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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아무리 죽기 직전이어도 평새 모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닌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부 한다는 것이 상상이 되시나요?
실제로 이를 실천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일을 했지만 이보다도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되어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일이 벌어졌었습니다.
바로 ‘황필상’박사의 이야기 이죠.
그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젊은이들을 살려내라”
최근 사회에서 기회를 박탈당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며 이들을 위해 발벗고 나선 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황필순’박사입니다.
황필순 박사는 빈민촌 출신으로 가난하게 태어났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냈고 늦깎이로 26살에 대학을 진학해 31살엔 국비 장학생으로 프랑스 유학을 했고, 38살엔 카이스트 교수까지 임명될 정도였다고 하죠.
하지만 그는 세상에 똑똑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사업을 하기 위해 외국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당시그는 황무지에 서있어도 10년 후 내가 살아만 있다면 옥답으로 만들자신이 있다고 할 정도로 자신있는 젊은 생활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그의 사업은 승승장구를 했고, 엄청난 부를 축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는 더이상 돈을 버는 것은 무의미 하다 생각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많은 젊은 이들에게 ‘세상은 어떻게든 버티면 충분히 살만하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지난 2003년 황필순 박사는 젊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좋은 뜻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세운 장학재단에 무려 200억이라는 거금을 기부하게 됩니다.
하지만 나라에서는 재산 상속을 막겠다며 기부한 돈보다 더 많은 225억의 세금을 매겨 버린 것이죠.
그는 이 부당함을 극복하고자 법적대응을 나섰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랜 소송기간 때문에 큰 고통을 받게 되었고, 몸이 감당을 하지 못하고 결국 암이 생겨버리고 말았다고 하죠.
결국 그는 대법원 승소를 통해 기부 법을 개정한 ‘황필상법’까지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그런 그를 보고 어떤 젊은 이들은 “나도 황 박사님처럼 좋은 일 할 거에요”라며 감동을 받는 이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렇게 병으로 병세를 하였고, 가는 길 그는 그의 시신까지 기부를 하며 “현실 직시하고 길을 찾아라”, “무엇보다 세상에 기죽지 마라”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고 하네요.
정말 우리 세상에 필요한 진정한 영웅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