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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겉보기에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30대 여성입니다. 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한명 있습니다. 저는 제 아이가 생기고 저의 인생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기적적인 사연을 여러분들께 알려드리고 싶어 이렇게 사연을 적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부모님을 잃어 부모님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고아원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제가 만삭일 때 차 사고가 나서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저는 기적처럼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수 있었는데요. 저는 할머니와 둘이 살게 되었고 할머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몸에 병이 안 나는게 이상할 정도로 새벽부터 시장으로 나가 일을 하셨습니다. 저는 매일 할머니의 굽은 등과 힘빠진 목소리로 밤 늦게 들어오시는 모습에 하루빨리 제가 돈을 벌어 할머니를 호강시켜 드리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항상 새벽이면 일찍 제 밥을 차려주시고는 시장으로 나가시곤 했습니다.

그날도 역시 할머니는 새벽에 나가셨죠. 하지만 평소대로라면 저녁 6시쯤 돌아오셔야 했지만 할머니는 그날따라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나물을 많이 파시고 버스를 놓치는 경우가 있어서 저는 오늘이 그런 경우인가보다 생각했습니다.
저녁 8시가 되어서도 할머니의 발자국 소리는 물론 거리의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가 뜨고 저도 모르게 잠이 들어 일어나보니 누군가 문을두드리는 것이었어요.
“꽝 꽝 꽝, 거기 사람 있어요? **댁 맞으시죠? 경찰입니다”

“경찰이요? 누구시죠?”
“아 여기가 **댁 맞나요? 뺑소니 사고로 사망사고가 발생하게 되어 찾아왔습니다, 지금 집에 꼬마 혼자니?”
저는 제가 잠이 덜 깨서 헛소리를 듣나 싶었습니다.
“네? 누가 사망해요?”
“너희 할머니 돌아가셨단다”
더이상 말도 나오지 않았고 어린 저는 뺑소니란 의미도 잘 알지 못해 그저 할머니의 사망소식에 믿을 수도 없었고 믿기 싫었습니다.
저는 오열을 하며 “왜 .. 왜 저희 할머니가 죽어요? 어떻게 된건가요?”

“할머니가 저녁 마을버스에서 내리신 후 집으로 가는 길에 누군가 뺑소니를 한것 같구나. 여긴 주변에 가로등도 없고 씨씨티비는 더욱 없어서 우리가 범인을 찾아보긴 할 것 같지만…아마 힘들거야”
할머니는 어느때와 같이 집으로 오던 길에 뺑소니를 당해 범인이 누군지도 모른채 그렇게 덜컥 돌아가셨다는게 받아드릴 수 없었지만 저는 할 수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할머니 말고 가족이 없어서 장례식은 해보지도 못한 채 저는 고아원에서 살게 되었어요.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저는 고아원시설에 적응해야 했고 학교를 다니면서 고아원에서 산다는 이유로 제 이름이 아닌 친구들은 저에게 놀림을 주기 일수였습니다.
“고아야~ 고아야, 저기 물 좀 떠다주겠니?”
반 친구들에 들러리였고 저는 저항도 그만 괴롭히라는 말 없이 조용히 해달라는 건 다 해주며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성인이 되고 전 바로 직장을 구해 일을 시작했고 성인이 되서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지만 제가 고아원에 살았다는 걸 아는 분들 중에 저를 만만하게 보시는 던 동료분들또한 있었습니다.

“우리 서로 속사정도 이제 알고 친해진 것 같은데 서로 생일 챙겨주는 건 어때요?”
“좋아요!”
“그럼 다음 주에 내 생일인데 우리 유명한 레스토랑 가서 맛있는 거 먹어요, 그리고 생일선물은 제가.. 지갑이 필요한데! 제가 사진 보내드릴게요~”
동료분은 저에게 명품지갑을 사달라고 하셨고 저는 부담이 컸지만 이런 기회가 처음이였던 저는 기쁜마음에 비상금까지 합해 지갑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꺅~~! 고마워요ㅠㅠ 진짜 이거 쓰면서 자기 생각 많이 날거에요 잘쓸게요”
” 제 생일날에 어디갈까요?”

“어?! 이날 시어머니하고 저녁먹기로 해서 못갈 것 같은데.. 미안해요, 그래도 생일선물은 내가 알아서 이쁜거 줄테니 걱정마요!”
생일날 동료분은 저에게 설날 은행에서 받은 샴푸세트를 예쁘게 포장해 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분께서 이직하셨고 그 이후로 저희의 관계는 어설프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 이후로 누가 먼저 다가오는 것이 저에게 대가를 바라고 오는 것 같았고 인간관계에 신뢰도가 현저히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보육원에서 유일했던 친구와만 연락을 하며 지내왔고 친구의 아는분 소개로 저는 지금의 남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정말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성격으로 저에게 항상 힘이 되주었고 남편도 입양되어 미국에 살다가 온 것이라 저와 공감대로 많아 대화도 많이 하며 지내왔습니다.
남편과 1년쯤 만난 시기에 저희에게 뜻밖의 아이가 생겼고 결혼할 돈이 없어 저희는 혼인서만 쓰고 반지하에서 살았습니다.
반지하에 살고 비록 가난했지만 저와 남편은 셋이 같이 살 수 있음에 감사했고 남편는 매일같이 2시간씩 자고 일을 나가기 바빴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른 새벽 전화가 울리더라고요.
“여기 병원인데 가장 많이 통화한 기록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안타깝게도 김철수씨가 사망하게 되어서 연락드립니다. 통화 가능하신가요? “

“사망이요? 장난 전화거나 보이스피싱이면 당장 신고하겠습니다”
“보이스피싱 아닙니다. 경찰서에서 연락 받고 구급차로 이송 중에 사망하셨습니다. 지금 바로 병원으로 와주셔야 될 것 같네요”
남편은 과로사로 인해 건물공사에서 일하던 중 정신이 희미해져 공사 중이던 건물에서 추락사로 사망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과 추모하는 마음도 너무나 컸지만 그럴 감정 느낄 새 없이 저는 임신한 몸으로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고 임산부에게 일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 였습니다.
그러던 중 가사도우미 면접을 볼 기회가 생겼고 제가 간 집은 대저택의 부자집 사모님이였습니다.
사모님은 저를 인자하게 맞아 주셨고 면접을 보는 중 저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결국 저는 그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을 하게 되었어요.
“임산부의 몸으로 어쩌다 일하게 된건가요?”

“사실 ..”
뜻밖에 안 사실은 대저택에는 사모님 혼자 지내셨고 사모님은 저에게 이 집에서 같이 지내는게 일하기 편할거라는 말씀에 감사하게도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모님은 매번 바쁘셨지만 틈틈이 저를 엄마같이 챙겨주었고 시간이 흘러 저는 만삭이 되어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었어요.
사모님은 일 중간에 달려오셨고 아이를 보자마자 놀라시더라고요.
“혹시 죽은 남편의 성함이 어떻게 돼?! 사진 있니?”
얼떨떨한 저는 사진을 보여주었고 사모님은 사진을 보고 오열을 하시며 주저 않았습니다.
사모님은 아들이 있었고 그 아들이 남편이였던 것입니다.

저는 당황했지만 궁금한게 너무 많아 폭풍 질문을 했습니다.
“사모님! 남편은 부모님이 자신을 버리고 입양 보냈다는 데 사실인가요?”
“아니야.. 재혼한 새엄마가 나몰래 고아원에 보낸거고.. 내가 못찾게 하려고 미국으로 입양으로 보냈다고 하더라고…그런 아들 한번 못보고… 이렇게 죽은 모습으로 널 보는구나… 미안하다.. 미안해.. 철수야”
함께 끌어안고 저희는 한참을 울었고 저희는 얼마 후 남편의 묘를 찾아갔습니다.
“아가.. 우리 철수가 우리에게 준 기적인 것 같구나”
“맞아요 철수씨가 이런 말도 안되는 인연을 선물해준 것 같아서 … 너무..너무 감사하네요”

저는 이제 사모님이 아닌 어머님으로 호칭을 바꾸게 되었고 대저택에 계속 살게 되면서 아이를 좋은 환경에 키울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한 마음뿐이였습니다.
아이가 아빠를 못보고 떠난게 제 과거의 모습이 보여 불안한 마음과 죄책감에 매일을 살아왔어요.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하늘에서 말하는 듯 저에게 어머님과의 기적같은 인연을 선물해 주었고 아직까지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 못할 때도 있어요..
저의 파란만장하고 차갑던 지난 과거는 뒤로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기대하며 어머니와 제 사랑스런 아이에게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할 수 있게 최선을 다 할 거예요.
여러분도 만약 과거의 아픔으로 현재까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겁니다.
새로운 인연을 찾으려 노력하고 도전한다면 아름다운 인연이 생길지도 모르니 숨지 마시고 세상으로 나오기를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