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 누르고 계속 보기
저는 18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길거리에서 만취한 상태로 쓰러지셔서 병원에 실려가셨지만 결국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홀로 저를 키울 자신이 없다고 하시기에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어머니가 아시는 분의 소개를 받아서 고향인 강원도에서 멀리 떨어진 충주에 옥탑방을 얻어서 자동차 공장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저 혼자 지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주변 어른분들이 어린 나이에 홀로 일하는 저를 많이 챙겨주셨고, 그중에서도 건물 주인이셨던 귀가 잘 안 들리시는 할아버지가 퇴근한 저를 부르셔서 매일 식사를 챙겨주셨습니다.
“많이 먹어…!”
“예! 감사합니다.”
보청기도 제대로 없으신 할아버지께 제대로 감사하다고 할 수 없기에 고개를 꾸벅 숙이고 맛있게 식사를 하였고, 항상 저녁을 해주시던 옆집 아주머니에게도 감사한 마음으로 집안일을 이것저것 도와드렸습니다.
그렇게 자주 교류를 하며 시간이 흐르고 한 해가 지나 무더운 여름이 찾아왔고. 유독 비가 자주 오던 장마철에 홍수가 나서 새벽부터 집집마다 난리가 났었습니다. 옥탑방에 살던 저는 큰 피해가 없었지만, 아래층에 사시던 할아버지가 걱정되어서 내려가 보았더니 1층이 허리까지 잠겨서 난장판이 되어있었습니다. 저는 헐레벌떡 할아버지가 계신 방으로 갔더니 이미 물이 차있어서 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습니다. 창고에서 망치를 가져온 저는 건물 밖으로 나가서 창문을 깨고 할아버지를 구출했고, 다행히 크게 다치신 곳이 없으셨던 할아버지와 옥탑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수재민 보호소로 모셔갔습니다.
“아이고! 무사하셨구나!”
보호소에는 이미 많은 어른들이 모여계셨고, 옆집 아주머니도 계셨습니다.
“영환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뻔했어…”
어제 있었던 일을 할아버지께서 꺼내시자 제가 이어서 얘기했고 주변 어른들이 크게 놀라시면서 저를 칭찬하셨습니다.
“큰일 했네! 다들 자기 집 간수하느라 누굴 도우러 갈 형편이 안 됐어~”
“영환이가 강씨 할아버지 생명의 은인이네~”
“아닙니다.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난리를 겪고 추운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오자 마을 상태가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공장에서 일하며 돈이 적지 않게 모였을 때, 동네 친구였던 영기와 영기의 아버지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두 사람은 저에게 서울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았고 저는 새로운 일을 배우고 싶었던 지라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가지고 있던 돈을 사업에 보태시라고 투자까지 하며 올라간 서울에서 시작된 사업은 처음은 잘 되었으나 곧 매출이 계속해서 떨어졌고 결국 망해버리게 되었습니다.
“영기야 미안한데 아직 지급 못 받은 급여 좀 받을 수 없을까?”
“급여? 아~ 내일 줄 수 있을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줘.”
물가가 높은 서울에서 생활하기는 쉽지 않았는데 몇 달이나 급여를 받지 못해서 저는 식사를 거를 때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영기에게 말해보아도 내일 주겠다는 말과 함께 능청스럽게 자리를 벗어났고 며칠 뒤부터는 연락이 아예 되지 않았습니다. 소문을 들어보니 영기는 해외에 원정 도박을 하러 갔고, 영기 아버지는 빚쟁이들에게 쫓기고 다녀서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배신을 당한 저는 더는 서울에 머물 수가 없어서 충주로 돌아갔고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전에 살던 강씨 할아버지 집으로 갔습니다.
“어쩐 일이냐?”
기운 없는 목소리로 할아버지가 저를 맞이해 주셨고 저는 집에 돌아온 것만 같아서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제 얘기를 들으시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셨고,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 저는 다시 공장을 다니려고 했지만 자리가 나지 않았고 강씨 할아버지 집안 정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영환아, 이리 와봐라.”
평소와 같이 집안 정리를 끝내고 쉬는 중이었던 저를 할아버지께서 부르시더니 무언가를 장롱에서 꺼내셨습니다.
“집 문서랑 통장은 어디에 쓰시려구요?”
저는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지 모르겠어서 묻자 할아버지가 그 두 개를 저에게 건네주시며 나지막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앞으로… 한 달도 못 살아.”
더 뭔가 말씀하시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잘 안 나오시는 듯하셨고 저는 통장을 받은 손을 벌벌 떨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죽으면… 이것들은… 필요가 없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들릴 정도로 작게 말씀하시더니 편지 봉투를 꺼내셔서 바닥에 내려놓으셨습니다. 저는 읽어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편지를 읽었습니다.
“나는 자식들이 다 먼저 가버려서 영환이 네가 손주 같았다. 항상 기운이 넘쳐 보여서 좋았고, 많은 걸 해주고 싶었지만 귀도 잘 안 들리고 움직이기도 편치 않아서 미안했다.”
편지를 소리 내어 계속 읽어내려 가는데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자신의 재산은 전부 사회에 환원하려고 하셨지만, 저라면 좋은 일에 쓸 것 같다며 저에게 다 물려주셨고 한 달이 아닌 일주일 뒤에 할아버지는 주무시던 도중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이후 저는 물려주신 재산들을 함부로 쓸 수 없어서 어떻게 해야 말씀하신 대로 좋은 일에 쓸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다가 불우한 사람들의 집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저에게 안식처를 주셨던 할아버지처럼 이번에는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고 현재는 기부나 봉사활동과 더불어 불우한 이웃들이 쉴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을 만드는 시공업체의 사장으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천국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웃으실 수 있도록 앞으로도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도 집안에 행복이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