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외동 아들을 잃고 정신이 나가 있었죠” 아들의 장례식날 옆 장례식장의 상복을 입고있는 남자아이의 모습을 보고 저는 너무놀라 손을 붙잡고 나오는데… 그 아이의 충격적인 ‘이 말’에 저는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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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올해로 49이 되는 여성입니다. 
이렇게 제가 사연을 제보한 이유는 여러분들에게 저희 자식 자랑을 좀 하려고 해요 ㅎㅎ
자식들이라고 표현을 하긴 했지만 사실 제 딸은 친자식이 아닙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나구요? 지금부터 긴 이야기를 말씀드려 볼게요. 
저는 지금의 제 남편을 30살에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어요. 
당시 저는 뷰티사업을 하는 사업가였고 저희 남편은 의사로 저희 어머니의 잔소리 끝에 더 늦기전에 혼인을 해야한다며 소개팅에 끌려 나갔죠.

"하나뿐인 외동 아들을 잃고 정신이 나가 있었죠" 아들의 장례식날 옆 장례식장의 상복을 입고있는 남자아이의 모습을 보고 저는 너무놀라 손을 붙잡고 나오는데... 그 아이의 충격적인 '이 말'에 저는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별로 결혼의 생각이 없었지만 저희 남편은 정말 매력적이 사람 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저는 혼전 임신으로 아들을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제 눈에 정말 무럭무럭 자랐어요. 이름은 석준이로 지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이쁜 아이를 보면서 육아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가지고 있던 뷰티 회사를 매각하고 전업주부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석준이가 유치원에 들어갈때 부터였죠. 
그당시 부잣집 애들만 간다는 영어유치원이며 초등학생때 부터 과외 선생님을 붙여 최고의 아들로 만드려고 했죠. 
그리고 석준이 역시 곧잘 배우며 영재라고 불릴정도로 성적이 좋았는데요.

"하나뿐인 외동 아들을 잃고 정신이 나가 있었죠" 아들의 장례식날 옆 장례식장의 상복을 입고있는 남자아이의 모습을 보고 저는 너무놀라 손을 붙잡고 나오는데... 그 아이의 충격적인 '이 말'에 저는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중학교에 가고 석준이는 그당시 엘리트 들만 간다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어요. 
석준이는 정말 효심도 지극한 학생이었죠. 
하루는 비가 많이 내리길래 평소 버스를 타고 등교하던 학교에 제가 직접 태워다준다고 말을 했습니다. 
“석준아~ 오늘은 비도 많이 오는데 엄마가 학교에 데려다 줄까?” 
“ㅎㅎ 괜찮아요 엄마. 다른 친구들도 다 버스타고 등교하는걸요? 괜히 저 때문에 날씨도 안좋은데 오다가다 엄마만 운전하기 불편해요. “
“아이고 우리아들 ㅎㅎ 어쩜이렇게 엄마한테도 자상하니?”
그렇게 집을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저는 배란다 너머로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그날따라 저는 아들을 학교에 왜그렇게 보내기 싫었을까요?
뭔가 찝찝한 마음에 아들이 학교에 잘 도착했나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이상하게 전화를 받질 않더라고요.

"하나뿐인 외동 아들을 잃고 정신이 나가 있었죠" 아들의 장례식날 옆 장례식장의 상복을 입고있는 남자아이의 모습을 보고 저는 너무놀라 손을 붙잡고 나오는데... 그 아이의 충격적인 '이 말'에 저는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핸드폰을 놓고갔나?’
아들의 방안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전 10시쯤 되었나..
아들의 담임선생님으로 부터 전화 한통이 왔습니다. 
“어머님. 석준이 혹시 오늘 학교에 갔나요?”
“네 선생님. 평소처럼 등교했는데… 석준이 학교에 안갔나요?”
“…. 어머님. 그게… 좀전에 학교앞 신호등 횡단보도에서 저희 학교 학생이 교통사고가 나서 응급실로 실려갔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학교 인원을 조사하던 중 석준이가 학교에 오지 않더라고요.. 아무래도 석준이일수도 있으니까. 지금 00병원으로 빨리 가보시는게 좋을것 같아요..” 
저는 도대체 이게 무슨일인가 싶어 정신도 못차리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하나뿐인 외동 아들을 잃고 정신이 나가 있었죠" 아들의 장례식날 옆 장례식장의 상복을 입고있는 남자아이의 모습을 보고 저는 너무놀라 손을 붙잡고 나오는데... 그 아이의 충격적인 '이 말'에 저는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아이의 병원에는 익숙한 가방 하나가 피로 범벅이 된 채로 한옆으로 놓아져 있었고 의식을 잃고 있는 저희 아들이 있었습니다. 
“석준아..!”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일인지.. 악몽을 꾸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건지 몰라 의사한테 물었더니 횡단보도를 건너다 달리던 차가 빗길에 미끄러졌고 그대로 우리 석준이를 들이 박았다고 하더군요. 
더욱 절망적이었던것은 수술을 해봐야 알겠지만 석준이의 뇌가 크게 손상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수술에 들어갔고 10시간이 넘는 수술끝에 석준이는 수술실에서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의사의 말은 저에게 큰 절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식물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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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준이는 그날로 식물인간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가끔 눈물을 흘리는 날도 있더라고요. 의사의 말로는 그냥 반사적인 신경계의 반응이라고 하느데 저에게는 그런 눈물조차 기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뒤에 결국 석준이는 다시 눈을뜨지 못하고 하나님 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장례식 내내 저는 멍한 표정이었어요. 
정말 나쁜생각까지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화장실을 다녀오던 순간 옆 장례식장에서는 생을 마감한 또다른 가족들이 슬픔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그 중에서는 상주의 옷을 입고있는 어린 남자 아이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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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을 보아하니 아이들의 부모님이 함께 돌아가신듯 해 보였어요. 그리고 옆에선 아이들의 친척으로 보이는 이들이 믿을수 없는 말들을 나누고 있더라고요. 
“아니.. 그래서 얘네들 어떻게 할건데? 언니 죽고 불쌍한 조카들!”
“너가 데려가 키워 난 우리 애들로도 족해…”
“뭔소리야 진짜 오빠? 오빠가 장남이니까 집안 책임져야지~ 엄마 죽을때 그렇게 재산 물려 받았으면 이정도는 해야하는거 아니야?” 
“그게 우리 엄마아빠가 준 재산이지 희영이가 준 돈이냐? 내가 왜그래야해?”
“에휴… 누가 데려다키워 그냥 보육원에 맡기자.. 그것 밖에 없어!” 
정말 너무하더라고요. 삼촌이고 이모란 사람들이 아이 엄마아빠 장례식장에서 한다는 얘기가…
저는 저도모르게 오지랖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만 하세요! 애 듣잖아요! 듣자하니까 이 꼬마에 삼촌이시고 이모 고모 이신것 같은데 꼭 이런날 그런말을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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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그 사람들은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더라고요. 
저는 애를 데리고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엄마아빠와 가족여행을 가다가 교통사고로 두분은 돌아가시고 혼자 남게 되었다네요. 
혹시 몰라서 저는 아이의 집주소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저는 문득 그 아이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 주소로 한번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앞에서 현관문을 따고 있더라고요. 
“얘야! 학교 갔다오니? ㅎㅎ”
“네…” 
“밥은 먹었어? 이제 곧 저녁이잖아~” 
“아직이요..” 
“그럼 아줌마가 김치찌개 끓여줄까? 같이 장보러 갈래?”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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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랑 이야기를 나눠보니 장례식장 이후로 할아버지가 1주일에 2번씩은 찾아오셨고 아이는 거의 혼자 살았다고 해요. 
그러면서 아이는 아무도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다고… 할아버지도 엄마아빠 보험금 때문에 양육비로 받고 안온다며 울더라고요. 
어린아이가 이게 뭔 수모인지…. 
그래서 저는 저도모르게 “아줌마랑 같이 살지 않을래?” 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 아줌마도 너 처음만난날 아줌마 아들의 장례식이었어. 어쩌면 우리 아들이 준 선물이 너가 아닐가 싶어서…” 
아이는 아직은 결정하기 힘들다며 마음의 준비 시간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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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도 당연하죠. 9살 그 어린나이에 엄마아빠가 떠난것도 슬플텐데 갑작스러운 입양은 받아드리기 힘들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다음날 저에게 전화를 하더라고요. 
“아주머니. 받아만 주신다면 저 아줌마 아들하고 싶어요. 제 친척들은 아무도 받아주지 않고 저를 보육원에다가 보내려고만 해요…”
저는 남편과 이야기를 했고 남편역시 아이를 잘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정다빈이라고 하더라고요. 
성만 남편성을 따라서 최다빈으로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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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이는 저희 품에서 지냈고 어느덧 커서 현재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정말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할 특별한 인연인것 같은데요. 그만큼 더욱 소중히 여기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결혼을 하고싶다며 여자친구를 데려왔더라고요. 그거 보고 시간이 어찌나 빠르던지 ㅎㅎ
그럼 별것 아닌 제 사연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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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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