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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올해로 나이 40대 중반이 넘어가는 여성입니다.
오늘 전 저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 싶어 이렇게 제보를 하게 되었어요.
전 어렸을때 부터 결혼은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엄마를 때리는 아빠라는 사람을 보고 ‘저렇게 불행한 생활이라면 시작도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죠.

어릴때 부터 나 혼자 꼭 부자가 되어서 엄마를 모시고 호강시켜 드리며 살아야 겠다는 꿈 하나를 가지고 경영학과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 저는 은행원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은행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등 신붓감 이라며 주변에서 소개팅이나 선자리를 많이 주선해 주더라고요.
하지만 그때마다 저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면서 거절을 하기 바빴죠.
그렇게 저는 30대가 되었고,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어 이제 엄마를 모시고 들어갈 계획을 정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 날은 금요일 이었는데요. 저는 퇴근을 하고 엄마랑 외식을 하기 위해 식당을 예약하려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가 오더라고요.
[병원 관계자] : 김명숙씨 핸드폰입니다! 혹시 김명숙씨 따님 되시나요?
[수진] : 네! 맞아요. 혹시 누구시죠?
[병원 관계자] : 아네. 전화 받는 곳은 00병원입니다. 지금 환자분이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실려오셔서요. 이쪽으로 가능한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머릿속이 하얘졌고, 회사에는 사정을 이야기 하고 반차를 내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걸음에 병원으로 달려 갔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무단 횡단에 달려오는 자동차에 치여 그만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저는 상을 치루고 분양받은 아파트로 들어오니 정말 허탈한 마음만 들더라고요.

가족이라곤 아버지 하나 남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 에서도 계속 술에취해 손님도 맞이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다시는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아빠와는 인연을 끊고 살기로 했어요.
애초에 아파트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고, 제 핸드폰 번호도 바꾸고 살기로 했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저는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을때 입니다.
문득 아이가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사랑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 고생을 하며 산 엄마를 생각하면 결혼은 더더욱 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제 신체는 생물학적으로 임신이 가능한 시기가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 나더라고요.
저는 필사적으로 아이를 갖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입양도 생각을 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핏줄이 아닌 아이를 키울수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정자기증’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지금도 불법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당시 정자를 기증받기 위해서는 해외로 간 후 어렵게 승인을 받아야 할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저는 몇달을 고민한 후 후회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아이를 갖게된 저는 37살의 나이에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아이가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랐으면 하는 바람에 학군이 좋다는 대전의 한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요.
당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인 7살 쯤이었어요.
동네에서 첫 친구를 사겼다며 친구와 놀러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어떻게 해서든 아들을 말렸어야 하는데…
아들은 그렇게 두번다시 돌아오지 않는 외출을 하고 말았습니다.
저녁 6시면 저녁먹으러 돌아오던 아이가 8시가 넘어서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 이상했던 저는 아이의 친구네 집으로 연락을 해 보았지만 아들의 친구는 이미 5시에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죠.
그때 저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직접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10시가 되어서도 집으로 와보았지만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저는 답답한 마음에 경찰서로 달려가 실종신고를 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아들을 볼수가 없었어요.

경찰에서는 수색을 하고 있다지만 저의 아들과 관려있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당시만 해도 cctv가 많이 서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진 아들을 찾을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루하루 절망속에서 살게 되었어요.
그리고 몇달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을 제 아들 때문에 이대로 더 있다간 제가 미쳐버릴것 같아 저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아들이 평소 좋아하던 그당시 유행했던 컴퓨터 게임이 생각 나더라고요.
아들은 그 어린 나이에 친구들이랑 피씨방을 간다며 난리를 치곤 했던게 생각 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어요.
피씨방을 운영하기로요. 제가 피씨방을 하고 있으면 아들이 한번쯤은 살면서 들리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으로 시작을했죠.
그렇게 저는 직장을 퇴사하고 받은 퇴직금과 그동안 제가 모은 재산으로 창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창업을 하고 5년이 지나게 되었어요.

알바 한명만 쓰고 혼자서 12시간 넘게 가게에 있으면서 정신은 피폐해저 가는 기분이었죠.
그러던 어느날 중학생 쯤 되어 보이는 한 아이가 매일 저희 피씨방으로 오는 것이었어요.
제 아들이 아직까지 어딘가에서 살아만 있다면 저나이쯤 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아이었어요.
그런데 그 아이는 특이한 것이 아이 아빠가 매일 아이를 데리러 오더라고요.
처음엔 어떤 사연인지 몰랐지만 아이가 피씨방에 자주 오다보니 아이 아빠가 저에게 부탁을 하나 하더라고요.
그 부탁은 아이가 피씨방에 올때마다 문자 한통만 남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엔 귀찮아서 싫은 티를 냈지만 유독 제 아들과 닮은 점이 많았던 아이가 눈에 밟혀 도와주기로 했죠.
그러다가 몇마디 주고 받게 되면서 그 가족의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자신 때문에 가난하게 살아야 했던 아이는 매일 하교 후 학원을 가는 친구들과 다르게 자연스럽게 피씨방으로 오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뒤로 그 아이가 올때면 안쓰러운 마음에서인지 몰라도 반찬같은 이런저런 것들을 챙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아빠와 사랑이 싹트게 되면서 좋은 감정으로 발전하게 되었죠.
그러던 어느날 저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는데요.
사실 아이는 남자의 아들이 아니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5년전 한 아이가 울면서 거리를 방황하는 것을 보고 남자는 아이에게 위로를 해주며 밥을 사줬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아이는 당시 충격을 받아 기억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라며 병원에서는 진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아이의 부모를 찾을 방법이 없던 남자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이 키우게 되었고, 지금까지 아이는 그 사실을 모른채 살아오고 있다고 하네요.

저는 놀란 마음에 저의 아들 이야기를 했고, 혹시 처음 그 아이가 입고 있었던 옷을 볼수 있냐고 물어본 저는 그 남자가 보여준 옷들을 보고 제 아이인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아이에게 이야기 했고 아이는 처음엔 당황해 했지만 나중에 받아 들이더라고요.
이 이야기는 7년전 제가 겪었던 이야기 인데요.
올해 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이런저런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좋은 채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제보를 하게 되었네요.
그럼 지금까지 제 긴 사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