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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의 땅 ‘노르웨이’ 저 멀리 북유럽의 한 나라에서 우리는 모르는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 있습니다. 한국인의 그 누구보다도 유명하며 심지어 노르웨이의 교과서에도 등장한다고 하는데요.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 노르웨이 사람들은 김대중을 ‘라면왕이 태어난 나라의 대통령’으로 이해했다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노르웨이에서 라면왕으로 불린다는 이철호씨는 과연 누구일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철호는 미스터 리(Mr. Lee)로 불리며, 한국 전쟁 당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으며 포탄 파편으로 다리를 크게 다친 어린 소년 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한국 의료 기술이 충분하지 않아 한국에서는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결국 1954년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난민자격으로 노르웨이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17살의 나이였으며 노르웨이에 건너간 첫번째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노르웨이에 도착한 이철호씨는 건강문제로 43번의 수술을 받아 기적적으로 살아남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살아남았지만 언어도 통하지 않는 이국 땅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호텔 벨보이, 주방 보조, 구두 닦이 등 여러 잡일을 하며 어렵게 살았습니다.
또한 하루에 3시간씩 자면서 노르웨이어를 공부하는 등 자신의 능력을 키우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굶주림을 이겨내기 위해 구운 지 오래된 빵을 싸게 판매하는 새 모이용 빵을 물에 불려 씹어 먹기도 했지만, 영양실조로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배고픔은 나아지지 않았고 ‘배가 고파도 식당에서 일하면 밥을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식당에서 일을 하기로 마음먹게 됩니다.
처음에는 설거지부터 시작해 감자 깎기 담당까지 다양한 일을 맡으면서도 끊임없이 열심히 노력하여 자신의 실력을 향상했습니다. 그 결과, 이철호 씨는 교육기관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으며, 이후 여러 호텔에서 요리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 관광호텔에 조리 견습생으로 시작을 하였고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으로 6개월만에 요리를 배울 수 있게 되었으며 60년대 중반에는 독일 뒤셀도르프 지방에서 노르웨이식 뷔페 식당을 열어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식당 프랜차이즈 회사의 중간관리직으로 일하다 1987년 회사가 덴마크의 한 기업에 매각되자 이철호 역시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철호씨는 우연히 한국 라면을 맛본 후 인스턴트 라면이 없는 노르웨이에서 라면을 개발하기로 마음 먹었는데요. 노르웨이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스를 가지고 한국의 유명 라면회사 연구소를 방문해서 연구진과 함께 스프를 개발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컵라면이 바로 미스터 리(Mr. LEE)라면 이었습니다. 이 라면을 맛본 노르웨이 사람들은 점차 라면에 맛에 중독되어 갔고 이철호의 인스턴트 라면은 노르웨이에서 큰 인기를 얻어, 라면을 처음 접한 노르웨이 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게 되었습니다.

그는 홍보에도 최선을 다했는데요. 신문과 방송 광고에 직접 출연하며 자기 이름, 미스터 리(Mr. Lee)를 걸었고, 한국 여행 경품도 걸었습니다. 라면 표지에는 한글을 적었습니다. 한국을 알리면 라면도 자연스럽게 알려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그의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한때 미스터 리(Mr.lee) 라면은 노르웨이 현지 시장에서 95%의 점유율을 보이며 전 노르웨이의 ‘라면왕’으로 등극, 노르웨이에서는 ‘미스터 리’가 ‘라면’을 뜻하는 대명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직까지도 ‘미스터 리’ 라면은 1년에 3,000만개 이상이 팔리며, 노르웨이 라면 시장의 점유율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어느 마트에서든 쉽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철호씨는 공로를 인정받아 ‘자랑스러운 노르웨이인 훈장’을 받았으며, 노르웨이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 인명백과사전에도 등재 되었습니다. 이철호의 성공은 노르웨이에서 한국의 라면이 일본의 라면보다 더 인기가 있다는 인식을 만들어냈습니다.
‘노르웨이의 라면왕’ 이철호는 2018년, 파킨슨 병으로 향년 80세에 별세했는데요. 이철호는 생전 “노르웨이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난 한국 사람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머나먼 외국땅에서 한국을 알린 이철호씨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