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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지방에 한 병원에서 병원장으로 있는 50대 남자입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병원 덕분에 저는 요즘애들이 흔히 말하는 ‘금수저’라고 불리면서 자랐는데요.
하지만 이런 저에게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렸을적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적의 사건인데요.

그 날 저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시외곽쪽으로 가면 있는 유명한 계곡으로 고기를 구워먹으러 갔습니다.
그날 저는 진짜 정신없이 수영을 하고 놀았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 때 아직 키가 작았던 저는 발을 잘못 딛여 계곡 중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갔던 것이죠.
그 순간 저는 속으로 ‘이렇게 죽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어떤 아저씨가 저의 양쪽 겨드랑이 속으로 팔을 넣고 끌어 올려주셨던 것입니다.

그당시 저는 무사히 나왔지만 그 아저씨는 계곡속에 있는 돋에 발이 걸려 넘어져 귀 부분을 크게 다치시고 말았죠.
저는 너무 놀라서 그 아저씨에게 감사하다는 말도 못했고 아저씨는 응급처치를 한다며 빨리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시더라고요.
그 뒤로 그 분의 행방은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당시만해도 핸드폰은 커녕 집집 마다 전화기도 하나씩 있을까 말까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찾을수가 없었죠.
그렇게 저는 학창시절 내내 가끔 그 아저씨가 생각나면서 지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의사를 꿈꾸게 되었고 당시 그 아저씨에게 받은 도움으로 ‘나도 저렇게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의사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죠.
그렇게 서울대 의대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 저는 자연스럽게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수십년을 의사생활을 하며 보냈어요.
저도 어느덧 그 아저씨의 나이보다 많아지게 되었고 50을 바라보고 있을때 였죠.
제가 주치의로 담당했던 환자분 중에 어떤 한분에게 폐암 말기의 판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너무 늦게 오신탓에 골든타임은 모두 놓쳐 버렸고 이제 거의 희망이 남지 않은 상태였죠.
그러던 어느날 환자분의 아드님께서 오시더라고요.

저와 비슷한 나이또래인것 같은 그 아드님은 저에게 대뜸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너같은 돌파리도 의사라고 부르냐? 무슨 암환자 하나 제대로 치료 못해!”
뭐.. 솔직히 이런 환자들 정말로 많이 만나 봤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습니다.
한바탕 난리를 치고 간 후 환자분께서 저에게 다가오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아이고.. 의사양반.. 내가 정말로 미안하네.. 아들노무 시키 하나있는거라곤 10년동안 얼굴한번 비추지도 않다가 내가 암이라니까 이제와서 저러는것이… 내가 미안해..”
“아닙니다 어르신.. 제가.. 능력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완전히 해드리지 못해 정말 면목이 없네요..”

그 때 뭔가 낯익은 상처가 어르신 환자분의 귀에 있었던 것이었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저는 어르신에게 물었습니다.
“어르신! 혹시 귀에 있는 흉터… 어쩌다가 그렇게 되신건가요?”
“아.. 이거? 십수년전에 계곡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내 아들또래 되어보이는 녀석이 물에 빠져 있던걸 구해주다가 내가 넘어졌지뭐야 허허 그 녀석은 지금쯤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
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어르신! 혹시 그 계곡이 00동에 있는 참빛계곡 맞나요?”

“어…? 그래 거기! 근데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나?”
“제가.. 그때 그 아이입니다. 어르신…”
“뭐라고?! 아니 어떻게 이런 인연이…”
이 분이 없었더라면 그 때 그 이후로 지금까지의 저의 시간은 있을수가 없었죠.
어쩌면 제가 그때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어르신에게 빚을 갚아 드리고 싶었지만 신의 선택은 저의 바램을 이루어주진 않더라고요.
결국 어르신은 제가 그 사실을 안 다음주에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백만분에 일의 인연이시네요
고인이 돼신 은인이 돼시는분께 명복을빌어드립니다
또한, 선생님의 선행 너무고맙게 생각합니다
이사회에 선생님같은신분이 있으시기에
아직까지는 따듯합니다
고맙습니다…카나다 토론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