저 아까 준영이가 사장님과 같이 있는 모습이 너무 다정해서 마치 아들을 뺏긴 것 같아 좀 질투도 나고 심통이 났었나봐요. 정말 저 못났죠.
[나]: 못났다 준영이보다 어리네. 준영이 내 아들처럼 손자처럼 잘 돌봐줄테니까 걱정 말고.
[김기사]: 네 집도 이 근처고 사장님한테 맡기니 저도 마음 푹 놓이고 감사하죠. 아니..정말 염치없고 죄송해요.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정말 아이와 저 가족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전 준영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갔어요.

[준영]: 할머니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나]: 준영이한테 꼭 보여줄 사람들이 있어서…

고향을 다시는 찾지 않겠노라고 도망치듯 떠난지 근 40년 만이네요. 유난히 파랬던 하늘도 그대로고 배를 따라 날아오르는 갈매기도 여전하네요. 준영이는 바다를 보면서 야후 함성을 지르며 좋아하더라고요. 태어나서 배를 처음 타본다 하면서요.

햇볕에 환히 웃는 아이의 옆모습을 보니 길다란 속성 커플이며 얇은 입술이 마치 아들이서 있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한참 후에 배는 섬에 다다랐어요. 항구의 내려 걷는데 저만치서 누군가 뛰어오시더라고요.

40년 전에 서울 조카네 식당을 소개시켜준 그 아주머니세요. 아주머니가 서울 조카네 식당에 한번씩 올 때마다 간간히 연락하며 지냈거든요. 물론 제 아들도 몇 번 봤고 용돈도 줬거든요. 그런데 준영이를 한참을 쳐다보면서 깜짝 놀랐더군요.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아주머니]: 호철이인 줄 알고 놀랬네. 진짜 많이 닮았네 누구야?
[나]: 그렇죠 정말 많이 닮았죠? 제 아는 동생 아들인데 이제 제 아들 됐어요. 준영아 인사해.

준영이가 인사하자 착하고 이쁘다면서 아주머니가 용돈을 주시네요. 그렇게 걸어서 도착한 것은 남편이 묻혀 있는 묘소예요. 사실 전 해마다 남편 제삿날이면 이곳을 찾았어요. 이 고향은 저에게 가장 악몽 같은 곳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저와 남편 그리고 우리 아들까지 세 식구가 가장 행복했던 추억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남편 묘소 옆에는 아들도 같이 묻었어요.

[나]: 준영아 여기 내 남편과 우리 아들이야 인사해.
[준영]: 아들요? 할머니 아들 죽었어요?

준영이한테 제 아들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거든요.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나]: 응. 우리 아들이 딱 준영이 또래일 때 17살에 하늘나라로 떠났어. 준영이처럼 착하고 밝고 엄마를 끔찍이 생각해 주던 아이였어.
[준영]: 예전에 아빠가 저한테 그런 말 한적이 있었거든요. 잘 아는 사장님이 계신데 자기 죽은 아들과 아빠가 너무 닮아서 아들처럼 생각하고 잘해주신다고요. 할머니 아들이 우리 아빠와 닮아서 더 마음이 가신 거네요.
[나]: 맞아 그렇지. 근데 그날 널 처음 봤을 때 정말 깜짝 놀랐던 거야 뭔가 운명이랄까? 너를 보는데 숨이 멎는 줄 알았어 우리 아들과 닮은 건 아빠가 아닌 바로 너였던 거야.

그러면서 전 항상 제 지갑에 넣고 다니는 아들 사진을 꺼내서 보여줬어요. 아들 학생증 만든다고 찍은 사진을 하나 달라고 해서 갖고 있는게 유일한 아들 사진이거든요. 사는게 바빠서 아들과 같이 사진 찍을 여유 없이 살았던게 얼마나 땅을 치며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아들 사진을 보던 준영이가 깜짝 놀라면서 말했어요.

[준영]: 이 사람이 할머니 아들이에요? 정말 난 줄 알았어요. 교복 입은게 저랑 똑같아요. 머리 스타일도 어쩜 이렇게 똑같지..할머니 저 보면서 아들 생각 정말 많이 했겠구나..난 그런 줄도 모르고 처음에 와서 할머니 속 엄청 속 썩이고 힘들게 했던 것 정말 죄송해요.
[나]: 괜찮아 우리 아들도 화날 때는 밥도 안 먹고 그랬어. 아유 울긴 왜 울어 사내놈이 마음이 여려가지고..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전 아들의 마지막 유품인 열쇠고리를 준영이한테 줬어요.

[나]: 이 열쇠고리가 사연이 좀 많아. 남편이 우리 아들 다섯 살 생일날에 주려고 직접 나무깎아 만든거야. 그 안에 우리 세식구 사진 있지? 유일한 가족 사진이야. 생일날에 남편이 배사고로 우리 곁을 떠났거든. 그래서 그 열쇠를 아들은 아빠 얼굴은 모르지만 아빠의 생일 선물을 맨날 가지고 다니며 보물처럼 소중히 여겼지. 이제 준영이가 우리 아들 해주면 안 되겠니?
[준영]: 이 소중한 걸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그럼 당연히 제가 아들 해야죠! 할머니 아니다 이제부터는 엄마라고 불러야겠네.

엄마 소리를 듣는 순간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어요. 얼마만에 듣는 엄마 소리인지 그 감정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벅찼습니다.

[나]: 그래 준영아 내가 네 엄마야 고마워 엄마라고 불러줘서…

그렇게 전 준영이를 안아줬고 준영이도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울었습니다. 가족이 된 소중한 날 이번에는 준영이가 제 손을 끌고 어디론가 데려가더라고요. 따라 들어간 곳은 사진관이었어요.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여자"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겠다는 의지로 장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만난 아들과 똑 닮은 남자아이의 믿을수 없는 '정체'에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나]: 와 이 사진관이 아직도 있네? 남편과 결혼 사진 찍었던 곳인데? 준영아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준영]: 하여튼 우리 엄마 구식이라니까? 요즘에 핸드폰으로 안되는게 어디 있어. 이 핸드폰이 찾아줬지. 엄마 우리 사진 찍자! 엄마 아들하고 같이 사진 못찍어서 한이 됐다며. 이젠 아들얼굴 평생 닳고 닳도록 보라고. 내가 더 어른이 되어 얼굴이 변하기 전에 사진 찍어서 평생 간직하라고. 엄마 아들 나이와 내가 비슷하다며.

어쩜 이렇게 기특한 생각을 했을까요. 잘웃지 않던 준영이가 웃겨져서 환하게 함박웃음 짓는 얼굴로 사진이 나왔어요. 사진 속에 행복하게 환히 웃는 제 모습이 정말 낯설었어요. 그 사진을 준영이는 열쇠고리 안에 꾹꾹 구겨서 넣었어요. 저에게 새 아들이 생긴 이날을 참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신기했던 건 죽은 아들이 제일 좋아했던게 우렁이 넣은 된장찌개인데 준영이도 우렁된장국을 유독 좋아한다는 거예요. 매일 밥상에선 된장찌개가 빠지지 않고 오늘 점심도 우리 아들과 된장찌개를 먹었답니다.

전 하루하루가 요즘 행복해서 때로는 눈물이 날 때도 있어요. 제겐 너무 특별한 아들이자 가장 사랑하는 가족인거죠. 세상엔 정말 기적이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