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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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하루하루가 어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육아에 정신이 없는 세쌍둥이의 엄마입니다. 또한 카페 사장이기도 하고요. 원래는 가게 일이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데 아이들을 낳고부터는 가게에 매니저를 두고 대부분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어요.

애들을 키우느라 제 옷은 매일 너저분하고 머리는 갈수록 산발이 되어 귀신같지만 그만큼 매일 눈부시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그저 기쁘기만 합니다. 잠도 못 자고 매일이 피로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빵긋빵긋 웃는 모습을 볼 때면 모든 걸 보상받는 기분이 들거든요. 사실 아이들이 주는 행복은 제 과거 상처까지도 치유가 됩니다.

한동안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도 지우지 못했던 큰 상처가 있는데요. 아이들이 조금씩 그 일들을 희미하게 잊게끔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쏟아내 버리고 제 마음속에서도 남김없이 제대로 지워보려는 마음으로 이렇게 사연을 쓰게 되었어요.

저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가정 환경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왔어요. 어렸을 땐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요. 나이 먹으면서 이런저런 친구들과 사람들을 만나보니 행복한 유년 시절은 정말 그 어떤 것보다 큰 행운이자 자산 이더라고요. 평생 동안 부모님이 제게 원하시는 건 딱 하나였어요.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만나 하고 싶은 일 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거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간단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가장 어렵기도 한 부분이죠. 저희 부모님처럼 천생연분을 찾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울 줄은 몰랐거든요. 

"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제 나이 20대 후반에 처음으로 진지한 연애를 하게 되었고 고심 끝에 그 사람을 부모님께 소개해 드린 날이 있었는데요. 부모님은 식사자리 내내 온화하게 그이를 대해주셨지만 가족끼리 남은 밤에는 이런 말씀을 꺼내셨죠. 

[엄마]: 엄마가 너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아무 편견 없이 아무 터치 없이 응원만 했던 거 너 기억하지?
[나]: 응 당연히 기억하지. 자영업이 얼마나 힘든지 알면서도 아무 말 없이 응원만 해줬잖아. 
[엄마]: 그래 네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이라면 그 어떤 일이든 괜찮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말이다. 못난 어미로서 이번 한 번만 반대하고 싶구나. 평생을 함께하는 사람은 정말 열 번 백번 고심하고 결정해야 되는 거야. 
[나]: 엄마 혹시 그 사람 집안이 별로라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이혼 가정이라서? 그거 다 편견이야. 엄마 나 진지하게 이 사람 만나고 있어. 그래서 처음으로 엄마한테 소개시킨거고
[엄마]: 아니라고는 말못하겠네. 엄마 아빠 편견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어.
[나]: 엄마 아빠 내가 내 가게에 어떻게 일으키는지 다 봤지? 난 내 선택 무조건 믿어. 이번에도 내 선택이 맞을 거야. 그러니까 제발 반대는 안했으면 좋겠어.

몇 번의 만류해도 제가 끄떡없자 엄마는 한숨을 쉬면서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먼저 들어가셨어요. 저는 처음 보는 엄마의 냉담한 모습에 눈시울이 불거졌고 그런 저를 보며 아빠가 말씀하셨죠.

[아빠]: 무조건 안된다고만 하는 건 아니야. 그냥 조금 더 만나보고 결혼을 결정하는 건 어떻겠니? 너네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연애를 좀 더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니?
[나]: 우리도 우리가 생각한 인생 계획이라는게 있는데 부모님 말씀 듣고 그 결혼을 미룬다는 것 자체가 반대랑 다를게 뭐야! 내년쯤에는 아이도 갖고 싶고 그 후년에는 둘째도 갖고 싶은데 이런 식이면 혼전 임신할지도 몰라!

부모님이 자식에게 듣는 이야기 중 아마 가장 듣기 힘든 이야기가 혼전 임신 문제일 거예요. 그걸 너무 잘 알면서도 저는 굳이 혼전 임신이란 단어를 입에 올렸죠. 부모를 협박한거나 다름없네요. 하지만 그만큼 저는 이 사람이 절실했어요.

제가 살면서 연애를 안 해본 것도 아니었고 자영업 특성상 정말 많은 사람들과 부딪쳐왔는데 이런 사람은 저한테 처음이었거든요. 매사에 밝고 맑고 순하고 선한 남자요.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집안의 걱정을 다 뿌리친 채 이 사람과의 결혼을 밀어붙였어요.

예비 시어머니를 처음 뵙고 돌아온 날에는 역시나 부모님의 걱정이 편견에 불과했다는 걸 더욱 느꼈죠. 남편의 성격이 모두 시어머니 성품을 닮아서 그런 거구나라고 느낄 정도로 선하시고 차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좋았네요. 특히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너무 많이 칭찬해 주시고 인정해 주시는 점도 감사했죠.

"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예비 시어머니]: 어머 그 은행 맞은편에 있는 큰 카페가 아가씨 카페였어요? 어린 나이에 부모님 도움도 없이 가게를 운영하다니 정말 멋지네!
[나]: 아니에요ㅎㅎ 처음 시작할때만 제 힘으로 했지 중간중간에 부모님이 도움도 많이 주셨어요. 부모님도 젊을 때 자영업을 하신 적이 있어서 노하우를 많이 알려주셨죠.
[예비 시어머니]: 그렇구나 정말 다복한 가정이네. 우리 다음에 만날 땐 호칭도 바꿔야겠죠 곧 우리집 며느리 될 사람인데~

남자친구가 중간에서 굳이 대화를 이어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모든 대화가 즐겁고 편안했어요. 그런 저희 모습을 보고 남자친구 역시 좋아하고 고마워했고요. 하지만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본인 성격에 일부에 불과했다는 걸요.

어머니와 제 사이에 별다른 사건이나 싸움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단지 자기가 기대했던 것보다 임신 소식이 너무 안 들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점점 행동이 바뀌시더라고요. 특히 남편 없이 저랑 단둘이서 이야기할 때 제일 많이 변하셨죠. 신혼 초반 때만 해도 제 가게에 오셔서 친딸처럼 이것저것 챙겨주셨던 분이었는데 말이에요.

"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시어머니]: 우리 며느리 힘들진 않아? 아휴 손님이 너무 많아서 네가 앉아 있을 틈도 없겠구나. 자 이것 좀 먹고 해. 아무리 바쁜게 좋다지만 체력이 있어야 일도 하는거지. 자 얼른!

제가 조금이라도 피곤할까봐 마치 친정엄마처럼 저를 챙겨주시는 모습 때문에 주변에서는 어머니가 시어머니인지 모르는 분들이 더 많았어요. 사실 아무리 잘해주시더라도 시모가 일터에 자주 찾아오면 불편할 만도 하잖아요. 그런데 워낙 저를 예뻐해주신 덕분에 언제 오시든 저는 반갑기만 하더라구요. 하지만 그 마음에 부담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 건 어머니의 말씀마다 손주라는 단어가 따라붙을 때부터였네요.

[시어머니]: 며늘아 오늘도 마감까지 네가 있을 예정이니?
[나]: 네. 오늘은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원래 마감할 예정이었던 직원이 휴무를 내서요. 어머니 마감까지 계시려고요? 그럼 제가 태워다 드릴게요.
[시어머니]: 아유 괜히 그러지 마라. 안 그래도 바쁜데 왜 기사 노릇까지 하려고 해? 집에 가면 또 손주 만들고 하느라 애써야 할 텐데. 아유 1분이라도 시간 뺏으면 안되지요 그렇고 말고.

어느 순간부터 대화가 항상 이런 식으로 끝나더라고요. 손주 소식에 대한 기대 희망 같은 이야기로 항상 대답을 해 오셨어요. 그러니 저로서는 매번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도 고민이 될 정도로 부담이 되고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죠. 심지어 주변에 사람이 있든 없든 애를 만드느니 어쩌니 하는 말도 자주 하시니 조금 민망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저희가 애초에 임신 계획이 없었던 건 아니다 보니 어머니의 말씀이 너무 심한 부담까진 되지 않았어요. 어머니의 바람과 저희 목표가 다행히 같았으니까요. 다만 그런 말씀을 들으면 조바심이 나거나 걱정이 되긴 했었죠. 첫 결혼기념일을 맞던 날 저는 결국 처음으로 남편에게 시험관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어요.

[나]: 여보 우리 어느새 노력한지도 1년이나 됐는데 아무 소식이 없는 걸 보니 조금 걱정이 돼서 말이야. 만약 올해도 애가 들어서지 않으면 시험관을 좀 알아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
[남편]: 아직 시험관 생각은 좀 이른 거 아니야?
[나]: 우리 이제 신혼 1년인데 그렇긴 하지. 우리가 아직 새파란 신혼부부인 건 맞는데 사실 우리는 신혼 없이 바로 애기 가지는게 목표였잖아 그 기준으로 생각하면 최소한 난임 검사라도 받아보는게 맞다고 생각해.
[남편]: 1년 동안 꾸준히 노력했는데도 별다른 결실이 없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네. 그럼 만약 다음 달에도 소식 없으면 난임 검사부터 받아보자. 대신 너무 조바심 내지 않아도 돼. 스트레스 받으면 생길 것도 안 생긴다고들 하잖아?
[나]: 응 너무 걱정하지 마.

"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나름의 합의를 끝낸 저희 부부는 다음 달에도 소식이 없자 예정대로 난임 검사를 받게 되었어요. 하루 날을 비워두고 피검사부터 초음파까지 꼼꼼하게 받았죠.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저희 둘 다 검사 결과가 좀 좋지 않게 나왔어요.

우선 저는 난소 나이가 제 원래 나이보다 5살이나 높게 나왔고 남편의 경우 정자 활동성이 평균 연령대에 비해 낮게 나오더라고요. 나름 예상은 했기 때문에 많이 좌절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좋을 순 없었죠. 어머님도 아실 건 아셔야 할 것 같아서 검사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해 드렸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너무 세서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시어머니]: 뭐? 난소에도 나이가 있단 말이냐! 아니 도대체 너는 생활을 어떻게 했길래 결과가 그렇게 나오니! 너 당장 가게 일부터 정리해야 되는 거 아니니? 요즘 사람들은 스트레스다 뭐다 환경호르몬이 뭐다 말이 많던데 지금처럼 쭉 살다가는 평생에는 코빼기도 못 보게 생긴 거 아니냐고!

어머니의 반응은 좀 황당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어요. 분명 저희 둘 다 검사 결과가 좋지 못하게 나왔는데 이 모든게 전부 제 탓인 것 마냥 저보고만 뭐라 하시더라고요. 언제는 여자가 사장님 타이틀 달고 일하는게 멋지다고 하셨으면서 이제 와서는 자고로 여자는 젊은게 최고라는 등 애 잘 낳고 내조 잘하는 여자가 최고라는 둥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말씀하시는데 저로서는 서럽기만 했죠. 

아이 소식을 너무 오매불망 기다리시는 것 같아서 현실을 말씀드리는게 좋을 것 같아 검사 이야기를 해드렸던 건데 이렇게 더 혼쭐이 날 줄은 몰랐거든요.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더 흐르고 저희는 결국 시험관 시술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사실이 부분에 있어서도 어머니의 핀잔은 여전했어요. 

자연의 순리대로 잉태해야 하는데 의학적으로 그렇게 억지로 만들어 내면 애가 과연 정상이겠느냐며 잠 못할 소리도 많이 하시더군요. 그쯤 되니 진정 손주를 원하시는 건 맞는지도 의문이었어요. 하지만 그런 부정어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무려 첫 도전만에 아이를 품을 수 있었네요. 

"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아이가 잘 자리잡았다는 소식을 듣던 날에는 마치 수도꼭지가 고장난 것 마냥 눈물이 줄줄 흐르더라고요. 그간의 마음고생 때문에 더욱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그 와중에 눈물이 쏙 들어가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는데요. 초음파 화면을 유심히 보시던 의사선생님께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셨어요.

[의사]: 아기집이 세개네요. 그런데 아기집 하나가 크기가 많이 작아요. 심장 소리는 아직 안 들려드리겠습니다. 
[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설마 세쌍둥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의사]: 네 맞습니다. 알고 계셨겠지만 시험관의 경우 자연 임신에 비해 쌍둥이가 잘 들어서는데요. 하지만 세쌍둥이의 경우 산모의 상태에 따라 선택 유산을 하기도 하는데 아기집 크기로 봤을 때 자연 도태될 가능성도 있고요. 

그렇게 원하던 아이를 얻었다는 기쁨도 잠시였고 의사 선생님 입에서 선택적 유산이란 말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때부터는 머릿속이 뒤엉키는 바람에 눈물조차 나오질 않더라고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해지는 느낌이었어요. 저와는 반대로 남편은 눈물바다가 되었구요. 

남편은 제 몸 상태를 걱정해서 의사 선생님의 말에 많이 흔들리는 눈치였지만 산모인 저는 달랐습니다. 무조건 새 아이를 품고 갈 생각이었고 아기집 하나가 자연 도태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죠. 그 과정에서 남편과 실랑이도 많이 벌였지만 남편은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고 제 선택을 응원하기로 했네요. 

"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시어머니는 당연히 제 선택을 존중해 주셨는데 이때 또 한번 씁쓸하긴 하더라고요. 친정부모님의 경우 남편처럼 제 몸 상태를 가장 먼저 걱정해 주셨는데 시어머니만큼은 달랐으니까요. 

[시어머니]: 아휴 정말 잘 생각했다. 그동안 얼마나 시간들여 돈들여 품은 손주들인데 뭐? 선택 유산? 그 의사 양반 정말 할 말 못할 말을 모르는구먼. 어찌 됐건 잘 선택했다. 애부터 낳고 봐야지. 

어쨌거나 제 선택을 지지해 주시는 거니 다행은 다행이었지만 산모인 제 몸 건강은 전혀 생각해주지 않는 모습에 씁쓸할 수밖에 없긴 했죠. 하지만 당시 저에게 제일 중요한 건 제 아이의 건강이었어요. 때문에 다른 건 최대한 신경 쓰지 않고 몸조리에만 집중하려고 애를 많이 썼네요. 

평생들을 생각도 없었던 클래식도 듣고 먹는 음식도 신경 쓰고 그랬죠. 잘 먹고 잘 자는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도 이때 정말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세 아이는 모두 큰일 없이 제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주었어요.

세아이 모두 건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마음이 얼마나 평화로워지던지요. 그런데 힘겹게 찾은 그 평화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산산조각나기 시작했던 건 의외로 시어머니가 아니라 남편 때문이었는데요. 사실 아이를 가지고 나서부터 시어머니가 전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로 저를 대해주셨거든요. 

그리 가까운 길이 아닌데도 매번 산부인과도 같이 동행해 주시고 몸에 좋다는 음식도 열심히 챙겨 주시고요. 그런데 맨 처음 아이들의 성별을 듣게 되던 날 짧았던 평화가 모조리 부서지고 말았어요. 그날은 시모뿐만 아니라 남편도 함께였는데요. 의사 선생님께서 성별에 대한 정보를 듣겠느냐 물으셨고 냉큼 듣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의사]: 두 아이의 경우 확실해 보이고 한 아이는 척추와 생식기 각도가 조금 애매해서 16주차에 정확히 말씀드릴 수 있겠지만 현재 초음파로서는 세 아이 모두 공주님으로 추정되네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남편과 저는 딸부잣집이 되었다며 서로를 얼싸안고 뭉클해 하고 있는데 어머님이 대뜸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리셨어요. 뒤따라 나가봤더니 먼저 택시를 타고 집에 가셨더라고요. 아무리 달갑지 않은 결과라해도 이 정도의 반응까지 보이실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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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는 딸이든 아들이든 손주 한 명만 있어도 꿈 같을 거라고 말씀하셨던 분이셨으니까요. 그날 밤에 전화도 드려봤고 문자도 드려봤지만 어머니는 아무 응답이 없으셨어요. 더 황당했던 건 아들이 하는 전화는 바로 받으시더군요. 둘이서 한참을 통화하고는 남편이 와서 한다는 말이 더 웃겼습니다.

[남편]: 아무래도 옛날 분이시잖아 둘도 아니고 셋인데 셋 중에 하나 정도는 당연히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계셨나 봐. 우리가 이해해 드리자. 

그 말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으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그때부터였어요. 남편과 제 관계에서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게요 제가 임신한으로 친정 엄마보다 더 친엄마처럼 생겨 주시던 어머니는 그날부로 다시 예전처럼 행동하셨어요. 아니 어쩌면 예전보다도 더 철저히 절 무시하기 시작하셨죠. 

딸 가진게 죄도 아니고 제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는데 그 사이에서 너무 중립적인 태도로 나오는 남편한테 더 속상해지기 시작했네요. 그러다 보니 생전 안 하던 부부싸움도 조금씩 하게 되더라고요. 심지어 제가 입덧이 남들보다 좀 길었는데요. 

"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몸은 갈수록 예민해지는데 남편과 사이도 대면대면 해지니 점점 거실과 안방에서 따로 자는 날도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목소리 높여가며 서로 진 빠질 바에 조금 대면대면 하더라도 이렇게 지내는게 당시에는 최선이라고 생각했구요. 어머니도 지금은 저러시지만 막상 손주를 품에 안고 보면 예뻐하실 수밖에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시간이지나 제 출산일이 되어서도 병원에 오지 않으셨죠. 솔직히 충격이었어요. 더 멀리 계시는 친정부모님은 새벽부터 와계셨는데 참 어쩔 수 없는 차이가 확 느껴지더라고요.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하려고 했어요. 어차피 좋은 소리도 못들을 텐데 기꺼이 찾아와서 스트레스 주시는 것보다 백번 낫다고 생각하려고 했죠. 

그렇게 어머니는 제가 병원을 나와 조리원에 있을 때에도 심지어 조리원 생활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까지도 아무런 연락조차 주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굳이 먼저 하지 않았고요. 이런 고부 사이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남편에게는 은근한 실망이 더해져갔죠. 

그런데 머지않아 의외의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요. 제가 출산하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어머니한테서 처음으로 전화가 왔어요. 저는 애들 때문에 대부분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두던 때라 나중에야 그 부재중을 확인하고 전화를 드렸어요. 

"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시어머니]: 애미야 몸조리는 잘하고 있니? 내가 개인적인 사정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너한테 시애미로써 도릴 못했구나 늦었지만 너무 고생 많았고 축하한다. 

그 말이 뭐라고 바보처럼 울컥 눈물이 나더라고요. 저는 최대한 눈물을 참고 담담하게 대답했어요. 

[나]: 아니에요 어머니. 지금이라도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잘 지내셨어요? 
[시어머니]: 나야 뭐 똑같지. 혹시 꼭 이번 주가 아니더라도 언제 한번 집에 차로 오지 않으련? 너 주려고 몸에 좋다는 것도 많이 지어놨는데… 
[나]: 아 저는 가능한데 애들 때문에요. 신생아들은 100일 정도는 지나야 외출할 수 있어서요. 
[시어머니]: 애들은 괜찮고 너희 둘이서 한번 올 수 있을 때 놀려 오려무나 언제든지 좋으니.

아직 애들 얼굴 한번 못 보셨기 때문에 당연히 애들을 보고 싶어 하시는 줄 알았는데 애들은 괜찮고 저랑 남편 둘이서 한번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뒤늦게나마 저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하시려고 그러시는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꼭 말씀드리고 싶은 선물 같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것도 시댁 가는 날 말씀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했구요. 

마침 그 달 말쯤에 남편 동문회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모임 장소가 시댁이랑 같은 동네였거든요. 그래서 겸사겸사 반나절 정도 어머니한테 들리기로 했습니다.

긴 시간이 아닌지라 아이들에게는 오랜만에 친정부모님이 와주시기로 했고요. 오랜만에 뵙는 시어머니 얼굴은 전보다 좀 더 밝아진 느낌이었어요. 저를 보자마자 손을 잡아주시고 어깨를 다독거리시며 말씀하셨어요.

[시어머니]: 오느라 고생 많았지 자 얼른 앉아라. 내가 음식 많이 해놨어.

저를 따뜻하게 챙겨주시는데 아직도 호르몬이 들쑥날쑥인지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렇게 남편과 어머니 그리고 저 셋이서 오랜만에 식사를 하고 남편은 동문회 모임으로 향했어요. 얼굴 도장만 찍고 커피나 한잔 마시고 오겠다고 하길래 저 역시 그 시간 동안 어머니랑 차나 한잔 할 생각이었죠. 

시댁은 아주 시골은 아니지만 주택가에 위치한 2층집이라 대문 앞에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마당이 있어요. 거기 자그마한 평상도 있고 마침 날씨도 좋아서 어머니랑 거기 앉아서 담소나 나누려던 참이었네요.

어머니가 부엌에 들어가시고 저는 평상에 앉아 어머니를 기다리는데 차를 내오겠다도 어머니가 갑자기 온몸을 낑낑거리며 큰 양동이 하나를 끌고 나오시는 거예요. 어린아이 두 명은 좋게 들어갈 법한 큰 자주색 양동이를요. 

"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나]: 어머니 그게 뭐예요? 
[시어머니]: 아유 어미야 이거 좀 도와줄 수 있겠니? 

마당 입구까지 나온 어머니가 저에게 양동이를 같이 끌어달라 부탁하셨고 저는 영문도 모른 채 어머니께 갔습니다. 도와드리면서 보니 그 양동이 안에는 얼음물이 반쯤 차 있더라고요. 이 많은 물을 왜 담으셨지 의아해하며 어머니를 도와 양동이를 끌려는데 갑자기 제 몸이 기우뚱하던 일 얼음물 속으로 풍덩 빠지고 말았어요. 순식간에 일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정확히 느낄 수 있었죠. 그건 제가 발을 헛디뎌서도 어지러워 넘어진 것도 아니었어요. 제가 양동이를 끌려고 허리를 숙이는 순간 어머니가 뒤에서 제 옆구리를 발로 팍 밀어서 일어난 일이었거든요. 순식간에 물에 빠진 쥐꼴이 된 저는 버둥거리며 소리쳤습니다. 

[나]: 어머니 지금 이게 뭐 하시는 짓이에요!
 
그때 저는 정확히 봤어요. 조금도 당황하거나 놀라는 기색 없이 그저 허우적거리는 저를 말똥말똥 쳐다보는 그 눈빛을요. 그 와중에 신발까지 벗겨진 저는 한참을 허우적대다 간신히 일어났고 어머니를 보며 일부러 절 발로 미신 거죠! 지금 왜 이러시는 거예요! 애초에 몸조리할 음식 먹이려고 부른게 아니었던 거죠 네? 라고 소리쳤습니다. 

"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쓴 웃음을 지으며 한다는 소리가 “몸조리는 사치지! 계집 셋 낳은게 뭐 잘했다고 몸조리야 몸조리. 됐고 어차피 빠진 김에 몇 분만 더 앉았다가 일어났다 해보려무나” 하시더군요. 저는 기가 막혀라고 말하며 양동이 밖으로 발을 한발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머니가 바깥으로 나온 제 발을 다시 꾸역꾸역 집어넣으려고 하더니 “내가 뭐 아무 이유 없이 이러는 줄 알아? 들어보니까 출산하고 나서 몸 아물기 전에 이렇게 하면 재질이 싹 바뀐다고 하더구나. 아들 낳는 몸이 될 수도 있는데 어디서 엄살이야 엄살이! 아유 얼른 다시 못 들어가?” 라고 하며 제 어깨까지 누르려 드는 거예요. 

그 순간은 정말 인간이 노망이라도 났나 싶었어요. 저는 어머니 팔을 저 멀리 밀어버렸고 그 바람에 어머니가 마당으로 팩하고 쓰러졌는데요. 마침 그때 대문 밖에 남편 얼굴이 보이는 거예요. 타이밍상 오해할법한 상황이긴 했지만 저 역시 물에 온몸이 젖어 있으면 무슨 일인지부터 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남편은 들어오자마자 넘어진 어머니한테 뛰어가더니 “지갑 때문에 다시 돌아왔는데 당신 지금 이게 뭐하는 거야! 어 나 없다고 지금 시어머니를 바닥에 내팽겨 친거야?” 이러는 겁니다.

그때 남편 눈빛을 보고 깨달았어요. 아 내가 여기서 구구절절 얘기해 봤자 토시 하나 먹히지 않겠구나. 이 인간은 애매한 중립이 아니라 맹목적인지 엄마 편이구나라는 걸요. 그 순간 저는 남편에게 뚜벅뚜벅 걸어가 싸대기를 날려버렸고 이렇게 말했죠. 

[나]: 네 와이프가 지금 생쥐골이 되어 있는데 그건 네 눈에 보이지도 않나봐? 됐다 입 아프게 설명할 가치도 없겠어. 

저는 그대로 대문 밖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택시를 잡아 타고 그대로 집으로 향했죠. 물에 흠뻑 빠진 탓에 택시가 두 대나 저를 그냥 지나치더라고요. 다행히 마지막 기사님이 저를 태워주셨고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저는 꺼이꺼이 울었어요.

단순히 그날 일어난 일 때문에 온게 아니라 남편과 제 사이가 완전히 끝났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오열했죠. 그날 밤 완전히 다쳐버린 제 마음은 꿈에도 모른 채 남편이 뒤늦게 돌아와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남편]: 감기 기운은 없어? 아까 내가 엄마 넘어지는 거 보고 눈이 뒤집혔어. 그런데 와이프고 엄마고 다 떠나서 나이 많은 어른이 넘어졌는데 그거부터 챙긴게 죄야? 그리고 내가 엄마랑 얘기도 좀 해봤는데 당신 하도 골골대는게 신경 쓰여서 이리저리 수소문 좀 하다가 얼음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거라잖아. 옛날 사람이 뭘 알겠어 어? 당신 면역력 생각하느라 그랬다는데 젊은 당신이 이해 좀 해주면 안 되겠어? 
[나]: 뭐? 내가 골골대? 내가 언제 골골댔는데! 그리고 뭐 면역력? 어디서 약을 팔아. 너네 엄마가 그러더라 벼 아물기 전에 얼음물에 몸 담그면 체질이 싹 바뀌어서 아들 낳는다고. 그딴 미신을 믿고 독단적으로 실행한 너네 엄마나 너네 엄마 말이면 앞뒤 안가리고 믿으려고 드는 너나 다 똑같아 알아? 더 이상 나한테 그 어떤 해명도 하려고 들지마. 너랑 나 이제 끝이니까.

남편은 관계의 끝을 선포하는 제 앞에서도 끝까지 엄마 편을 들며 저를 다그치려고 들었어요. 그렇게 나와주니 오히려 마음 정리가 더 시원하게 되더군요. 이 사람은 우리 딸들의 아빠가 될 자격이 없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혼을 준비했습니다. 

남편은 한동안 저에게 매달렸지만 제가 눈도 꿈쩍 않고 소송협박 하니 뒤늦게 받아들이더군요. 제 가게 수입이 좋은 편이라 재산분할에 있어서는 큰 이득을 보지 못했지만 양육권은 무사히 저에게 오게 되었어요. 그것만으로 저는 충분히 만족했죠. 긴 싸움이 비로소 끝나면서 매일이 폭풍같은 제 마음도 조금씩 추스러들기 시작했습니다. 

"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시모는 꼭 제가 안정을 찾을만하면 눈앞에 나타나더군요. 여러모로 참 악연은 악연이에요. 남편과 법적으로 남남이 된 이유인데도 불구하고 심지어 제 가게로 찾아왔더라고요. 하지만 그때 제 마음은 예전과는 조금 달랐어요. 반갑네 잘 됐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왜냐하면 제가 시댁 마당 양동이에 빠지던 날 주려던 선물을 주지 않고 돌아왔었으니까요. 심지어 시모가 찾아온 타이밍도 완벽했어요. 그때 가게에는 저희 엄마도 계셨고 제 아이들도 함께였거든요. 게다가 당시 제 카페에는 한 테이블 빼고 모조리 만석인 상태였어요. 

그 정도로 손님이 많은 상황에 시모가 대뜸 사색이 된 얼굴로 무릎을 꿇더니 두 손을 모아 싹싹 빌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제 아이들을 보며 한다는 말이 가관이었습니다.

[시어머니]: 너무 너무 늦게 들었다. 너무 늦게 들었어… 
[나]: 뭘요? 설마 이혼 소식을 이제 들으셨단 말씀은 아니시겠죠? 
[시어머니]: 아니 그거 말고 손주. 내 손주.. 
[나]: 그럼 그렇지. 우리 민규 이야기를 이제야 들었던 말씀이시네요. 

저는 피식 웃으며 아이들이 자고 있는 유모차로 다가가 민규를 품에 안고 시모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눈치 채셨겠지만 민규는 제가 낳은 세쌍둥이 중 유일한 아들이에요. 어머니는 제가 처음으로 성별을 확인했던 12주차부터 저와의 왕래를 끊어 버리셨는데 사실 태아 성별은 15주에서 16주가 되어야 확실하게 알 수 있거든요. 

당시 병원에서도 분명 한 아이의 성별은 여아로 추정된다고 했지 확실하다고는 하지 않았는데도 어머니가 너무 성급하게 실망해버린 거죠. 이후 16주차에 저 혼자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 한 아이의 척추와 생식기 각도가 정확히 위를 향하고 있고 그건 성별이 아들임을 의미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저는 그 사실을 출산일까지 굳이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있었거든요. 그 모든 걸 알 턱이 없는 시모는 민규를 보자마자 땅을 치며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고 저는 어머니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속삭이듯 한 마디 더 해줬어요. 

"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나]: 어머니 그거 아세요? 어머니가 저 얼음물에 빠트리려고 불렀던 날 저는 남편이랑 우리 민규 이야기를 선물로 해드리려고 갔던 거예요. 병원에 코빼기도 안비치고 애 낳고 나서도 손주들 얼굴 한번 안 궁금해하니 솔직히 평생 말 안하려다가 저한테 미안하니 어쩌니 하시길래 늦게라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참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쵸? 
[시어머니]: 내가..내가 너무 무지했다. 아니 무식했다! 제발 노망난 늙은이의 발악이었다 생각해주고 이혼만큼은 다시 생각해봐 주면 안되겠니? 응? 제발 부탁이다… 
[나]: 그러게 왜 이제껏 그렇게 사셨어요. 법적으로도 깨끗하게 남인 마당에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세요. 다시 찾아올 생각도 하지 마시고요. 

그날이 마지막이길 바랬는데 시모는 참 끈질기더군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가게 찾아왔는데 그땐 자기 혼자가 아니라 온 시댁 식구를 다 끌고 왔더라고요. 다 같이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찾아와 제발 남편과 재결합하면 안되겠느냐고 싹싹 빌어 대는데 그 와중에 콧물까지 흘려가며 울어대는 전남편의 얼굴이 어찌나 꼴보기 싫던지요. 

"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처음이면 몰라도 두번까지 상냥하게 보내줄 순 없겠더라고요. 그때는 소금까지 끼얹어가며 쫓아냈어요. 어디 남의 사업장에서 추태를 부리냐며 또 한번 더 이러면 그땐 경찰을 부르는 수밖에 없다고 못까지 박아 놨죠. 지금은 그후로 3개월 정도의 시간이 더 흐른 상황이에요. 

그동안 저는 가게에 전담 매니저를 고용해뒀고 친정에서 몸과 마음을 천천히 회복 해왔는데요. 신혼집 정리와 함께 휴대폰 번호도 바꾸고 새로 구한 집으로 온 가족 전입신고까지 마친 상태랍니다. 이참에 친정집도 정리하면서 온 가족이 함께 살만한 전원주택을 하나 구했거든요.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조금씩 볕이 들고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아무래도 제 심신이 다시 예전처럼 건강해졌다는 뜻이겠죠. 한때는 하도 꿈을 꾸는 바람에 불면증에도 시달렸었는데 요즘은 꿈에도 잘 나오질 않는 걸 보니 잘 아물어가고 있나 봅니다. 저는 앞으로도 누구보다 강인한 슈퍼맘이자 누구보다 멋진 싱글맘이 되어 아이들을 보살필 생각이에요. 

그간의 힘든 시간을 같이 버텨준 저희 부모님께도  열심히 효도하려고요 이야기 함께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여러분도 힘든 일이 있으시다면 버티고 잘이겨내시길 바래요. 

 

"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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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3쌍둥이를 딸만 임신했다는 소식에 저를 얼음물에 빠뜨려 버리더라고요..." 무례한 시모에게 화를 내던 나를 보고 욕을 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몇달 후 만난 시모는 제 아이들을 본 '순간' 그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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